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호의 북회귀선
(3) 김현정(26살, 식사동) 세리서점 운영위원
공부, 시험, 취업 압박 관성없이
이젠 하고싶은 것 하면서 살고싶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삶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 써볼게요
❚ 어린 시절 인상 깊게 보았던 책이 있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도서실에 꽂혀있었던 미하엘 엔데의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책에서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많이 받는 딸이 요정에게 각설탕을 받아와 부모님에게 몰래 먹입니다. 설탕을 먹은 부모는 주인공이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을 때마다 점점 키가 작아지는데, 나중에는 둘이 힘을 합쳐야 간신히 바늘을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집니다.
그때도 지금도 부모님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부모님을 골탕 먹이려는 주인공의 마음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꺼내 읽었던 책인데, 커서 다시 읽어보니 어린이를 그저 작고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담겨있었고 동시에 어린이의 마음에 순수하게 공감하는 작가의 시선 등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작품이란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에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주말마다 저를 도서관에 데려가셨는데, 가만히 앉아 책만 읽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지루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책에 노출되고, 저의 호기심이 먼저 발동하여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교에 있던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다가, 중학교 1학년 방학 때 ‘창비 청소년 문학’ 시리즈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책과 조금 더 친해져야겠다 라는 마음에 1년간 휴학을 하며 읽고 싶은 책을 골라 1주일에 한 권씩 읽었습니다. 주로 환경관련 책, 소설을 읽었고 4월에 제주여행을 가서는 자연스레 4·3관련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 간단한 개인소개와 동네서점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해주세요.
2000년생으로 식사동 주민 김현정입니다. 국어교육을 전공으로 대학원 준비 중이고 오늘 아침 막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연구하고 싶은 주제로는 쓰기 태도, 쓰기 효능감, 쓰기 불안 등 작문의 정의적 영역이 있습니다. 이중 쓰기 불안이란 학생들이 평가가 동반된 쓰기 상황에서 그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한 번에 완벽한 문장을 써야 한다는 쓰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자신감 부족, 쓰기 학습의 부족이 그 원인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쓰기 활동은 활발히 일어나지만, 정작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쓰기 불안 수준과 실태를 조사하고, 긍정적인 쓰기 태도 함양 방안의 방향성을 모색해 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너무 바빴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교에 머물다보니 고양시민으로서의 삶이 멈춰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학교 때 마을활동을 통해 알게 된 동네 아저씨를 대학 휴학 후 지역서점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범대에 다니고 있지만 선생님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출판사 직원이나 서점 주인이 되는 것을 막연하게 꿈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졸업 후 아저씨가 백석에 서점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개업선물로 액막이 물고기를 사드렸는데, 대뜸 서점을 같이 운영해보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서점 사장이 된 아저씨가 엄청 눈부시게 보였습니다. ‘돈이란 이런 것인가? 재력이란 이런 것인가?’ 자기만의 공간에서 근사한 책들을 팔 수 있다니. 그때부터 서점 운영과 관련된 사항을 같이 회의하며 지금까지 서점에 나와 종종 일을 합니다.
❚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해마다 나오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나 이슈(퀴어, 장애, 여성, 노동, 환경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신문을 보는 편인데, 정확하고 예리한 기사들에 매번 감탄하지만 내용이 다소 딱딱하고 어려워 손이 잘 가질 않았습니다. 저는 사회의 중요한 일을 다루더라도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는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고민을 파격적으로, 예민하게, 문학적인 필체로 거침없이 다뤄, 독자들로 하여금 몰입도 있게 볼 수 있는 소설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싶은데 무얼 보아야할지 모를 때 접하면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사회에 딱히 관심이 없다하더라도 젊은 작가들의 빼어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향유할 수 있는 책입니다. 게다가 가격이 저렴합니다. 20대 청년들에게 책은 너무 비쌉니다. 이 책은 정말 가성비가 좋은 책입니다. 젊은 작가를 널리 알리자는 상의 취지에 따라, 출간 후 1년간은 특별보급가(7700원)로 판매됩니다.
강화길 작가의 대상작 『음복』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가부장제하에서 모든 갈등을 간파해야 하는 며느리와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대비되는 오싹한 작품입니다. 덕분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대불호텔의 유령』, 『화이트 호스』까지 독서가 이어졌는데, 이런 참신한 작품들이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한가득 있습니다.
❚ 책을 통해 삶의 괴로움이나 고단함을 지나거나 위로받은 적이 있다면.
정의로운 방향을 향해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뉴스에서 반복되는 비극을 보면 사회에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참하지만,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끈질기게 글로 외치는 사람들의 시도를 보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구나 라는 사실에 크고 작은 위로를 받게 됩니다.
책은 사람들에게 은밀하게 양질의 정보와 위로를 줍니다. 피폐한 삶속에서 내면에 치유를 받고 싶을 때, 일상 속 어려움을 해결할 도움이 필요한데 방법을 찾지 못했을 때, 책으로 접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은 생애의 시간을 어찌 보낼지 계획이 있나요. 존엄하게 늙어죽을 방법이 있을까요.
25살 이후의 저는 조금 더 뻔뻔하고 자신감 있게 하고 싶은 걸 하는 삶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주어진 고등학교 입시 공부, 대학 시절 학과 공부, 작년 임용 공부를 할 때에도, 그저 내가 소속된 곳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잘하는지 등 인생의 중요한 고민을 대학에 와서는 끝마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부, 시험, 취업에 관한 맹목적인 관성과 습관이 남아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이제는 압박 없이, 관성 없이, 부담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다루고 싶은 학문을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만 간직한 채 이후의 삶을 준비 중입니다.
죽기 직전에는 나를 잘 표현하고 드러내는,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주변의 가족들이나 연인 모두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인데,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대화가 나에게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엄마는 출근하면서 여전히 저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나가시는데, 저는 턱밑까지 말이 나오다 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시에 부모님의 노화를 보며 시시때때로 삶의 유한함과 소중함을 최근 부쩍 느끼는데, 이런 상황에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시간이 이제는 아깝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잘 지내려면 좋은 추억도 필요하지만 서로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대화 역시 소중합니다. 내 이야기와 욕구에 충실하지 못하니 간혹 내가 진실되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이 솔직함과 용기에서 삶의 존엄함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나의 삶을 책으로 만든다면 제목으로 무엇이 좋을까요.
제 책의 제목은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너, 대박이다.’ 감히 말하자면 학내 신문사 편집장을 맡고 여러 일을 하면서도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임용공부를 하루에 10시간씩 하다가 시험 한 달 남기고 응시를 취소할 때에도, 무작정 타지의 대안학교에 들어갔을 때와 그만 둘 때에도, 서점에서 일하겠다고 할 때에도, 이제는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에도 매번 ‘너, 대박이다’라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살아가고 있다 생각합니다. 죽기 전에 삶을 돌아보면 나름 돌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럭비공처럼 통통 튀는 재미난 삶속에서도 이웃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