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풀들이 점령한 울금밭
풀들이 점령한 울금밭

[고양신문] 지난 달 중순, 난 고심 끝에 여주에서 벼농사 짓는 일을 접었다. 

자유농장과 여주를 오가며 농사짓는 일은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체력적으로 감당하기가 힘들었고, 몸무게도 오 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양 볼은 푹 패이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내 모습에 가족들은 물론이고 농장회원들도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몹시 걱정스러워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체력이 바닥나면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밭농사와 벼농사를 병행하다가는 어느 한순간 큰 사달이 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 다음날, 나는 모든 미안함을 무릅쓰고 짐을 싸서 자유농장으로 돌아왔다.

농장에 돌아오니 산더미처럼 쌓인 밭일이 떡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사나흘을 푹 쉬었다.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도 나는 일을 재우치지 않고 쉬엄쉬엄해가며 먹는 거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렇다고 입이 호사를 누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끔 장어와 같은 비싼 음식을 먹고 싶긴 했지만 내 형편에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고, 대신 나는 반찬 가짓수를 늘리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지금은 볼에 살이 조금 오르고 체력이 회복되면서 밭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밭농사가 예전처럼 재미가 없고 책임감 하나로 꾸역꾸역 일손을 놀린다는 점이다. 도대체 문제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꾸만 울금밭에 눈길이 간다. 

사실 정초에 내가 여주에 내려가게 된 근본적 이유는 울금 때문이었다. 울금만 잘 팔렸다면 내가 여주로 내려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십수 년간 나는 울금을 꾸준히 완판해왔고 그 덕으로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이 정권을 잡으면서 울금 판매량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올해에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예를 들어 울금이 백 병이라면 열 병쯤 남고 울금을 수확할 초겨울이 되면 그 열 병도 동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열 병만 팔리고 구십 병이 남았고 주문도 거의 없다. 그러니 주력작물이 울금인 나로서는 힘이 빠지고 재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경기에 대한 위감이 고조되면 사람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불필요한 소비부터 줄이기 마련이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복숭아인데 나는 비싼 가격표 앞에서 한참을 군침만 삼키다가 돌아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울금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김매기가 끝난 울금밭. 풀들이 무성한 저 곳도 원래는 다 울금밭이었다.
김매기가 끝난 울금밭. 풀들이 무성한 저 곳도 원래는 다 울금밭이었다.

올봄,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울금 경작 면적을 사십 퍼센트나 줄여버렸다. 더 줄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으나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거라는 확신에 찬 기대감에 그나마 유지하게 되었다. 

찬바람이 불기 전에 윤석열과 김건희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일당들이 모두 감옥에 가고 경기가 회복된다면 울금 주문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 소망 하나로 나는 밭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물론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 나라 살림을 너무 심하게 망쳐놓은 탓에 경기가 회복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세 돌아가는 판을 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경기가 살아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년 봄에 울금밭을 늘리고 농사짓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