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지역서점에서 주민들과 '귀갓길 토크'

권영국 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현 민주노동당 당대표). [사진= 김현정 인턴기자]
권영국 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현 민주노동당 당대표). [사진= 김현정 인턴기자]

지역 일상과 대선 뒷이야기, 주요 의제 등
주민 30여명과 2시간 넘게 허심탄회 대화
지방정부 및 주민자치권 중요성 강조
"고양주민으로서 지역활동 늘릴 것" 다짐 

[고양신문] 고양시 행신동 주민인 권영국 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현 당 대표)가 지역 주민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지난 8일 백석동에 자리한 '세리서점'에서 약 30여 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양주민 권영국의 귀갓길 토크’ 행사가 열렸다. 
사전에 접수받은 참석자 질문을 바탕으로 사회자(류소연 연극창작자)와의 질문답변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고양주민으로서의 권 대표 일상과 대선출마 뒷이야기, 주요 현안들에 대한 입장 등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고갔다. 이날 나왔던 이야기의 주요 내용을 Q&A로 정리했다. 
 

Q. 고양시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가요?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는 어떤가요?
A.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동안 고양시에서의 생활 자체는 사실상 ‘지나치는 삶’에 가까웠습니다. 정의당 대표 시절에는 특히 전국을 돌며 일정이 바빴기 때문에 고양시에서는 잠만 자고 나가는 정도의 생활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강남 사무실로 출근하고, 밤 늦게야 귀가하는 날이 많다 보니 동네 주민들과 교류할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서 제가 사는지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았고, 저 역시도 누가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가끔 경비실 아저씨와 인사하는 정도가 거의 유일한 동네 교류였지요. 그런데 지난 대선을 계기로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TV 토론회에 등장하고 언론에 노출되면서, 동네에서도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아파트 반장으로 보이는 분이 산책 중인 저를 보고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여기 사세요? 와, 영광입니다”라고 인사해주셨던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자를 쓴다고 해서 얼굴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또 주민들의 반가워하는 인사에 마음이 풀리더군요.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도 이 지역의 한 구성원이구나’라는 감각을 조금씩 갖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고양시에서 좀 더 생활 기반을 만들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정치 활동이나 소통의 장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Q. 고양시 지역 활동이나 정치 계획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A. 민주노동당은 지역 기반이 중요한 정당입니다. 특히 고양시는 심상정 전 의원의 지역구로서 상징성이 크지만, 현재 지역위원장이 공석인 상태입니다. 저는 고양시 지역 조직을 복원하고, 정치 기반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 지역에서 충분한 활동을 못 해 아쉬움이 큽니다. 때문에 지역 서점이나 커뮤니티 공간을 기반으로 한 독서 모임, 정책 토론회, 생활 의제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주민 모임 등 작고 실질적인 연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 의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당 조직을 실질적으로 회복할 계획입니다. 

Q. 대선 공약에서 지방정부와 자치권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우리 사회는 대통령 중심제와 중앙정부 중심의 정치 구조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만 잘 뽑으면 나라가 잘 굴러갈 것이다’라는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시민의 일상은 지방정부, 즉 시·군·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정책과 행정 결정에 더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방정부, 특히 읍·면·동 단위의 자치권 강화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5·16 군사쿠데타 이전까지만 해도 읍면동 단위에서 자치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마을의 존경받는 인사가 읍장을 맡기도 했고, 지역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구조가 존재했죠. 그러나 쿠데타 이후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로 회귀하면서 주민들의 정치 참여 통로가 차단됐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오늘날 '주민이 행정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구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거리의 광장이나 투표소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이 자신이 사는 마을의 쓰레기 문제, 공원 조성, 복지예산 배정 같은 구체적인 의제에 참여하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실질적인 주권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과 권한을 가장 현실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방정부입니다. 진보정치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작은 자치의 단위를 되살리고 강화하는 일입니다. 정치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지난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얻은 성과는 무엇이라 보시나요?
A. 첫째, 분열돼 있던 진보 정당(민주노동당, 녹색당, 노동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한 것 자체가 큰 성과였습니다. 끝까지 단일 후보로 완주한 경험은 진보 정치에 대한 희망을 만들었습니다. 둘째, 광장의 소수자 목소리를 선거 공간에서 정치적으로 대변했습니다. 제가 토론회에서 "혼자 오지 않았습니다"는 발언과 함께 산업재해 희생자와 소수자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한 순간, 많은 분들이 울컥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울림이 사회적 의제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2025년 진보 정치의 핵심 의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핵심은 ‘불평등’과 ‘차별’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삶이 팍팍하고 불행하게 느껴지는가를 고민하다 보니, 결국 구조적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이 근본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혐오가 정치화되고 사회가 갈라지는 현상은 매우 위험합니다. 여기에 기후 위기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제 폭염 속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기후 위기로 인해 이제는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고, 기후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진보 정치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Q.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20대 남성의 극우화, 청년의 우경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A. 저는 이 문제의 본질을 ‘삶의 불안정성’과 ‘상대적 박탈감’에서 찾습니다. 20대 청년들은 고도화된 경쟁 사회에서 끊임없는 평가를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대학을 가도 취업은 어렵고, 비정규직이나 열악한 일자리가 기다립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결혼·출산은커녕 독립조차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나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왜 부모 세대보다 더 나빠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되고, 분노와 불만이 쌓여간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분노가 향하는 대상이 사회적 약자에게 향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정치는 이를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조장했습니다. 이준석 같은 정치인은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남성 청년의 박탈감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임금을 다르게 주자거나, 여성이 군대를 가지 않기 때문에 역차별받는다는 담론은 그러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이는 사회적 약자끼리 싸우게 만드는 '분할 통치'입니다. 정치는 이런 갈등을 해소해야지,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반성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대남의 박탈감에 대해 정의당이 제대로 된 공약과 대화를 준비했는지 돌아보면 부족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젠더 폭력 대응은 강조했지만, 군 복무나 일자리 문제, 남성 청년의 정서에 대해 직접 호소하지 못했습니다. 진보정당이야말로 이들의 불안정한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차별이 아니라 공정한 출발선과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Q. (청소년 질문)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지만 경제적 독립을 못한 상태여서 행동에 나서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무력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A. 청소년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사회 구조상 경제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아직 독립적 권한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무력감은 혼자 있을 때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사회생활 초년생 시절, 회사 안에서 부당한 노동 환경에 좌절했지만,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느낌에 깊은 무기력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함께 행동하면 변화는 가능하다’는 걸 체험했습니다.

정치적 참여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마을 모임, 동아리, 동네의 작은 봉사활동도 시작입니다. 현재 정당 가입도 만 16세 이상이면 가능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참여 경험은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간디학교 사례처럼 학생이 학교 안에서 모의 정당을 만들고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방식도 정치 참여의 실질적 훈련이 된다고 봅니다. 청소년들에게는 아직 투표권이 없지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 권한’은 충분히 있습니다. 지역 커뮤니티 참여, 독서 모임, 사회운동에 연대 서명하거나 캠페인을 주도하는 것 이런 모든 참여가 시작입니다. ‘작은 참여가 커다란 변화를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입시경쟁과 교육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법을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현재 교육 경쟁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목적이 자기실현이 아닌, 높은 급여와 처우를 가진 직업을 얻는 수단이 되어버렸죠. 결국 문제의 핵심은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부모의 배경에 따라 청년의 출발선이 갈리는 현실도 교육 불평등의 큰 원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의당은 청년 사회상속제, 기초자산제, 상속·증여세 인상 등으로 동일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강연을 마친 뒤 참석자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강연을 마친 뒤 참석자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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