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채 고양시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장
“어르신 주도 1인실 요양 시대, 숫자보다 수준”
[고양신문] “요양은 단순한 돌봄이 아닙니다. 마지막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하죠.”
나윤채 고양시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장은 요양에 대한 철학부터 꺼냈다. 요양시설의 기본 구조와 정책 기조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25년간 요양원을 운영해온 실무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고양시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는 올해로 설립 8년차. 고양시 400여개 요양시설 중 160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협회는 정보공유, 정책개발, 지자체나 정부에 대한 의견 개진을 주 활동으로 하고 있다. 월 1회 월례회의에서 현안을 논의하고, 요양보호사 보수교육, 시설장 교육, 관련 토론회 등 할 일이 많다.
나윤채 회장은 “협회 차원에서 정부와 시설, 공공성과 민간 영역 간의 소통 역할을 하려고 한다”며 “정부가 민간 요양기관의 공공성을 인정하고 실질적 지원과 규제완화, 정책 수립을 해주면, 요양시설들은 안정적인 기반에서 복지의 한 축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윤채 회장은 덕양구에서 25년째 ‘지극정성요양원’을 운영 중이다. 6년 전엔 국내 최초로 1인실 전용 구조의 유니트 케어 요양시설인 ‘더지극정성요양원’을 설립해 아내인 고미경 원장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나 회장은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는 지금, 요양의 양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라며 요양원에 대한 국가적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회장은 현장 경험뿐 아니라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교육을 맡아온 교수이기도 하다. 사회복지 강의를 수년째 해오고, 다양한 교재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고양시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를 제안·출범시킨 배경 역시 ‘현장의 문제는 현장에서 풀어야 한다’는 소신에서 비롯됐다. “코로나 시기, 시설 간 반찬을 나르고 인력을 지원하면서 자연스레 연대가 생겼어요. 서로 소통하고 함께 대응하면서 협회의 필요성을 실감했죠.”
최근 고양시가 요양시설 수를 감축하거나 신규 설립을 규제하려는 정책 흐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시설이 많다는 건 과거 시점의 판단입니다. 지금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요양기에 들어서는 시점이고, 장기요양 수요는 폭증할 겁니다. 정작 필요한 건 시설을 줄이는 게 아니라, 질을 높이는 일이죠.”
고양시는 현재 건축 및 토지 규제 등의 이유로 신규 요양시설 등록을 사실상 막고 있다. 이에 대해 나 회장은 “무조건 요양원이 많다고 규제하면 결국 고양시 어르신들이 갈 곳을 잃게 된다”며 “시설 수보다 중요한 건 선택권과 서비스 품질”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질적 전환의 실험이 바로 ‘더지극정성요양원’이다. 이곳은 모든 병실이 1인실로 구성돼 있으며, 부부가 함께 입소하더라도 개별 공간을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치매 어르신 간의 감정 충돌, 이성 어르신 간의 오해 등은 공동 생활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1인실은 단순히 편의가 아니라 존엄한 요양의 최소 기준입니다.”
나윤채 회장은 1인실 중심의 ‘한국형 유니트 케어’ 모델을 고양시에서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스웨덴, 일본 등도 민간이 먼저 모델을 제시했고, 행정이 뒤따랐습니다. 고양시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저는 이걸 ‘케이(K)-요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현재 김포, 부천 등 인근 지역에서도 더지극정성의 모델을 벤치마킹한 요양원들이 운영되고 있다. “요양·돌봄 환경도, 어르신들도 바뀌고 있습니다. 행정만 과거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됩니다.”
그는 고양시 요양 정책이 보다 실질적인 복지 행정으로 전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독감예방주사만 봐도, 시와 병원, 요양시설 간 역할 정리가 안 돼 혼선이 많습니다. 일부 시설은 자체 비용으로 접종을 하거나, 의료진 확보에 애를 먹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복지 행정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요양시설을 ‘집’의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양원은 병원이 아닙니다. 어르신이 자기 결정을 하며 살아가는 공간이어야 해요. 그게 삶의 질이고, 요양의 미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