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오랜 전부터 필자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우파들이 주최하는 태극기 집회에서 왜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휘날리는 걸까? 한국 땅에서 한국인들에게 호소하는 데모를 왜 성조기를 흔들며 하는 걸까? 이 의문은 요즘 전철역 앞에 걸린 현수막 글귀를 보며 더 짙어진다. “중국 공산당과 선관위가 만들어준 가짜 대통령”, “가짜 대통령인줄 미국은 안다” 등의 문구는 돈 들여 왜 저런 플래카드를 내거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한다.
근래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주역이 된 전한길 씨의 행보도 상식적인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그는 정권 교체가 된 지난 6월 자신의 유튜브에서 “이 전한길을 건드리는 순간 즉시 미국 트럼프 정부에 알리겠다. 일본, 영국에도 바로 요청해 국제문제가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왜 전한길 씨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아닌 아무 관계도 없는 트럼프 행정부에게 신병을 보호해 달라는 걸까? 자신이 부탁하면 트럼프가 한국 정부를 압박해 자신을 구원해준다고 믿는 걸까?
또 한 장면, 지난 7월 인천 공항에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모스 탄을 환영하기 위해 윤석열 지지자들이 모스 탄의 사진과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으로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감옥에 갇혀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도 모스 탄을 만나려 안간힘을 썼다. 왜 윤석열과 윤석열 지지자들은 이름도 생소한 일개 극우인사를 저토록 추앙하는 걸까?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한국 극우세력의 바램과는 달리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동맹과 적을 구분하지 않고 오직 자국 우선주의 일색이다.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와 생산·투자 확대 및 핵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무역 상대국들에게 일방적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만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또 동맹인 유럽의 나토(NATO) 회원국들에게는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5%의 방위비 인상을 압박해 관철시켰다. ‘미국 우선주의’의 논리는 단순 명쾌하다. 국가 부채가 GDP 규모와 맞먹는 29조 달러에 이르고 연방 적자가 GDP의 6%에 달하는 등 미국의 자원은 고갈돼가고 있고, 중국의 지정학적 위협은 날로 커지고 있기에 오직 미국 국익에 맞춰 외교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한반도에도 트럼프 발 쓰나미가 다가오고 있다. 15% 관세 인상에 이어 ‘한미동맹의 현대화’란 명목의 동맹 재조정 요구가 밀려들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8일 기자 간담회를 통해 “동북아의 맥락이 바뀌었다”며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요구했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중국·러시아가 점점 더 밀착하는 동북아 지정학의 변화로 주한미군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한 미군은 숫자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고 “한 곳에 고정돼 있는 것은 군사적으로 실용성이 떨어진다”며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했다.
미중 분쟁에 한국이 연루될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에는 “미국이 대만을 지원하니 한국도 함께 하자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결론이 지어진 것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대한민국에 요청된 것은 북한을 상대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하란 것이었고,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동맹을 현대화하며 유연성을 발휘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와 관련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한미 간 기존 합의대로 조건에 기초해 추진하자고 역설했다.
동맹의 현대화와 극우세력의 준동 우려
브런스 사령관 등 미 행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미국의 한국에 대한 요구는 국방비 인상을 통한 북한의 재래식 전력에 대한 억지력 강화,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및 대중 견제 동참, 전시작전권의 현상 유지 등이다. 이러한 요구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합리적이겠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하나하나 한·미의 ‘공통 이익’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한미 동맹의 기본 전제인 한미의 ‘공통 이익’은 한반도 평화 확보다. 미국의 패권이 보장되는 동북아의 현상 질서 유지를 위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은 미국에게는 중요한 이익이겠지만, 한국에게는 한반도 평화를 해치면서 추구할 만한 이익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게는 중국과의 선린관계 유지가 한반도 평화 확보와 경제적 이익, 그리고 남북 간 교류·협력 추진을 위해 필요한 중요 이익이다.
한미 동맹 재조정을 앞두고 한국 내 여론은 진영에 따라 ‘방기’와 ‘연루’ 우려로 갈리고 있다. 보수 진영은 북한이 남침했을 때 군사력을 제공하기로 한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지 모른다는 ‘방기’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때 미국이 본토 위협 때문에 ‘확장 억제’ 역할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진보 진영은 대만 사태 등 미중 갈등에 한국이 연루될 위험성을 제기하고 있다. 주한 미군기지가 대중 공격을 위한 발진 기지로 활용될 경우 자칫하다간 중국의 보복 공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재조정이 불가피한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바탕한 우리의 현실성 있는 입장을 만들고 그 합의 기반을 넓히는 일이다.
한국의 보수를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국민의힘이 전한길 등 ‘윤어게인’을 외치는 극우 세력에 의해 급속히 장악돼가고 있다. 그리고 극우세력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보수구원설, 중국 공산당의 한국선거 개입설 등 초현실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극우가 장악한 국민의힘이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관련해 어떤 목소리를 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