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2동 지역은 고양시 덕양구의 교통과 행정, 상권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주변으로는 동으로 흥도동과 행신3동이 있으며 서로는 능곡동 남으로는 행주동, 능곡동, 행신3동이 그리고 북으로는 화정1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을 화정이라 본격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10년 8월 23일 경기도 고시 제6호에 의한 마을명 합병개칭에 의해서 였다. 즉 당시 이 마을에 있던 화수촌 (花水村)마을과 냉정촌(冷井村)마을에서 한글자 씩을 따서 화정으로 사용한 것이다. 화수촌은 마을 주민들이 일반적으로 꽃물리, 골머리라 부르는 마을이며 냉정은 찬우물로 부르는 마을이다.
 그러나 화정의 유래가 된 꽃물마을은 현재의 화정1동 지역에 속하며 찬우물 마을은 1동과 2동의 경계에 자리한 마을이다. 이곳 화정2동의 오랜 마을은 뱅골, 백양동 마을과 꽃동네 마을이다.

지렁산에 선사시대 고인돌
 화정2동에서 흥도동으로 넘어가는 산을 예전부터 지렁산이라 불렀다. 이 산은 해발 30m의 작은 야산으로 현재 정상부에는 군 시설이 들어서 있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이 산 7,8부 능선에는 고인돌로 보이는 바위10여 개가 자리해 있다.
1990년대 초반 화정지구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이 지역에 대한 문화재 조사를 실시한 서울대 박물관 (조사단장 : 임효재 교수)은  이 바위들을 고인돌로 기록하고 보존을 당부하였다. 현재 양 등산로 주변에 자리한 이 고인돌들은 도굴의 흔적이 남아 있고 덮개돌에 성혈의 흔적이 있는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조 영조년간인 1755년 고양군지를 보면 이곳 화정동은 대장리에 속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대장리에는 이곳 화수와. 냉정 마을이 있는 데 총 184호의 집이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그후에는 고양군 지도면 화정리-- 지도읍 화정리--고양시 화정동을 거쳐 현재는 고양시 덕양구 화정2동을 공식적인 행정동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부터 10년 전 개발되기 이전까지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뽕나무 과수원을 비롯해 화정배, 쌀 등으로 유명했다.

 용우추리,장대뿌리 등 지명
이곳 화정2동은 1990년대 초반 대규모의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살기 좋은 마을 이였다.  능곡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백양동 마을은 농촌마을로 찬우물 마을과 함께 유명한 왕룽일가 드라마의 촬영지 등으로 알려 지기도 하였다.
당시 화정3리에 속했던 마을의 작은 지명들을 보면 먼저 지렁동, 걸새논, 안말, 뒷동산, 새말, 가운데말, 아랫말, 장대뿌리, 백양동, 구산 등을 들 수 있다.  이곳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진주 정씨, 덕수장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온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10월 1일 밤 11시경에 부정한 사람들은 참여치 않고 산신제를 지내곤 하였다. 이 제사는 다른 곳과는 달리 식혜와 백설기 떡을 올리는 것이 특이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지은 쌀로 마을의 안녕과 질병예방 등을 기원했다.

지렁동 우물과 채동지의 전설
 지렁동일대에는 인근에 유명한 전설 이야기 채동지 전설이 있다. 일제 시대에 이 근처에 머물다가 사라진 채동지 이야기인데 밥을 많이 먹고 병든 사람들을고쳐준채동지의 이야기를 지금의 어른들은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특히 자신의 침으로 떡을 주면 이 떡을 먹은 사람들은 아기를 임신하고 병이 낳고 하는 등 일종의 신과 같다고 하는데 이 채동지 전설은 이곳 고양시 말고도 여러 곳에서 전해 내려온다. 이 채동지가 살면서 먹었다는 우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묻히고 없어졌다.
 화정2동은 이제  예전의 농촌 , 작은 마을에서 인구 수만명이 사는 큰 마을로 변했다. 그러나 이름과 같이 아름답고 정겨운 마을로 계속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항상  물이 시원하게 넘쳐흐르던 곳곳의 우물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비록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던 그 옛 모습의 화정에서 이웃간의 다정함, 정을 다시 오늘날의 이곳 화정2동에서 또 다시 만나고 싶다.
    (고양시청 전문직 연구위원)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