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집중호우 피해 점검]
피해·복구 반복, 창릉천 수변시설
산책로·자전거도로 곳곳 와르르 무너져
수변 친수시설 이용 주민 요구 높지만
잦아지는 극한호우, 관리 방식은 제자리
“창릉신도시, 설계 단계부터 대응해야”
[고양신문] 지난 13일과 14일, 이틀간 고양시에 300㎜에 가까운 빗물을 쏟아부은 폭우는 주요 하천의 친수 시설에 커다란 피해를 남겼다. 특히 지축, 삼송지구가 이어진 창릉천 중상류 피해가 컸다. 피해는 시간당 100㎜에 육박하는 집중호우가 내린 13일 오후부터 시작됐다. 창릉천 발원지 사기막골 계곡에서 시작된 물살은 북한천, 삼천사계곡, 중고개천 등과 만나며 거대한 격랑으로 몸집을 불렸고, 지축지구와 삼송지구를 지나며 수변공원의 산책로, 자전거도로, 보안등 등을 거침없이 휩쓸어버렸다.
하천 시설물을 관리하는 고양시 생태하천과 관계자는 “2018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물살이 잦아든 지난 19일과 21일, 창릉천 상류부터 차례차례 피해 현장을 돌아봤다.
솔내음누리길, 싸릿말 둔치 수해 반복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창릉천 최상류 솔내음누리길이다. 2022년에 조성된 솔내음누리길은 사기막골 계곡에서 효자1통 장산교까지 2.8㎞ 구간에 데크와 보행로를 깐 수변산책로다. 맑은 계곡을 끼고 트레킹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이지만, 조성 첫해부터 구조적 결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보행로와 징검다리 등이 장마철의 거센 계곡 물살을 버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결국 30억원을 들여 만든 길 곳곳이 무너져내렸고, 이듬해 수억원을 추가로 쏟아부어 보강공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은 장마철마다 반복됐고, 올해도 어김없이 일부 구간의 석축이 유실되고 산책로 상판이 무너져내리는 피해가 발생했다. 급류가 흐르는 계곡 상류에 무리해서 산책로를 설계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두 번째 찾은 곳은 56사단 군인아파트 앞 북한산교와 지축LH8단지 앞 싸릿말교 사이 구간이다. 하천 건너 은평뉴타운 6단지를 마주보고 있는 이곳은 탁 트인 북한산 조망이 뛰어나 평소 자전거 동호인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이 산책로로 애용하는 구간이다.
하지만 폭우로 지축지구 쪽 둔치가 절개면을 드러내며 무너져내렸고, 자전거도로는 하부가 침식돼 상판이 공중에 붕 떠버렸다. 포장이 떨어져 나간 곳에는 기초를 다져 넣은 콘크리트와 자갈더미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자전거도로 안전표지판도 뿌리가 뽑혀 천변에 나뒹굴고 있었다. 훼손된 구간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수백m에 달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은 “여름마다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복구하기를 반복하긴 했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심하다”면서 “당분간 이쪽으로 산책을 나오지 말아야겠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용률 높은 지축·삼송, 안전조치 미흡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곳은 지축역 인근에서 지축차량기지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지축지구 중심부와 연결돼 접근성이 좋은 이곳은 붉은색 자전거도로와 초록색 보행자도로가 나란히 삼송지구까지 뻗어 나간 곳이다. 하지만 물살은 보행자도로 수백m를 통째로 날려버렸고, 세운 지 얼마 안 된 보안등과 표지판도 줄줄이 쓰러뜨렸다.
더 큰 우려는 위험 구간의 안전조치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장을 처음 찾은 19일, 출입통제 간판이 자전거도로 옆에 쓰러져 있었고 상황을 모르고 진입한 자전거 이용자들과 산책 나온 시민들이 하부가 텅 빈 상판 위를 아슬아슬하게 통행하고 있었다.
21일 다시 찾아가 보니, 다행히 상황이 개선됐다. 위험 구간 양쪽 모두 출입이 통제됐고, 포크레인이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를 부지런히 정리하며 본격적인 복구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마지막으로 창릉천 수변공원 중 주민 이용률이 가장 높은 삼송지구 동송교~세솔교 구간도 살펴봤다. 이곳 역시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 일부가 붕괴돼 접근이 통제되고 있었고, 보안등 수십 개가 부유물을 머리에 잔뜩 뒤집어쓰고 쓰러져 있었다. 하천 둔치에 설치되는 보안등과 표지판 등은 하단에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매단 채 매립돼 있지만, 부유쓰레기가 얹히고 바닥의 자갈과 모래가 유실되며 속수무책으로 전도된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택지개발로 빗물 흡수율 낮아져
수변 시설물 파손 피해가 유독 창릉천 중상류에 집중된 이유는 뭘까. 지형적 이유를 살펴보면, 북한산이 품고 있는 여러 골짜기에서 많은 양의 빗물이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유입되고 있고, 상대적으로 폭이 좁은 상류 구간을 흐르며 유속이 가속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밀려오는 급류가 물길이 꺾이는 지점을 만나면 여지없이 둔치를 침식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콘크리트 상판처럼 무거운 하중을 얹고 있는 지점에서 하부 침식은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 각종 구조물 아래쪽이 더 심하게 패여 있는 이유다.
더 큰 요인은 주변의 대규모 택지개발이 창릉천의 부담을 가속시켰다는 점이다. 은평뉴타운, 삼송지구, 지축지구가 연이어 개발되며 스펀지처럼 빗물을 흡수해야 할 녹지와 농경지가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덮여버렸다. 자연 하천이 감당하기 힘든 용량의 빗물이 우수로를 통해 한꺼번에 유입된다는 얘기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본부 안홍규 박사는 “우리나라의 택지개발 방식은 애초부터 치수 설계에 취약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수배출의 모든 하중을 하천에 떠맡기는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얘기다.
“택지개발로 빗물 흡수율이 낮아지는 만큼 저류지나 범람구역을 넉넉히 확보해야 하는데,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라는 명분에 밀려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달라진 기후, 치수 패러다임 바꿔야
피해가 발생했으니 복구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신속함을 기대하긴 어렵다. 덕양구청 환경녹지과 담당자는 “천변 구조물 파손 피해는 매년 발생하지만, 올해는 예상 범위를 벗어난 것이 사실”이라며 “우선 하부 침식 구간에 잡석 등을 채우는 응급복구 작업을 시작했고, 구체 적인 피해 상황이 파악되는 대로 작업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에 대해서는 “완전 복구까지는 수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부서 예산을 먼저 사용하고 추후 재난기금 등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적잖은 금액을 쏟아부어 파손된 시설을 복구하는 일을 매년 반복하는 게 과연 맞냐는 질문도 나온다. 하지만 1년에 단 며칠 물에 잠기고, 나머지 기간에는 마른 땅이 드러나는 하천 둔치의 친수공간 활용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자연녹지를 접하기 힘든 택지개발 지구 주민들에게 마을 앞 하천 둔치의 수변공원은 가장 쾌적한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와 같은 극한호우 경향은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는 게 기후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현재의 하천 시설물 설치기준과 복구 매뉴얼도 달라진 기후 환경에 맞게, 좀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개선돼야 하는 이유다.
치수 설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하천 시설물 설치기준의 정비는 막연한 얘기가 아니다. 당장 창릉천 인근에 또 다른 거대 택지개발지구, 창릉신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홍규 박사는 “제방을 높게 쌓고 우수관을 확장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극한호우가 갈수록 잦아지는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면서 “넉넉한 저류지와 홍수터를 확보해 집중호우와 공존하는, 치수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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