[높빛시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고양신문] 이재명 정부가 자신의 별칭을 ‘국민주권정부’로 쓰기로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시민들이 막아낸 것을 부각하고, 이를 새 정부의 정체성 기반으로 삼으려는 의미로 이해된다. 지난 10일부터는 국민들이 장·차관과 공공기관장 등 후보자를 직접 추천하는 국민추천제도 진행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에는 '국민과 함께 국민주권정부의 문을 열겠습니다'는 제목이 떠 있다. 2017년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장이 귀에 익숙한만큼 시민들에게도 ‘국민주권정부’ 이름이 자부심과 책임감을 전해줄 것이다.

사실 정부는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은 기관이기에 국민주권은 당연한 원칙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우리는 이 원칙에 얼마나 근접해 있을까? 무엇보다 국민주권에서 첫 단추는 선거제도다. 행정부와 의회 권력이 주권자의 의지를 행사하는 것이라면 그 위임과정, 즉 선거제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우선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지를 홀가분하게 표명할 수 있을까? 투표를 주권자의 신성한 한 표 행사라고 치켜세우지만, 우리 선거제도에서는 사실상 선택권이 애초부터 제약되어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한 후보만 당선되기에, 나머지 표는 사표가 되어 버리고, 이를 보완한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으나 비례의석 수가 300명 중 47명에 불과하고 이조차 유력 정당들이 ‘위성정당’을 내세워 가져가버리는 현실이다. 또한 대통령 선거도 최다 득표자가 당선되는 구조이기에, 유력 정당 소속이 아닌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사표를 우려해 불가피하게 차선의 후보를 택하게 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득표자가 없을 경우 두 명을 두고 2차 투표하는 결선투표제가 있다면, 어느 유권자도 1차 투표에서 자신의 선호를 밝히고 그만큼의 의사 분포가 정치적으로 확인되고 존중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선거과정도 권력 위임 절차에 부합해야 한다. 언론은 이번 대선의 특징으로 ‘정책 실종’을 꼬집었다. 실제로 후보들이 공약, 방송토론을 보면, 이번 대선만큼 정책 논의가 빈약한 경우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공약들 역시 포괄적으로 개혁 방향을 밝히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사례로, 방송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간병비 공약의 재정방안이 있느냐고 묻자, 이재명 후보는 “의료재정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확대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이러면 새정부에서 얼마나 상황이 개선될지 가름할 수 없다. 

정책공약집의 지각 공개도 문제다. 이재명 후보의 정책공약집은 사전투표 하루 전날인 5월 28일, 본투표 6일 전에 공개됐다. 재외국민들은 정책공약집을 보지 못하고 투표를 했고, 사전투표자도 사실상 그러했다. 정책공약집이 나오면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검증작업을 벌이고 정당들은 자신의 공약 우위를 드러내는 정책 공방을 벌이며, 유권자들은 이를 보면서 후보의 정책 실체를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는데 이번에 이 과정이 부실했다. 후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등록할 때 제출하는 ‘10대 공약’의 내용도 허술했다. 여기에는 공약별 목표, 이행방법, 이행기간, 재원조달방안이 담기는데, 특히 재원방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10개 공약별로 제시해야 하는 <재원조달방안> 자리에 모두 동일하게 “정부재정 지출구조 조정분, 2025~2030 연간 총수입증가분(전망) 등으로 충당” 문구를 복사해 붙였다. 선관위가 이것을 그대로 수용해도 되는 걸까?

조기대선이어서 준비하기 어려웠다? 정당들은 상시적으로 모든 국정 현안에 대응하고 수시로 선거를 치르며, 조기대선일지라도 이미 일정이 예상되기에 정당, 후보마다 일찌감치 선거 준비를 한다. 2017년 선거도 조기대선이었지만, 이번보다 공약집이 먼저 나왔고 당선자인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는 대략이나마 소요재정 규모와 재원조달방안이 담겨 있다.

국민주권!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완전할 수는 없더라도 이 원칙에 충실하도록 노력하자. 유권자들이 진정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의 구조와 운영을 개선해야 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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