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최근 고양시청 앞은 연일 주민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108만이 사는 거대도시의 시청사 앞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냐 하겠지만, 맥락을 살펴보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시민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해법을 마련해야 할 시장의 정치 역량이 아예 실종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시장이 그 목소리를 경청했다거나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얘기는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은 근래 들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각 부서의 인허가 관철에서도 감지된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졌던 각 지역의 데이터센터 인허가가 주민 요구의 반영 없이 차례차례 시도되고 있다. 또한 10년 넘게 반대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산황산 골프장 증설 실시계획인가도 2년 전 반려 조치가 무색하게 승인이 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시민들은 “임기 1년을 앞두고 이 시장이 각종 현안들을 자기 입맛에 맞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동환 시장이 행정부를 강하게 운용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장악력을 상실한 채 손 놓고 있기  주장이다.

행정절차를 처리할 때 부서 담당공무원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다. “규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뿐입니다.” 당연한 얘기다. 시민들의 반발이 마음에 걸려도, 갈등의 소지가 뻔히 예상돼도, 일단은 ‘규정과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게 공직자로서는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처신이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지자체장이 특정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방향을 제시할 때다. 그러면 일선 공무원들도 든든한 뒷배인 ‘시장님’을 믿고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갈등을 해소할 새로운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게 된다.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시의회와 협력하고, 판단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공조직의 적극적인 행정을 이끌어내는 것, 이게 바로 지자체장의 정치 역량이다.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의 ‘레임덕(Lame duck)은 임기말 권력누수, 지도력 공백을 빗댄 정치용어로 쓰인다.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의 ‘레임덕(Lame duck)은 임기말 권력누수, 지도력 공백을 빗댄 정치용어로 쓰인다.

 

그런데 작금의 고양시 행정에선 지자체장의 정치 역량이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산황산 골프장 문제만 해도 그렇다. 2년 전 고양시가 산황산 골프장 증설 허가를 반려했을 때, 많은 시민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이동환 시장이 나름의 방향을 갖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 언제 그랬냐는 듯 맥없이 허가를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시정을 하는 건지 이해 불가다. 시장이 정치를 포기하니, 각 부서는 제각각 미뤄뒀던 절차들을 ‘원칙’이라는 명분 하에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수순에 돌입했다. 그게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최근의 고양시 행정이다. 

대개 레임덕은 선출직 단체장의 임기 말년에 상부의 지시가 잘 안 먹히고, 조직원들이 복지부동 일을 태만히 하는 현상을 말한다. 차기 선거를 준비하는 지자체장이 정치적 판단으로 뭔가를 지시해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후사가 두려워 실무 라인에서 요리조리 발을 뺀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양시 상황은 정반대다. 시장은 만사 귀찮다는 듯 정치를 내팽개치고 있고, 공무원들은 그런 시장을 제껴두고 제각각 알아서 밀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참 기괴하고 이상한 ‘이동환 표 레임덕’을 앞으로 1년이나 더 지켜봐야 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양시민 노릇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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