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이영아 대표 퇴임

25살에 입사해 34년 몸 담아
지역시대 연 1세대 지역언론인
고양신문 자유로운 정론으로 성장

이영아 전 고양신문 발행인 겸 대표이사가 퇴임인사를 하고 있다.
이영아 전 고양신문 발행인 겸 대표이사가 퇴임인사를 하고 있다.

[고양신문] “고양시는 신문이 없던 시절, 지역은 서울의 이야기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고양신문이 생기고 나서야, 고양시의 행정과 이웃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은 소통의 통로입니다. 민주주의는 소통입니다.”

고양신문 창간 36주년 기념식을 겸해 이영아 대표 퇴임식이 열렸다. 중앙언론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지역언론 시대를 연 1세대 지역언론인 이영아 대표의 퇴임은 지역 안팎으로 많은 울림을 주었다. 지난 21일 풍동 YMCA에서 열린 퇴임식은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지역언론과 지역민주주의의 어제와 오늘을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5살에 입사해 고양신문과 한 몸처럼 살았던 이영아 대표의 34년 인생을 퇴임 인사를 통해 정리해본다. 

32세, 1억5천 부채 안고 신문 지키다
1990년, 이영아 대표와 고양신문의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학생운동에 열중했던 대학 4학년 겨울에 엄마가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마비 상태가 되었다.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1년 가까이 엄마를 간호했지만 다음 해 엄마가 돌아가셨다. 학생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진출을 준비하며 잠시 아르바이트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114에 전화를 걸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기자 생활을 경험하고 싶어 고양시에 있는 신문사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고, 안내원은 고양신문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렇게 알바 기자로 시작한 고양신문 일이 34년 줄기차게 이어졌다. 

고양신문의 초창기는 끝없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IMF 사태가 일어났던 1988년 급여가 10개월 넘게 밀렸고 직원들은 하나둘 떠났다. 기자 한 명과 자신만 남은 상황이었다. 이은만 전 발행인은 직원들의 밀린 급여를 해결하고 고양신문을 계속 살릴 수 있는 사업가를 물색했다. 문기수 북한산 조경 대표가 고양신문을 인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1년 동안 1억5000만원의 적자가 쌓였다. 문기수 대표는 적자신문을 계속 운영하기 어려우니 다른 사업자를 찾아보자고 했다. 회사는 다시 매각 위기에 처했다. 당시 편집장을 맡고 있던 이영아 대표는 고양신문이 자꾸 매각되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 온 힘을 다해 만드는 신문인데, 주인 없이 떠도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문기수 대표에게 말했다. 

“차라리 저한테 주세요. 저는 신문은 만들 수 있잖아요. 급여는 못 받아도 신문은 계속 만들고 싶어요.”

문기수 대표는 당돌한 청년 이영아의 제안을 쾌히 받아줬다. 인수자금은 0원, 대신 1억5000만원의 부채를 안는 조건이었다. 돈도 경영 경험도 없었지만, ‘신문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절실함 하나로 부채를 떠안았다. 이영아 대표는 본인의 퇴직금 1000만원을 우선 출자하고, 윤주한 전 발행인 등 시민주주들과 함께 7800만원의 자본금을 모아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고양신문은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며 규모를 키웠고, 지금은 국내 지역신문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권력이나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정론을 펼치는 바른 언론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영아 대표는 퇴임사에서 신문을 창간한 초대 발행인 나진택 목사, 가장 힘든 시기를 이끈 이은만 전 발행인, 시민주 고양신문의 상징 윤주한 전 발행인을 차례로 소개했고, 사과나무의료재단과 지역농협 등 고양신문의 가치에 투자해준 지역기업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양신문을 구독해주고, 광고를 내주고, 후원해준 수많은 지역주민들 덕분에 고양신문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머리를 숙였다. 

보도 넘어 공론장, 공공프로그램에 열중 
삼송초와 고양중학교를 다닌 이영아 대표는 고양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기자로 시작해 편집장을 거쳐 대표이사로 올라선 34년의 여정은 그 자체로 고양신문의 역사이자, 한 여성 언론인의 치열한 기록이다.

그의 활동은 언론에만 머물지 않았다. 신문사 운영이 늘 빠듯했지만, 어린이 책읽기 프로그램과 어르신 건강을 챙기는 마을숲친구들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축제도 열었다. 호수공원과 한강, 북한산을 잇는 걷기축제를 18년 동안 이어왔다. 친목 단체는 챙기지 못해도 홀트학교, 지역복지관, 장애인기관 등 여러 복지기관 일에 오랫동안 참여했다.

‘바른지역언론연대’ 회장을 맡아 한국 지역언론의 성장을 위해 일했고,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 특위 세미나 등 언론개혁을 위한 자리에서 지역언론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사회 언론개혁은 대안언론, 지역언론 육성을 통해 가능하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된 지역신문발전특별법을 일반법화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영아 대표의 고양신문  34년 여정을 짤막한 좌담으로 정리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영아 대표의 고양신문  34년 여정을 짤막한 좌담으로 정리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지역언론, 민주주의 실현 위한 소통의 통로 
이영아 대표는 보도의 영역을 넘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프로그램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 어린이들의 책 읽기를 지역사회가 응원하는 프로그램인 스무고개 북클럽은 매년 방학 때마다 5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책 읽기 축제가 됐다.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엄마가 스티커를 붙여주고, 40권의 책을 읽으면 작은 선물을 주는 이 프로그램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고 있다. 

이영아 대표는 지역신문의 핵심가치를 ‘사람과 소통’이라고 말했다. 언론사 대표이사면서도 ‘부고 기사’만은 직접 썼던 그는 고양신문에서 일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가장 재밌고 귀하게 여겨졌는데, 한 사람의 삶에 대한 마지막 기록을 하는 일은 얼마나 귀하겠냐며, 그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영광스러움에 부고 기사는 직접 쓰고 싶었다고 한다.

이영아 대표는 또 고양포럼, 고양경제포럼 등 포럼을 조직하고 다양한 토론회를 기획하며, 여론의 광장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 그는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주로 행정과 정치의 영역 안에서 결정되고 있다며 행정가와 정치인, 시민들이 모여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협의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공론장의 역할은 그가 고양신문에서 이루고 싶은 가장 큰 꿈이었다.  

앞으로 시민과 정치의 간극 좁히는 데 기여 
고양신문을 떠나 어떤 일에 참여할지에 대한 방향도 언급됐다. “이제 시민의 자리에 서고자 합니다. 시민의 자리에서 시민과 정치의 간극을 좁히는 데 기여하겠습니다. 정치는 시민의 삶을 좌우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은 정치를 멀리하고, 정치는 시민의 참여를 자유롭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시민도 정치도 서로의 문을 활짝 열고, 자유롭게 넘나들었으면 합니다. 시민의 정치참여로, 시민과 정치의 협업으로, 도시를 변화시키고 시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지속됐으면 합니다.”

고양신문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전국에서 몇 안 되는 풀뿌리 언론으로 평가받는다. 이제 박경만 발행인, 권구영 대표이사 체제로 새 출발을 알린 고양신문은 ‘10만 독자의 연대, 소통의 힘’이라는 슬로건 아래 다음 36년을 향한 첫걸음을 디뎠다. 이영아 대표가 일궈낸 고양신문은, 그의 발자취 위에서 더 단단히 걸어갈 것이다. 

“신문은 지역의 민주주의를 살리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작은 목소리 하나하나를 귀하게 담아낼 때, 비로소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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