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프리즘]
[고양신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지역신문을 ‘사회 인프라’의 반열로 올려놓은 뚝심있는 언론인이 며칠전 신문사를 떠났다. 스물다섯에 시민기자로 입사해 30대 중반부터 24년간 발행인을 맡았던 이영아 전 고양신문 대표 이야기다. 지난 21일 고양신문 창간 36주년 기념식을 겸한 이 전 대표의 퇴임식에는 500여 명의 시민이 행사장인 고양YMCA 종석홀을 가득 메웠다. 참석자 대부분은 오랜 시간 그와 함께 더 나은 도시를 꿈꾸며 인연을 맺어온 벗 같은 시민들이었다. 행사장의 뜨거운 분위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자 애쓴’ 한 언론인의 열정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화답으로 보였다.
유명 언론사도 아닌 작은 지역신문 대표의 퇴임식에 왜 시민들은 열렬히 반응한 걸까. 이 전 대표와 고양신문이 걸어온 발자취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고양신문은 지난 36년간 단순히 지역 소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행정광고 배제’라는 탄압 아래서도 권력 감시에 눈을 부릅뜨고, 정책과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지역 공론장을 활짝 펼쳤다. 신문사 밖에서도 분주히 움직였다. 매달 고양포럼과 고양경제포럼을 열어 중요 의제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집단지성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탐색했다.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위한 주민 소통 프로그램으로 책 읽기 캠페인, 마을숲 탐사, 걷기 축제, 생태평화여행 등이 끝없이 이어졌다. 청명한 가을날, 일산호수공원에서 행주산성~북한산 어귀까지 수천 명이 함께 걷는 고양 바람누리길 걷기는 고양을 대표하는 시민 축제가 되었다.
고양신문은 만성적인 경영난에 시달리면서도 주민 소통과 민주적 공론장이라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항간에 고양신문을 두고 “고양시에 없어서는 안 될 사회 인프라”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지역언론이 사회 인프라로 취급되는 미국에서는 지역언론사에 광고하는 중소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거나 지역기자 고용시 세금을 공제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이 펼쳐진다. 또 구독이나 후원을 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주고, 일부 도시는 정부 광고 예산을 지역언론사에 50%까지 할당한다. 미국 정부와 학계는 지역언론이 지역사회의 결속력, 정보 접근성, 민주적 공론장 형성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필수적인 ‘사회 인프라’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서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전체의 25% 수준인 2200개의 지역신문이 문을 닫았는데, 지역 민주주의 기반이 붕괴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언론을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문화, 다양성을 지탱하는 공공 인프라”라고 평가하며, 지역신문의 공공적 역할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박수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지역언론은 여론의 다양성과 민주주의, 그리고 지역문화 보존을 위한 핵심 기반”이라며, “지금 그 토대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입법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언론의 붕괴는 지역사회의 여론 형성과 공적 정보 전달이라는 공론장의 해체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마지막 ‘발행인의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지역신문을 통해 소통하고, 소통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이 바뀌어야 나라도, 세상도 바뀔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고양신문 독자, 회원이 소통의 물결을 일으켜 지역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고양시를 세우기를 기대해본다. 아울러 그가 꿈꾸는 “더 나은 삶, 더 나은 도시를 위한 프로그램과 정책, 제도를 만드는 일”이 꼭 성공을 거두길 시민의 한 사람으로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