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호의 책이 있는 풍경
➌ 서울 광진구 ‘날일달월’

‘파주북소리’ ‘지혜의숲’ 함께 만들고
함석헌낭독회 참여한 ‘책의 동지’이자
‘도서관 친구들’ 창립한 독서운동가
“독도에 도서관 세우는 꿈꿔요”

낮과 밤을 밝힌다는 ‘날일달월’ 대표 여희숙은 늘 독서운동 현장에서 봉사하고 있다.
낮과 밤을 밝힌다는 ‘날일달월’ 대표 여희숙은 늘 독서운동 현장에서 봉사하고 있다.

[고양신문] 지난 5월에 나의 책 『세계서점기행』 러시아판이 출간되었다. 2016년에 출간된 『세계서점기행』은 중국어판(2019), 타이완판(2019), 일본어판(2021)에 이어 러시아판이 나왔으니, 5개국의 독자들이 읽게 되었다.
『세계서점기행』을 위해 나는 11번의 해외 취재여행을 가야 했다. 유럽·중국·미국·일본·타이완의 서점인들과 책의 세계, 서점의 애환을 이야기 들었다. 

독서운동가·독서교육자 여희숙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 78길 7’에 아름다운 서점 ‘날일달월’이 있다. 밝은 세상 ‘일월’(日月)이다. 책을 사랑하고 책 읽기를 누리는 ‘북마니아들의 아지트’다. 이 서점의 여희숙 대표가 7월 4일 『세계서점기행』 5개국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를 기획했다.
여희숙 대표는 내가 정말 존경하는 독서운동가이자 독서교육자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책의 가치를 펼치는 ‘책의 동지’다. 우리의 주제는 언제나 책의 세계다. 내가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그는 이사로 동참했다. 책 축제 ‘파주북소리’와 열린 서재 ‘지혜의 숲’을 함께 만들었다.

그와 나는 늘 새로운 프로그램을 꿈꾼다. 우리의 꿈은 실현된다. 한길사는 2009년 젊은이들을 위한 『함석헌저작집』 전30권을 펴낸다. 한길사는 1982년부터 88년까지 『함석헌전집』 전20권을 낸 바 있다. 나는 이 땅의 청년들이 함석헌 선생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저작집』을 펴낸 그해 봄부터 10회에 걸쳐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있던 교보문고 강당에서 ‘함석헌낭독회’를 진행했다. 여희숙은 이 낭독회에 참여해 함석헌 선생의 글과 말을 빛나게 했다. 지금은 작고한 조각가 최만린 선생도 낭독에 나섰다. 최불암 선생의 낭독은 함석헌 선생의 글의 진면을 우리 가슴에 심어주었다. 
이날의 『세계서점기행』 북토크에서 나는 두 시간에 걸쳐, 책과 서점, 책의 정신과 역량을 이야기했다. 서점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가 아닌가.
저 가난한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고등학교에 갔을 때 만난 교문 앞 그 서점들의 풍경, 보수동 책방골목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했다. 가슴에 각인되어 있는 그 서점들의 이미지가 나를 출판으로 이끌었고, 『세계서점기행』을 쓰게 했을 것이다.

『세계서점기행』 읽고 책방 결심
-어떻게 서점을 하게 되었습니까?
“대표님의 『세계서점기행』을 읽고 서점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64평이던 아파트를 팔아 32평으로 줄이고, 그 나머지로 서점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2017년이었습니다.”
여희숙뿐 아니라 여러분들이 『세계서점기행』을 읽고 서점을 하게 되었다고들 했다. 세상의 문명양상이 달라져서 그럴까. 거리거리를 찬란하게 빛내던 그 서점들이 자취 없이 사라지는 것이 나는 안타깝고 슬펐다. 서점의 정신과 철학, 그 인문예술적 사상을 동시대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어 나는 『세계서점기행』을 썼던 것인데, 우리 옆에서 책과 책 읽기의 가치를 운동으로 펼치는 여희숙이 서점을 스스로 열다니, 그도 나도 함께 놀라는 것이었다.
  서점을 ‘날일달월’로 명명했다. 해와 달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낮과 밤의 순환, 책 읽기야말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이치를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각인시킨다. 

2005년에 ‘도서관 친구들’ 출범
- 책방 이름 참 좋습니다.
“책방 이름 짓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낮과 밤을 밝히는 ‘날일달월’을 좋아들 하십니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겠지요.”
“책 읽는 친구들이 우리 출판사 이름 ‘한길’이 좋다고들 해요. 그러나 어떤 책을 기획하느냐가 중요하겠지요. ‘한길’은 하나의 길, 큰길, 바른길, 광장, 이런 뜻을 갖고 있을 터인데, 나름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언명령’ 같은 것입니다. 시대정신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자고 다짐합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달마다 변화가 일어나겠지요”
여희숙은 우리 시대를 아름답게 만드는, 책과 독서의 세계를 고양시키는 일꾼이다. 그는 늘 독서운동의 현장에서 봉사하고 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마산, 하동, 광양, 포항에서 제법 오랫동안 교사로 봉직한 여희숙은 2005년에 ‘도서관 친구들’을 창립한다. 소박하고도 아름답게 ‘봉사하는’ 새로운 운동이다. 현재 13개가 되는 ‘도서관 친구들’은 몇 가지 흔들림 없는 당초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첫째, 기금을 투명하게 쓴다. 책 기증, 도서관의 행사 지원을 돕는 다. 월 회비는 2,000원 이상이다.
둘째, 도서관 친구들은 도서관 운영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칭찬하기 격려하기다. 도서구입비가 1억 이상 되는 공공도서관이 현재 1,200개 정도 되는데, 2,000개가 될 때까지 ‘돕는 일’을 해보자 한다. 그때는 출판사들이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여희숙 대표가 살기도 하고 중심활동이 이뤄지고, 날일달월이 있는 광진구의 광진도서관에서 도서관 친구들이 시작되었는데, 후원금으로 지금까지 도서관에 1억 4천만 원어치의 책을 구입할 수 있게 후원했다. 광진도서관 친구들이 커져서 2014년에 ‘한국도서관 친구들’이 되었다. 
셋째, 다양한 독서모임을 펼친다. 독서운동·도서관운동의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책 읽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어떤 상도 받지 않는다. 상은 도서관이 받게 한다. 도서관의 기능과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다섯째,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 이런 순수한 원칙은 도서관 친구들이 하는 일에 아름답고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도서관 친구들이 올해 20년이 되었다. 전국에서 쉬지 않고 20년 동안 도서관을 후원해온 친구들을 제주도에 모이게 해서 식사대접하는 그런 꿈을 여희숙은 갖고 있다. 여희숙은 또 독도에 도서관을 세우는 것이 또 하나의 꿈이다. 2014년에 ‘독도도서관 친구들’을 만들었고 그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후원회원이 4,000명이다. 이들과 함께 ‘독도디지털도서관’을 지금 만들고 있다.
 
홍성의 밝맑도서관에 한길그레이트북스 기증
지난 2015년 나는 홍성의 홍동에 있는 ‘밝맑도서관’을 보러 갔다. 교육운동가 홍순명 선생도 뵙고 싶었다. 대안학교 풀무학교도 보고 싶었다. 함석헌 선생님의 ‘홍동으로 보내는 편지’가 있지만, 그 교육정신의 현장에 서보고 싶었다. 저 80년대 한길역사기행을 진행하면서 홍성으로 가서 한용운 시인과 김좌진 장군의 민족독립정신을 답사한 바 있다. 홍성의병투쟁의 현장도 답사했다. 강만길 선생이 현장 강의를 해주셨다.
‘밝맑도서관’은 대단했다. 건축도 아름답고 그 장서들도 좋았다. 그런데 한길사가 펴내고 있는 한길그레이트북스 130여 권이 서가를 장식하고 있었다. 놀라운 풍경이 아닌가. 이 시골에 이런 책을 장서해 놓다니.
나중에 알았다.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 해달라고 해서 밝맑도서관을 방문한 여희숙 씨와 동행한 남편 최규석 씨가 방문 기념으로 기증한 것이었다. 포스코에서 일하던 남편은 부인에게 늘 말했다. 
“돈은 내가 벌 테니 당신은 하고 싶은 좋은 일 해요.”
여희숙은 풀무학교의 후원회원이다. 그때 풀무학교는 각 교실 절반이 책으로 꽉 차 있었다. 풀무학교의 교육정신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1996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한길그레이트북스’는 현재 제196권인 앙드레 기유의 『비잔티움 문명』까지 출간되고 있는데,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으로부터 시작되는 한길그레이트북스의 장대한 고전들이 홍동의 밝맑도서관에 꽂혀 있어서 나는 감동했다. 한길그레이트북스를 시작하면서 나는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을 집대성한다’는 자못 거창한 슬로건을 걸었다.  

황룡사지에서 아이들과 시낭독
7월 4일 그날 저녁 북토크를 위해 날일달월을 방문한 나에게 여희숙 선생은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부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당하기 열하루 전 10월 15일에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1권 초판본과 1984년 10월 10일에 출간된 리영희 선생의 『분단을 넘어서』 초판본 두 권을 들고 있었다. 1989년까지 전6권으로 출간된 ‘해전사’를 다 읽고 지금도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1980년대 초반으로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 어떤 책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까?
“법정스님의 작은 책 『무소유』가 두고두고 기억됩니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책 『사과나무밭 달님』은 수도 없이 선물했습니다.”
포항제철 동초등학교에서 봉직하고 있을 때 도서관을 담당했다. 정채봉 작가를 초청해 ‘달빛 독서교육’을 열었다. 음력 10월 보름 전후 1주일간 학교도서관에서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달을 보면서 책 읽기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달빛독서기행’의 일환으로 경주로 갔다. 『삼국유사』 읽고 경주를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다. 황룡사지에서 시 낭독 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2007년 KBS 라디오를 통해 ‘책 읽어주는 여희숙입니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서점 ‘날일달월’ 여희숙 대표는 7월 4일 『세계서점기행』 5개국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를 기획했다.
서점 ‘날일달월’ 여희숙 대표는 7월 4일 『세계서점기행』 5개국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를 기획했다.

날일달월의 우정과 환대!
- 날일달월 서점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합니까.
“거의 매일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우선 책방입니다. 책방이기에 행사하기 참 좋지요. 북토크가 계속되고 출판기념회도 합니다. 책 낭독회도 합니다. 새로 진행되는 희곡 낭독회도 재미있어요. 대학로에서 한 분이 오셔서 이끌어줍니다. 희곡 읽기 모임은 7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땐 연극배우를 초청해 낭독행사 했습니다.”
저간의 경험과 실천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책 읽는 교실』(2009), 『토론하는 교실』(2009),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2010),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자란다』(2014), 『밑줄 독서 모임』(2023).
“도서관 하면 마음이 설렙니다. 오래전부터 제가 꿈꾸어왔던 도서관은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문이 활짝 열리는 곳, 책을 읽지 않아도 가보고 싶은 곳, 내 생각이 당당해지는 곳입니다. 또한 재미있는 행사가 1년 내내 열리고, 달 밝은 밤 부모님과 함께 촛불 앞에서 책도 읽고, 직접 저자를 만나 이야기도 나누는, 그곳에 가면 책을 읽지 않아도 가슴이 뿌듯해지는 곳입니다. 그런 도서관에서 저는 아이들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한 책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독서운동가·도서관운동가 여희숙은 그가 체험으로 체득한 지혜를 이야기해주는 다양한 강의를 전국에서 하고 있다. 월 1, 2회의 강연 프로그램 일정이 잡힌다. ‘강의료’의 절반은 무조건 그 지역의 책방에서 책을 구입한다. 나도 어디에 가면 그 지역의 책방을 방문하고, 책 한두 권을 구입한다. 서점은 공공예산으로 유지하는 도서관처럼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카페에 가면 커피 마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책방에 가서는 책을 만져만 보고 구입을 안 한다. 이날 나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을 구입했다. 이타가키 류타가 쓰고 고영진·임경화가 옮겼다. 값 3만원.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지만 가장 값싼 것이 책 아닐까. 
날일달월의 지향이라면 우정과 환대다. 여희숙 대표의 서점철학이다. 『세계서점기행』의 북토크를 마치면서 그가 말했다.
“내년엔 한길사가 창사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까지 3,500여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내년에 날일달월은 한길사 50주년을 기념하는 북토크를 하겠습니다. 한 저자가 아닌 한 출판사의 50년을 살펴보는 새롭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입니다. 한길사의 50년은 우리 시대의 지성사·사상사이자 우리 모두의 정신적 탐험, 그 궤적일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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