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고양 마을숲 생태탐사 ➌ 영주산, 묘하나골산
보기드문 도시숲 용출수 습지 생물다양성 풍부
시 ‘야생동물보호구역’ 지정뒤 관리 않고 방치
시민들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보전나서야”
[고양신문] 도시숲에서 보기 드문 ‘용출수 습지’를 품은 영주산은 해마다 여름 장마철이면 멸종위기종인 맹꽁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고양시는 2019년 영주산 습지 주변에서 서식하는 맹꽁이와 무자치, 새호리기, 수리부엉이 등 야생동물의 종 보호를 위해 이 일대를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2025 고양 마을숲 생태탐사단’은 덕양구 내곡동, 대장동과 일산동구 산황동 사이에 자리한 영주산과 묘하나골산에 대한 생태조사를 지난달 15일과 25일 두 차례 진행했다.
덕양과 일산의 경계를 잇는 영주산, 묘하나골산은 도시의 확장을 억제하는 완충지대이자,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생태축이 대장천, 도촌천을 통해 한강하구 장항습지로 연결되는 고양시의 주요 생태축이다. 낮은 구릉성 산지이지만 지하 용출수 덕분에 사철 물이 풍부해 영주산과 산황산을 오가는 동물들에게 중요한 식수원이며, 맹꽁이와 같은 양서류의 번식지로서도 가치가 큰 마을숲이다. 하지만 정상을 제외한 산 대부분이 사유지라 숲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변에는 한국수자원공사 경기서북권지사와 대곡초등학교, 몇 개의 자연마을이 남아있다.
갈대, 부들로 가득찬 맹꽁이연못
고양정수장을 오른쪽에 끼고 잠시 걸으면 숲이 시작되는 지점에 야생생물보호구역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에는 토석 채취, 수면 매립 등 생태계를 훼손하거나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훼손할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경고 글이 적혀있다. 표지판이 없었더라면 이곳에 맹꽁이가 서식하는 작은 연못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갈대가 습지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다.
지난달 15일, 마을숲 생태조사팀이 수풀을 헤치고 조심스럽게 습지로 다가가니 ‘군사시설 접근금지’ 표지판과 철조망이 길을 막고 집채처럼 수북이 쌓인 드럼통이 위압감을 내뿜었다. 말이 산이지 해발 61.5m의 작은 동산에 불과한 영주산은 이 도시의 대부분 마을숲처럼 서울 방어를 위해 군사시설에 몸을 내주고 있었다. 연못 주변에는 고라니가 젖은 풀을 먹고 설사한 듯 형태가 일그러진 배설물이 눈길을 끌었다.
갈대와 부들, 애기부들과 같은 다년생 초본이 가득 들어찬 연못 가장자리에서 3일 전에 산란한 것으로 추정된 맹꽁이 올챙이 6마리와 알 30여 개가 발견되었다. 비가 내린 지난달 17일에는 수자원공사 직원이 연못과 정수장 옆 농수로에서 20~30개체의 수컷 울음소리를 확인하기도 했다. 맹꽁이는 6~7월에 번식을 위해 물웅덩이나 습지, 농경지에 모여 산란하는데 무분별한 개발과 도시화, 수질오염 등으로 서식지가 훼손되어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에코코리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영주산 습지는 애초 용출수를 이용해 벼농사를 짓는 논으로 사용되다가 수자원공사가 들어서면서 2200㎡(약 660평) 크기의 묵논습지가 되었다. 고립된 묵논습지는 불법 매립과 습지 주변 임야 개간으로 면적이 조금씩 줄어들다가 2017 킨텍스 주변 아파트단지 개발 때 사업자가 건축폐기물이 섞인 준설토를 불법 매립한 바람에 습지 대부분이 메워지게 되었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반발하자 고양시는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내리고 2019년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으나 이후 원상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고 관리도 안된 채로 방치된 상태다. 이번 조사에서 영주산 일대에서는 맹꽁이, 청개구리, 참개구리 등 3과 3종의 양서류가 확인되었다.
가시박, 환삼덩굴, 오엽딸기 극성
영주산 탐방로 어귀에는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한 풀들이 대규모 군락을 이루며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들머리를 가득 메운 풀은 가시박, 환삼덩굴, 단풍잎돼지풀, 돼지풀, 애기수영 등 생태계교란종으로 불리는 귀화식물들이다.
강한 생명력과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가시박은 산지 초입에 폭넓게 번져 숲 내부를 위협하고 있고, 반음지 식물인 단풍잎돼지풀은 숲길을 따라 산지 내부까지 퍼져가고 있었다.
영주산을 점령한 또 하나의 불청객은 서양산딸기다. 복분자처럼 까맣게 열매가 익어 복분자딸기와 헷갈리기 쉬운 이 외래식물은 잎이 다섯장이어서 서양오엽딸기라고도 불린다. 줄기에 촘촘하게 달린 가시를 피해 까맣게 익은 열매를 따서 먹어보니 산딸기처럼 달콤하지 않고 맛이 시큼하고 텁텁했다. 오엽딸기는 숲 내부에 넓게 퍼져 다른 초본이 살기 힘들게 하는 등 숲 생태계를 단순화시키고 탐방객의 숲길 이용도 어렵게 해 제거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리기다소나무 조림지에서 참나무숲으로 천이가 진행 중인 영주산과 묘하나골산에서는 총 60과 121속 157종의 관속식물이 확인되었다. 활엽수는 주로 참나무군락으로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혼합림으로 이루어져 있고, 떡갈나무, 신갈나무, 밤나무가 단독으로 출현하였다. 그 아래로 물오리나무, 벚나무, 붉나무가 아교목층을, 조록싸리, 개암나무, 노린재나무가 관목층을 이루고 있었다. 선밀나물, 솔나물, 김의털 등 초본은 영주산습지와 숲길, 무덤 주변에 주로 나타났다.
마을숲 조사를 맡은 이은정 에코코리아 사무처장은 “가시박이나 단풍잎돼지풀을 이대로 방치했다간 생태계교란종이 서식지를 점령하고 오래된 토종식물들은 고사하거나 밀려나 종 다양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서양산딸기는 복분자로 오인하여 방치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서양산딸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적절히 관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이어 “숲 대부분이 사유지로 숲 관리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생태계교란종인 가시박, 단풍잎돼지풀, 돼지풀 등의 위해성을 알리는 인식증진 활동과 토지주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영주산 습지에 갈대, 부들과 같은 다년생 초본이 우점하며 개방된 수면적이 적어져 양서류 번식을 위해 제거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세 작아도 생물다양성 높은 이유
영주산 일대 생태조사에서 포유류는 고라니, 너구리, 두더지 등 3과 3속 3종이 확인되었다. 설치류의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나 종 구분이 어려워 출현종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탐방로와 습지에 2대의 야생동물 관찰용 카메라를 설치해 15일부터 25일까지 11일간 운영한 결과 등산로에서 너구리와 고라니가 각각 3, 2회 촬영되었다. 고라니는 영상 외에도 조사지역 곳곳에서 배설물과 나뭇잎을 따먹은 식흔이 관찰되었다.
영주산은 규모가 작고 생태로가 단절된데다 산을 개간한 경작지가 늘어 대형 포유류가 장기간 머물기는 어렵지만, 마을 주변에 논습지와 연못이 있어 다양한 포유류가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지난 2017년 7~11월 실시한 에코코리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삵과 무산쇠족제비 등 멸종위기종이 관찰되었다.
조류는 10과 12속 12종이 확인되었다. 최다관찰종은 제비로 영주산 초입에서 나무 위, 덤불 등에서 쉬고 있었다. 영주산 습지 주변에서는 파랑새가 잠자리를 사냥하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새매와 기후변화 지표종으로는 꾀꼬리, 뻐꾸기, 제비 등이 관찰되었다.
곤충류는 영주산 습지 주변에서 굴뚝나비 10여 개체가 관찰되는 등 총 41과 61속 62종이 확인되었다. 상수리나무에 수액이 흐르며 장수풍뎅이와 같은 대형 딱정벌레류가 관찰되었으며 장수말벌의 포식흔이 관찰되었다. 무덤가 초지에 메뚜기류, 여치류, 사마귀류가 관찰되었으며 밀도가 높았다. 대발생 곤충인 대벌레는 숲 곳곳에서 흔하게 관찰되었다. 기후변화 지표종으로 넓적배사마귀, 말매미 2종이었고, 생태계교란종은 갈색날개매미충, 미국선녀벌레 2종이었다.
영주산의 생물종은 관속식물, 곤충, 양서류, 거미류, 저서생물, 포유류, 조류 등 7개 분류군에서 총 145과 230속 282종이 확인되었다.
정발산과 고봉산만 있는줄 알았는데…
지난달 25일 실시된 시민탐사에는 동물학자가 꿈이라는 김시운(가람초 3학년)군을 비롯해 시민 25명이 참여했다. 대화마을에 사는 손수정씨는 “고양에 정발산과 고봉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난달 옥녀봉 숲탐사에 참석해 좋은 산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오를 수 있는 고양의 멋진 산들을 더 알고 싶다”고 했다. 수자원공사에 근무하는 유아미씨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주 가지 못했는데 모처럼 자연이 주는 생태계서비스를 흠뻑 받았다. 도시 인근의 마을숲과 야생생물을 잘 관리해 인간과 자연이 잘 공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고양시가 2019년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으나 별다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고양시에 얼마 남지 않은 산 아래 작은 습지를 품은 영주산을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생물들에게 안정적인 서식지를 마련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사무처장은 “영주산은 마을숲과 마을습지의 원형이 보전된 생태계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정서 동물인 맹꽁이들의 번식지이며 지속적인 개발로 갈 곳을 잃은 생물들의 서식지 기능이 높다. 마을숲과 마을습지 주변으로 학교(대곡초)와 마을공동체(영주산공동체)가 있어 이들 공동체가 영주산과 영주산습지의 가치를 발굴하고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 인식증진 캠페인, 교육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 도움 : 에코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