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AI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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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한국 사회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초저출생 현상과 마주하고 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수는 계속해서 급감할 전망이다.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에게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더 깊이 고민하고, 교육의 질적 수준을 시급히 향상해야 하는 과제를 던진다. 이러한 시점에서 ‘늘봄학교’가 본격적인 확대의 시간을 열었다. 늘봄학교는 이미 문재인 정부부터 ‘더놀이학교’, ‘전일제학교’ 등 여러 이름으로 논의되어 온, 초등학생 대상 교육과 돌봄을 융합한 사회적 교육·돌봄체계를 완성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늘봄학교의 핵심은 기존에 이원화되어 운영되던 초등돌봄교실과 방과후과정을 ‘늘봄학교’라는 단일 체제로 통합·개편하는 것이다. 이른바 초등돌봄절벽 문제를 해소하고, 희망하는 모든 학생에게 양질의 종합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아이를 더 오래 봐주는 돌봄 프로그램이 아니다. 학부모의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AI, 디지털, 예체능 등 미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늘봄학교의 목표다.

우리에게만 이런 과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은 우리보다 먼저 비슷한 도전에 직면했다. 2000년대 초반, 낮은 출산율과 함께 급증하는 이주배경아동의 사회통합이라는 과제가 생겨났다. 부모 자체가 독일어가 서툴고 독일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배경아동이 심할 경우에는 한 반의 80%에 달하는 학교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공교육의 역할 재정립이 시급했다. 이에 독일 정부는 2003년 ‘미래의 교육과 돌봄’이라는 기치 아래 ‘전일제학교(Ganztagsschule)’ 확대를 국가적 의제로 삼았다. 목표는 명확했다. 더 나은 교육, 일·가정 양립, 그리고 출신 배경에 구애받지 않는 기회 공정성의 보장이었다.

독일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협력(Zusammenarbeit)’의 방식이다. 기존의 지역돌봄기관인 ‘킨더호르트(Kinderhort)’와 전일제학교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낸다. 지역 상황에 맞게 호르트가 학교에 완전히 통합되거나(통합 모델),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역할을 분담하거나(협력 모델), 학부모가 개별적으로 선택하는(부가적 모델) 등 유연한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교사의 교육 전문성과 보육교사의 돌봄 및 사회 교육학적 전문성이 결합되어 아동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고 부모의 일·가정 양립에 기여했다.

늘봄학교 역시 이러한 다차원적 사회정책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늘봄학교는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교육정책이자, 아동복지를 실현하는 아동정책이다. 또한 여성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는 노동정책이며, 저출생에 대응하는 중요한 가족정책이기도 하다. 즉, 늘봄학교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복합적인 위기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회적 교육과 돌봄 허브’인 셈이다.

갈 길이 아직은 멀다. 교사와 늘봄전담사 등 전문인력 간의 역할 인식 차이, 안정적 재원 확보,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에게 행정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 이들이 교육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교사, 늘봄전담사, 지역사회 돌봄 기관 등 각 주체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이들이 상호 존중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늘봄학교는 20여 년간 쌓아온 초등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의 성과와 시행착오 위에 서 있다. 이제는 정치 진영을 초월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 제도를 흔들림 없이 완성해야 할 때다. 늘봄학교가 지역사회 교육·돌봄의 허브로서 단단히 뿌리내릴 때,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게 성장하고 부모는 일ㆍ가정양립을 하면서 한국 사회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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