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이 기자의
책읽는 사람들 - ‘현미경’
8년차 미술전문서 읽기 모임
시즌마다 주제 정해 회원 모집
격주 수요일 한양문고서 토론
[고양신문] “아, 이래서 책을 같이 보는구나 싶었어요. 아기를 안은 ‘채용신의 운낭자상’을 보며 성모자상의 경건함을, 김홍도의 ‘생황부는 소년’에서는 구슬픈 생황의 선율을 느꼈습니다. 저자가 사용된 단어나 표현이 어려워서 뜻을 찾아 함께 읽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그림도 그렇지만 언어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얼굴의 점 하나, 사실대로 그린 그림에 빠지다가, 그림에 대한 표현, 소재, 방법을 통해 다시 한 번 그림에 풍덩 들어가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일 늦은 저녁 한양문고 주엽점 여우모임방에는 기자출신 미술평론가 손철주 작가의 『사람 보는 눈』’을 펴든 이들의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우리 옛 그림과 해설을 펼쳐가며 소감을 나누고, 서로의 해석을 주고받았다. 올해로 8년차 되는 미술책 전문 책모임 ‘현미경’ 회원들이다.
“책제목이 『사람 보는 눈』, 손철주의 그림 자랑이다. 흑백으로 나온 손철주 수묵 초상화. 머리에 열을 많이 받는 성격인지 머리칼이 꼬불꼬불하다. 이마의 전두엽은 톡톡하니 튼실한 수박같고 눈두덩은 밭이랑처럼 두텁고, 파서 묻은 듯한 눈은 햇볓이 닿지 않아서인지 흰자위가 유독 차갑다.”
독설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시대 옛 그림을 고유어와 구어체, 한시를 연상케 하는 운율있는 문장으로 써나가는 손철주 작가의 글쓰기에 ‘빠진’ 회원 한 명이 그에게 ‘인물평’을 적어왔다. 한 페이지 가득 적힌 작가에 대한 평 끝은 ‘술잔 들고 낭군 말하기를 맑은 향기에 술맛이 좋구려. 웃음지으며 낭군에게 던진 말 제가 마시고 남은 술이거든요’라는 책 속 시 한수였다.
독설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시대 옛 그림을 고유어와 구어체, 한시를 연상케 하는 운율있는 문장으로 써나가는 손철주 작가의 글쓰기에 ‘삐진’ 회원 한명이 그에게 ‘인물평’을 적어왔다. 한페이지 가득 적힌 작가에 대한 평 끝은 ‘술 잔 들고 낭군 말하기를 맑은 향기에 술맛이 좋구려. 웃음 지으며 낭군에게 던진 말 제가 마시고 남은 술이거든요’라는 책 속 시 한수였다.
‘현미경’ 책모임은 ‘현대미술의 풍경’의 줄임말로, 책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질문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모임은 8년전 출판사 편집장으로 미술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하던자 김형국 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예술은 끊임없이 우리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현대미술, 동시대 미술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요.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도 결국 오늘의 삶을 보다 가치 있게 살기 위함이겠지요. 바로 그 ‘오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현대미술의 풍경’입니다.”
책모임 이름에 대한 김형국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회사가 파주출판단지로 이사하며 고양시로 터전을 옮겨오게 되었다. 당시 한양문고 문화기획을 맡던 아내의 제안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그림’이란 이름으로 독서모임을 시작해, 2000년 6월 ‘현미경’ 모임이 시작했다고.
“전시된 그림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 함께 읽고 나누자”는 취지 아래 모인 이들은 매 시즌 주제를 정해 미술 관련 전문서를 함께 읽는다. 시즌마다 회원을 모집하는데 창립부터 함께 하는 회원들도 있고, 이번 시즌 처음 참여자도 있다. 자율적인 모임이지만 계절마다 달라지는 주제와 소수 정예의 깊이 있는 토론 방식은 8년간 이어진 힘이자 정체성이다.
2025년 3월부터 시작된 상반기 시즌6의 주제는 ‘얼굴과 몸의 미술’. 인물화, 자화상, 해부학적 표현, 젠더와 몸의 재현, 퍼포먼스 아트 등 다양한 시기의 작품과 이론을 통해 인간 형상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서는 ‘얼굴을 그리다(정중원)’, ’조각에 나타난 몸(톰 플린)‘, ’포즈의 예술사(데즈먼드 모리스)‘, ’오직 그림(박영택)‘, ’프로이트(시베스천 스미),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8년째 참여 중인 신정애 씨는 “서양 그림만 보다가 먹과 수묵화를 보며 정말 그 시절에 이렇게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했는지 놀랐다”며 “그림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움직이는 쪽으로 가게 만드는 무엇이다. 책을 통해 과거의 기억, 추운 겨울밤 시골의 눈보라 같은 장면들이 되살아났다”고 덧붙였다. 현미경 모임은 독서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전시장을 찾고, 현장 감상을 통해 책과 미술, 삶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도 이어져 왔다.
김형국씨는 “미술은 보는 힘을 길러주고, 책은 질문을 만든다”며 “그 두 가지를 시민이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현미경은 미술을 생활의 언어로 풀어보는 실험이자 실천”이라고 말했다.
모임은 매월 첫째·셋째 수요일 저녁 7시, 일산서구 ‘한양문고’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회비는 6개월 기준 5만 원이며, 책 선정과 발제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신청은 온라인 폼을 통해 받으며, 단순 청강이 아닌 토론 중심의 운영 취지에 공감하는 시민을 우선한다고. 전문 지식보다 중요한 건 책을 꾸준히 읽고 질문하는 자세를 갖춘 회원 선착순. 지금 진행 중인 6시즌은 9월경에 끝나고, 몇 개월 쉬었다가 7시즌이 시작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