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이 기자의 책읽는 사람들 - 나날 낭독모임>

파주 시니어 낭독동아리 ‘나날’, 삶을 잇는 목소리의 힘
"혼자였으면 끝까지 못 읽었을 책, 함께라서 완독"

서로 돌아가며 책을 읽으며 소감을 나누는 시니어독서모임 '나날' 낭독동아리
서로 돌아가며 책을 읽으며 소감을 나누는 시니어독서모임 '나날' 낭독동아리

[고양신문] 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 혼자 읽을 때는 지나쳤던 문장들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낯설게 다가온다. 그렇게 나날이 삶이 깊어진다. 파주 시니어 커뮤니티 공간 ‘나날’의 낭독동아리는 책을 통해 서로의 삶을 듣고,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모임이다.

나날 낭독동아리는 지난해 10월 23일 첫 모임을 가졌다. 시니어공간 ‘나날’을 운영하는 한상수 대표는 시니어 커뮤니티가 건강하게 운영되기 위해선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중에서도 책모임은 접근성이 가장 좋아요. 하지만 단순히 책을 읽고 와서 토론하는 방식보다, 함께 소리 내어 읽고 그 자리에서 느낀 점을 나누는 낭독 방식이 훨씬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공감을 만들어줍니다.”

낭독동아리는 시니어공간 나날의 한상수 대표가 이끌고 있다
낭독동아리는 시니어공간 나날의 한상수 대표가 이끌고 있다

모임 방식은 단순하다. 한 권의 책을 정해,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각자의 감상을 나눈다. 참여자는 8명 안팎. 시니어 회원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으며, 인원이 10명 넘으면 별도의 모임을 만들 계획이다. 한 대표는 "낭독동아리는 나날의 가장 핵심적인 모임"이라며,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새로운 동아리도 추가 운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모임에 참여한 권가인씨는 시니어공간 나날을 운영하는 행복한아침독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낭독이 주는 감정의 울림을 이렇게 설명한다. “책을 읽고 함께 소감을 나누다 보면 머리로만 읽을 땐 몰랐던 내용이 더 깊이 들어와요. 공감하고 소통하는 데 낭독만한 게 없어요.”

강맑실 작가의 '막내의 뜰'의 사투리를 읽다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린 나날 회원들.
강맑실 작가의 '막내의 뜰'의 사투리를 읽다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린 나날 회원들.

임로사씨는 교직에서 35년을 보냈다. 은퇴 후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나날을 알게 됐고, 낭독의 매력에 빠졌다. “육성으로 읽는 낭독의 힘이 있어요. 똑같은 텍스트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요. 텍스트의 수준과 관계없이 서로 깊은 공통분모를 나눈다는 게 신기하죠.”

주부 임미경씨는 세 자녀를 모두 키운 뒤 자신만의 시간을 찾던 중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사실 책을 거의 안 읽던 사람이었어요. 한두 달 오다 말까 했는데, 어느 순간 낭독과 이야기 나누기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방식이 저한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이제는 다음 주가 기다려져요. 8~9개월이 정말 즐거웠어요.”

정기분씨는 김포에서 와서 참여한다. “어디선가 본 문장이 있어요. 늙어간다는 건 단지 어른이 된다는 게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 속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아가는 거라고요. 이 모임은 그 빛을 함께 채색하는 시간이죠.” 그는 시니어 공간 나날을 알게 된 후 “최적화된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이렇게 좋은 활동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나날 낭독모임이 지금까지 함께 읽은 책은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정희원), 『우린 새롭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김녹두), 『발칙한 인생후반전』(박호영·허성희) 등이다.

지난 5일 모임에는 경기도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막내의 뜰』을 읽었다. 강맑실 작가가 쓰고 그린 첫 수필집이다. 한 대표는 “가장 존경하는 출판사 대표의 책”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모임에서는 그림책도 두 달에 한 번꼴로 읽는다. 낭독을 통해 그림책은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는 『꽃이 밥이 되다』(김혜형),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유현미), 『우리그림책이야기』(정병규) 등을 읽을 예정이다.

‘나날’은 민간에서 처음 시도한 시니어 커뮤니티 공간 모델이다. 아직 이용자가 많지 않지만, 한상수 대표는 "생활이 재미있고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커뮤니티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낭독동아리는 나날이 든든히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핵심적인 활동 중 하나다. 이외에도 박완서 읽기 모임, 문화체육관광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도 선정되며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일. 그것은 타인의 삶을 내 목소리로 잠시 살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나날 낭독모임은 그 조용한 행위 속에서 더 깊은 삶의 연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문의 070-4924-0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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