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고양신문] 최근 야생동물로 인한 다양한 피해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가장 가슴 아픈 피해로는 2024년 12월 29일 발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있다. 당시 사고는 착륙 중이던 항공기 엔진에 가창오리 떼가 빨려 들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고는 인간이 만든 시설물이 야생동물의 서식지에 근접하게 건설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이런 안타까운 피해는 아니지만 최근 문제가 되었던 러브버그 문제, 도심에 출현한 말벌이나나 멧돼지 등도 인간의 생활권과 야생동물들의 활동권역이 겹쳐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곰이 주거지 주변에 나타나 문제가 되고 있다.

야생동물 서식지와 인간의 활동지역이 겹쳐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점점 더 빈번하고 복잡해져 가고 있다. 이를 인간-야생동물 갈등(Human-Wildlife Conflict, HWC)이라고 한다. 이는 생태계 파괴와 개발의 불균형으로 인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야생동물들이 인간이 살고 있는 주거지나 농경지로 내려오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활동지역이 겹쳐지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으로 가장 위험한 것은 인명피해다. 멧돼지, 곰 등 대형 야생동물과의 직접적인 충돌로 인해 사망, 부상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갑작스러운 야생동물과의 마주침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스트레스와 공포를 유발해 야생동물의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외국에서는 국립공원을 탐방할 때 이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탐방 전에 안전교육을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이와 같은 교육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농작물이나 가축피해, 시설이나 차량 파손도 큰 문제다. 멧돼지, 고라니 등과 같은 동물들은 농작물을 훼손해 농가에 경제적 손실을 입히기도 한다. 특히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농가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삵, 수달 등은 양계장, 양어장 등을 습격해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와 도로 시설물, 주택가 울타리 등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다. 로드킬(Roadkill)은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차량 파손 및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야생동물로 인한 질병전파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조류독감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 광견병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야생동물의 잦은 출몰이나 질병 확산 우려는 시민들에게 야생동물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유발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있다.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더 큰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야생동물만의 일방적인 문제점이 아니라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로 인해 야생동물 보호와 인간의 안전 및 재산권 보장 사이에서 윤리적인 딜레마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포획, 살처분 등과 같은 개체 수 조절 방식이나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막기위해 설치한 울타리가 산양과 같은 보호대상 동물들의 이동을 가로막아  굶어죽거나 부상을 당하는 일들이 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인간-야생동물 갈등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생물다양성 보전 등 다양한 문제들이 혼합된 복합적인 문제다. 따라서 단일한 대책보다는 다각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고민할 문제는 예방과 완화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먼저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보전하고 잘 관리해야한다.  단절된 서식지를 연결하는 생태통로를 조성해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서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곰이나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주요 먹이원인 참나무 등의 같은 나무를 잘 보전하여 산림 생태계 건강성을 회복하고, 야생동물이 민가로 내려오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철새들이 찾아오는 습지나 갯벌과 같은 중요한 야생동물 서식지를 보호하고 인위적인 훼손을 최소화해야한다. 

또한 인명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야생동물과 마주쳤을 때의 행동 요령(소리 지르지 않기, 등을 보이지 않고 천천히 물러서기, 은폐물 이용, 신고 등)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교육해야 한다.  등산객과 농업인 등을 대상으로 야생동물 출몰이 잦은 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 설치, 위험 구간 진입 자제 권고 안내판 등을 통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으로 야생동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고 보전하는 데 집중해, 야생동물들이 굳이 인간 활동지역으로 내려오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신도시 개발이나 대규모 개발 사업 추진 시, 초기 단계부터 야생동물 서식지를 고려하고 생태계 영향 평가를 강화해 인간과 야생동물의 서식지 중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람들의 활동이 최소화되는 보호지역 면적을 증가시켜 인간 활동이 야생동물과 중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생동물 관리는 정부나 특정 기관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 주민, 시민단체,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논의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생동물의 생태, 행동 양식, 이동 경로 등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관리 및 피해 예방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갈등은 단순히 유해 동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부분을 고민하고, 야생동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현명하고 지속가능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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