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6주년 기획
기후위기 대응 지속가능교통 전환이 답이다
손봉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부소장 인터뷰
도시 계획 단계에서 교통 정책 고민 필요
시민에게 충분한 정보와 옵션 제공 통해
수용성 있는 교통 전환 모색해야
자전거 최적의 도시 고양, 인프라 개선 시급
[고양신문]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지를 먼저 결정해야 해요. 지속가능 교통은 그 도시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고양시든 어디든, 그 질문에서 출발하면 답은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 모두 우리가 미래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특히 넷제로(Net-Zero),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교통으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다. 자동차 중심의 교통 체계는 환경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이동권, 안전권, 삶의 질을 위협한다. 손봉희 이클레이(ICLEI) 한국사무소 부소장은 사람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하며, 충분한 정보 제공과 편리한 인프라 구축을 통해 시민들이 지속가능한 방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8일 고양시 킨텍스 2전시장 오피스동에 위치한 이클레이 한국사무소를 찾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클레이에 대해 소개해달라.
이클레이는 전 세계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지속가능 도시 네트워크다. 공식 명칭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 지방정부협의회(ICLEI - Local Governments for Sustainability)'이고, 현재 전 세계 약 2500개 도시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본부는 독일 본(Bonn)에 있고, 각국에 지역 사무소가 설치돼 해당 지역 도시를 지원한다. 이클레이는 5대 도시비전을 통해 지속가능 발전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탄소중립 도시, 회복력 있는 도시, 자연기반 도시, 순환경제 도시, 공정한 도시. 이 5대 비전이 이클레이가 바라보는 지속 가능한 도시의 모습이기도 하고 지방 정부들과 같이 활동하고 있는 핵심 분야이기도 하다.
이클레이 한국사무소는 현재 60여개의 지방 정부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사무소에서는 5대 비전 중에서도 탄소 중립, 생물 다양성, 기후 에너지, 자원 순환 분야를 다루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탄소중립기본법' 시행 이후, 많은 지자체가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라,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실행을 지원하는 역할이 커졌다. 이클레이의 가장 큰 장점은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점이다. 파리 협약, 생물 다양성 협약과 같이 살기 좋은 지구를 만들기 위한 글로벌적인 목표가 있다. 단순히 국내 사례에 머무르지 않고,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등에서 이뤄지는 모범사례들을 한국 지자체들과 연결해주고, 반대로 한국의 우수 정책을 해외 도시와 공유하는 교류도 이뤄지고 있다.
❚이클레이가 추구하는 지속가능교통의 정의는 무엇이며, 기존 교통정책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지속가능 교통은 단순히 전기차 같은 친환경 차량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통 시스템을 환경적으로도 지속 가능하고, 사회적 약자도 접근할 수 있으며,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도록 교통 구조를 총체적으로 바꾸자는 개념이다.
기존의 도시 교통은 자동차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자가용을 중심으로 도로가 설계되고, 공간이 배분되며, 정책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 체계가 고소득, 중장년층, 자가용 소유자 위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공공 공간이 자가용에 할당되면서 자가용을 사용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이동권을 뺏기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었건, 어린 아이건, 돈이 없건,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해 줄 수 있는 교통 체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속가능교통이 중요하다. 걷기, 자전거, 대중교통 같은 ‘모두를 위한 교통’을 중심에 두고, 탄소 배출도 줄이는 방식으로 도시를 재설계해야한다. 이클레이는 이를 설명할 때 교통 수단의 위계를 강조한다. ‘도보 > 자전거 > 대중교통 > 공유 교통 > 자가용’ 순으로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 지속가능한 도시로 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교통전환은 왜 중요한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중 교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13% 정도로 잡힌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유럽과 같이 에너지 전환이 많이 된 곳에서는 교통에서 나오는 배출 비중이 훨씬 더 높다는 점이다. 현재 유럽의 온실가스 25% 정도가 교통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고, 2030년 정도 되면 50% 이상이 교통에서 나온다고 예측되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에너지 전환을 해도 교통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탄소 중립으로 갈 수가 없는 거다. 특히 도심일수록 교통 부분이 차지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비율이 굉장히 높다. 산업이 없고 주거 지역이 많은 이런 고양시 같은 도시에서는 특히 그렇다. 따라서 지역에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할 때 교통 분야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전기차 확대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전기차 전환은 필요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우선 차량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에너지 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기차도 생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많은 자원을 사용하는데 특히 배터리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무엇보다 도로 점유율을 놓고 보면 전기차도 자가용과 동일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즉 도시 공간의 과밀, 보행 공간 축소, 교통사고 위험 같은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차량 수요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 정책의 방향이 ‘자동차를 친환경차로 대체하자’가 아니라 ‘자동차 의존도를 낮추자’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도시 공간의 재설계가 동반돼야 한다.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이용이 편리한 도시, 대중교통 연계가 쉬운 도시가 돼야 시민이 자발적으로 자가용 이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지속가능교통 관련 정책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면.
덴마크 코펜하겐 사례를 들고 싶다. 과거 이 도시는 오일 파동을 거치면서 시민들이 나서서 석유사용을 대체할 수 있는 교통인프라를 요구했고 그 결과 자전거 인프라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축했다. 코펜하겐은 자전거 도로 및 신호등, 자전거 네트워크, 타 대중교통과의 연결성을 만들어서 실제로 자전거가 제일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도시 인프라를 조성했기 때문에, 자전거 중심 정책이 가능했던 것이다.
예전 코펜하겐 방문 당시 비결을 물어봤는데 담당자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인프라 스트럭처’. 즉 사람들이 자가용이 아닌 다른 이동수단을 선택할 수 있게 하려면 그만큼의 도시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보와 자전거 이동을 우선시하고 거기에 대중교통과의 연계성을 확보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자가용이 아닌 다른 이동수단을 선택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옵션'을 줘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교통부서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고, 도시 계획 전반에 반영이 돼야 한다. 유럽의 좋은 사례를 보면 도시 비전에 교통 정책이 다 포함이 돼 있다. 파리 ‘15분 도시’ 전략이나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 모델 모두 마찬가지다.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어떤 삶을 추구할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교통을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사례 중 참고할 만한 도시가 있다면.
2013 수원 생태교통 축제도 성공적인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일회성 행사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2주 동안 해당 지역 거리에 차량진입을 막고 자전거와 전기 스쿠터 같은 친환경 이동수단만 다니게 했다. 주민들끼리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당시 경험 덕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행궁동 주민들 중심으로 차 없는 거리 도입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 지속가능한교통 정책을 위한 시민 참여나 공공인식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시민이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선 충분한 정보 제공이 먼저다. 시민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교통 정책이 왜 필요하고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를 알려줘야 한다.
가령 프랑스 파리의 경우 전문가가 문제 지역을 분석하고 시민이 공간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시가 예산을 지원해 시범사업을 실행한다. 전문가들이 팀을 꾸려 문제가 있는 지역을 선정하고 대안을 분석한 뒤 그 정보를 시민들에게 주면, 시민들은 그것에 기반해서 구상안을 낸다. 그 중 시 정부가 선택한 안들에 대해 실제로 시범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 이를 통해 주차 공간을 쉼터로 바꾸거나, 보행자 전용 거리로 만드는 등의 실험이 이뤄졌고, 평가가 좋으면 제도화한다.
아무 아이디어가 없는 상태에서는 변화하기 어렵다.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대안을 제시하고 거기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전문가의 몫이기도 하고 지자체의 몫이기도 하다.
❚고양시에 바라거나 제안할 내용이 있다면.
고양시는 평지 지형이고, 녹지도 많아서 도보와 자전거에 매우 적합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서울과 붙어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공간 여유가 있어서, 사람 중심의 교통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과거 공공자전거 정책 ‘피프틴’같은 좋은 사례가 있었는데 폐지된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는 자전거 도로가 단절돼 있고, 노후된 구간도 많아 실질적인 이용이 어렵다. 이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양시가 도시 비전을 먼저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라는 목표를 세운다면, 자전거 인프라 확충, 보행환경 개선, GTX역과의 자전거 연계, 쇼핑몰-공원 간 자전거 동선 설계 같은 방식의 교통 정책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다. 정책이 파편적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총괄 조정 기능도 필요하다.
인터뷰=남동진 기자, 정리=김현정 인턴기자
이 기사는 녹색전환연구소와 리영희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