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섭 화정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대표
화정1·2동 상권, 공동체 함께 일군 시민조직
1996년부터 자생 상권, 민간 손으로 꾸려와
“민이 이끌고 관이 뒷받침하는 구조가 해답”
[고양신문] “관(官)의 지원 없이도, 24년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역 그 자체였으니까요.”
화정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이하 화사모)의 이화섭 대표. 지역에서 출발한 공동체는 단체를 만들고, 단체는 상권과 주민을 엮어 다시 지역을 지탱해왔다. 그 중심에 선 이 대표는 자신을 “장기 집권자”라며 웃었지만, 그 말엔 지난 시간을 묵묵히 견딘 책임감이 배어 있었다.
덕양구 화정동은 1996년부터 상가 분양이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고, 이듬해인 1999년에는 화정1·2동이 분동되며 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넘어 화합을 도모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렇게 탄생한 화사모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외부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화섭 대표는 그때부터 지산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며 상권 변화의 최전선에서 지역과 만났다. “그저 장사를 하러 들어왔지만,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도시라는 건 결국 사람이 만든다는 걸 체감했어요.” 화사모 초대 유능수 회장에 이어 2010년부터 회장직을 맡아 15년을 이끌어 왔다. “제가 그만두면 모임이 흐지부지될까봐 자리를 지킨 것도 있어요. 다음 대표가 아무 일 안 해도 장학금과 상을 줄 수 있는 기반은 만들어 놔야죠.”
화사모는 지금까지 남성 2만원, 여성 1만원의 회비로 운영된다. 매년 12월 송년회에서는 화정고·화수고 학생 24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고양경찰서·덕양구청·고양소방서 등의 우수 공무원을 선정해 주민이 직접 표창한다. 연중 열리는 장애우 초청 잔치, 주민 체육대회, 무료 결혼식 등도 회원들의 특별회비와 찬조금으로 치러진다. 5000만원 예산의 체육대회도 단 한 번의 차질 없이 열었다.
회원은 현재 185명.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열리는 정기모임에는 40명 안팎이 참여한다. 이 대표는 “24년간 한 달도 빠짐없이 정모를 열었다”며 “이 정도면 가족 이상”이라고 말했다. 정관도 바꿨다. 기존엔 화정에 거주하거나 사업장이 있어야 회원 자격이 있었지만, “화정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누구든 환영”하는 방향으로 확대했다. 지금은 일산 대화동, 부천, 순천에서도 회원이 활동 중이다.
화정1·2동 상권은 계획도시의 장점을 살려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녹지공간과 보행자 전용도로, 동 간 이격거리 등이 생활 편의를 높였다. 이 대표는 “일산보다 화정 분양가가 더 비쌌을 정도”라며 “시장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상권”이라고 강조했다.
화사모는 단순한 봉사단체를 넘어 지역 상권의 버팀목 역할도 한다. 구청·경찰서·우체국 등 관공서에 ‘외식데이’를 제안해 매주 특정일에 구내식당을 닫고 지역 식당을 이용하도록 한 사례는 대표적이다. 경로당에도 “월 2회 외식 계획을 세워 달라”는 요청을 했고, 실제 시행 중인 곳도 있다.
이 같은 민간 제안이 관에서 받아들여지는 데는, 덕양구 한찬희 구청장의 역할도 크다. 이 대표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만들지 않고, 늘 주민과 대화하려 한다”며 “정말 지역에 애정이 있는 공무원”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화정동 일대에는 도비 10억원이 투입돼 조명 교체, 시야 가림 요소 제거, 가로환경 정비 등 상권 재구성 사업이 진행 중이다. 화사모는 이를 계기로 보행자 중심 거리, 감성주점이 밀집한 골목 등을 연계해 상권 간 단절을 줄이려 하고 있다.
“일산의 드라마시티처럼, 상권은 한군데가 무너지면 옆도 함께 무너집니다. 그래서 화정1동과 2동이 나뉘지 않고 함께 가야 해요.” 이 대표는 중앙로, 라페스타 등 일산의 침체 사례를 언급하며, 자생적이고 유기적인 상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화정동은 중부대학교가 가까운 것도 강점이다. “학생들은 결국 소비하러 나옵니다. 자연스레 화정으로 유입되죠.” 덕양구청 앞 ‘차 없는 거리’와 토요 아나바다 행사 등도 다시 활성화할 계획이다.
“화사모는 단체지만, 결국은 중심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가 상권을 살렸고, 그 힘으로 우리는 24년을 견뎠습니다. 이제는 100년을 준비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