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함께하는 이웃_박래신 프로그램 개발자

‘하리’ 봉사는 인생의 전환점 돼
티 나지 않게, 의미 있게 활동하고
인문 플랫폼 기획자의 삶도 꿈꿔

[고양신문] 혼자 일하며 며칠씩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 일상. 누군가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고독이지만, 박래신(43세) 개발자에게는 오랜 시간 익숙했던 삶의 방식이다. 김포에 거주하며 일산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활동 중인 그는 어릴 적부터 컴퓨터를 좋아했고, 중학생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 

박래신 프로그램 개발자.
박래신 프로그램 개발자.

성인이 되어서는 게임 개발을 중심으로 커리어를 쌓았으며, 군 복무 시절에는 전산실에서 군용 서비스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지역 운영 시스템과 도로 관리 솔루션 등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전문성을 키워왔다.

일산동구 백석동 교보문고 앞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밝고 편안한 인상이었다. 자신의 지난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모습에서 그간 겪어온 긍정적인 변화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과거 그는 개발자라는 직업 특성상 혼자서 오랜 시간 작업해야 하는 환경에 놓이면서 깊은 고립감을 경험했다. 온라인 회의와 자동화된 시스템 덕분에 업무 효율은 높아졌지만,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쌓이며 정서적 단절감도 커지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율적인 학습 환경과 유연한 일정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개발 업무에 만족했다.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익히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이를 실무에 빠르게 적용하며 성취감도 얻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자각을 했다. 아무리 효율적인 업무 환경이라 해도, 정서적 공백과 내면의 외로움은 결코 기술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겪었다. “우연히 ‘독서하리’라는 이름의 독서 모임을 알게 됐고, 그곳에서 잊고 있던 나 자신과 다시 만나기 시작했어요. 책에서 나를 발견하고, 책과 나를 연결하는 경험은 독서의 본질 같았어요. 그런 방식 덕분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죠”라며 책이 건네준 전환점을 말했다.

급식 봉사에 참여해 지역의 이웃에 삼계탕과 먹을거리 끄러미를 전달하는 박래신 씨.
급식 봉사에 참여해 지역의 이웃에 삼계탕과 먹을거리 끄러미를 전달하는 박래신 씨.

독서하리는 단순히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자리를 넘어서, 책의 내용을 각자의 삶에 연결해보는 내밀한 경험을 중시하는 모임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 안에 눌려 있던 감정과 생각들을 천천히 꺼낼 수 있었고, 독서가 삶의 거울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책을 통한 자아 탐색은 그를 회복으로 이끌었고,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할 수 있는 계기를 알려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독서하리의 철학에 깊이 공감했고, 자연스럽게 ‘봉사하리’ 활동으로도 발을 넓혔다. 무료급식 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개발자라는 전문 영역을 넘어 전혀 다른 환경과 마주했다. 낯선 자리, 익숙하지 않은 노동,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점차 그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교보문고 일산에서 만난 그는 이미 두 손에 두 권의 책을 들고 있었다.
교보문고 일산에서 만난 그는 이미 두 손에 두 권의 책을 들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식기류를 정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삶이 자신에게 더 편안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타인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잔잔한 만족과 자존감을 안겨주었다.

“개발 업무에 집중할수록 점점 예민해지던 모습을 되돌아보며, 감정의 표현과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닫게 되었어요. 기술적인 역량은 뛰어날지 몰라도,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오해와 상처는 결국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자신마저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거죠. 이성과 감성의 중심에 있을 때 저는 가장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 두 세계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라며, 그는 어울림의 중요성과 확장성을 말했다.

 독서하리 구성원들과 함께하며 찍은 사진.
독서하리 구성원들과 함께하며 찍은 사진.

그는 기술과 감성의 조화를 고민하며, 삶과 일 모두에서 조율된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생활 습관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과 동료와의 관계,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 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개발자로서의 전문 기술뿐 아니라, 유연한 사고와 지속해서 성장하려는 자세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과거의 기준에 머무르는 사고방식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기 때문이다.

박래신씨는 봉사와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예전보다 다른 자신을 느끼고 있다.
박래신씨는 봉사와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예전보다 다른 자신을 느끼고 있다.

삶의 전환을 경험한 그는 이제 자신이 얻은 회복과 배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최근 독서하리와 봉사하리 활동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삶의 태도를 함께 만들어 가는 인문학 기반 온라인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독서와 봉사, 자기 이해와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누구나 함께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내가 회복했던 방법들을 나누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기여 아닐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구입한 책을 곁에 두고 다른 책을 보며 약간의 시간을 글과 마주했다.
 구입한 책을 곁에 두고 다른 책을 보며 약간의 시간을 글과 마주했다.

오랜 시간 홀로 일해온 개발자 박래신씨. 이제 사람들 속에서, 자신과의 깊은 대화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천천히 그려가고 있다. 책과 봉사,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는 그는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길로 방향타를 돌렸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걸음으로, 그는 오늘도 회복과 성장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사람을 위한 기술, 삶을 위한 선택. 그의 길은 그렇게, 사람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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