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호의 book회귀선] (4) 문화라(56세, 마두동)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

내 삶의 모토는 '하는듯 안하는듯'
아버지의 서재가 책세계로 이끌어
고2 쌍둥이 아들도 엄청난 독서광
"독서가 쫓아내지 못하는 슬픔 없죠"

문화라/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
문화라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

간단한 개인소개를 부탁드려요.

국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여 년간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글쓰기와 독서 수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어느 날부터 약간의 갈증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학교 수업에서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에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함께 읽고 싶은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올해로 13년이 됐고 현재는 한 달에 온•오프라인 합쳐서 12~13개의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임 때문에 한 달에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이 매달 10권이상 됩니다. 다독가가 된 건 2017년부터 ‘1일 1독을 하겠다’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였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20여권정도의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현재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도서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인플루언서 수가 적어 대략 500명 정도이며, 저는 현재 12위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선발 과정이 더욱 까다로워져 신규 인플루언서 진입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좋은 책을 선별해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인상 깊게 보았던 책이 있나요?
 
어렸을 때 추리소설에 푹 빠져 셜록 홈즈의 어마어마한 광팬이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얇은 다이제스트 홈즈 시리즈가 유행인 시절이 있었는데, 둘째오빠가 추리소설을 너무 좋아해 돈만 생기면 매번 그 책을 샀습니다. 문고판이라 가격이 저렴하고 얇았는데 오빠가 책을 사면 저도 같이 따라 읽었습니다. 홈즈 시리즈를 읽으며 수수께끼를 풀거나 범인을 추측하는 것을 몹시 좋아했습니다. 의뢰인을 보며 관찰력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날카로운 추리를 통해 범인을 잡는 천재 탐정의 모습은 제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소설 속 탐정 셜록 홈즈는 런던 베이커가에 있는 하숙집에서 살았는데, 그를 실존 인물로 믿어서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홈즈 앞으로 크리스마스 카드가 베이커가 주소로 수없이 도착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저는 아마 추리 능력이 안 돼서 탐정은 못했을 것 같고 조수정도는 했을 것 같습니다. 내 꿈은 홈즈 그러나 현실은 왓슨 정도가 될까요? 그때 특히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바스커빌 가의 개』와 『붉은 머리 클럽』입니다.

어떻게 책에 빠지게 되었나요?
책과 함께한 시간이 저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책 외의 관심사는 많지 않았고, 자연스레 일도 책을 읽는 것과 관련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시작은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책을 무척 좋아하셨고, 월급의 상당 부분을 책을 사는 데 쓰셨습니다. 월급날이면 퇴근길에 늘 노끈으로 묶은 책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고, 집 안에는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책장이 십여 개나 있었습니다. 그 책장들은 언제나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덕분에 거실에는 소파를 들여놓을 공간의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반상회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 즈음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반상회 때문에 저희 집에 모인 이웃들이 집에 책이 가득 찬 걸 보고 깜짝 놀라하며 뭐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 책이 너무 많아 아파트가 무너지면 어떡하느냐?’ 라는 식으로. 아버지는 무척 완고한 분이셨는데 심지어 전남대 건축학과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 ‘책이 이렇게 많아도 아파트가 무너지지 않는다’ 라는 확인서를 받으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그 자리에서 거절하셨지만.

집에 책이 가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독서가 취미가 되었고, 문학을 좋아하다보니 대학도 국문과로 진학했습니다. 아버지가 종종 이미 구매했던 책을 모르고 다시 사는 경우가 있었는데 같은 책을 골라내는 일은 주로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서가에 꽂혀있는 책의 위치를 잘 기억해서 수월하게 찾아내곤 합니다.

그런 아버지는 6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책을 아주 많이 소장하신 분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쓰던 한 편의 원고가 언젠가 책으로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당시 저는 아버지의 기대와 간절한 마음이 너무 크게 느껴져, 선뜻 나서서 제가 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방금 말한 아파트 일화 역시 이 원고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환경의 영향으로 저는 전형적인 책벌레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셋입니다. 큰 애는 이미 성인이 되었고, 고2인 쌍둥이 아들 중 형은 엄청난 독서광입니다. SF작가로 유명한 테드 창, 영화와 책 둘 다 유명한 『나를 보내지마』를 쓴 일본계 영국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를 좋아합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저, 그리고 아이로 이어지는 '독서광 삼대'의 이야기를 엮어 독서 문화사 에세이를 준비 중인데 현재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집필하고 있습니다.

최근 보았던 가장 인상적인 문장과 그 이유는?

윤성희 작가의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의 표제작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악착같이 싸우지 않는다고 용기가 없는 게 아니야.’ 이 문장이 저의 태도와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라는 챕터에도 이와 비슷한 구문이 있습니다. 누가 자신을 모욕하거나 조롱해도 ‘뭐 그렇지. 내가 그런 면이 있지’ 하고 넘어가다보니 시비가 붙거나 싸우는 적이 거의 없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악착같이’라는 단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신 저는 ‘사부작사부작’이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하는 듯 안하는 듯. 이게 제 삶의 모토입니다. 저는 누군가와 대결하고 경쟁하고 갈등하는 것보다 제 자리에서 사부작사부작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은 제 최애 소설 중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입동',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좋아합니다. 책이 다소 무겁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는 상실과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번 크게 와 닿습니다. 나의 고통과 어려움에 몰입하다보면 타인의 괴로움에 무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타인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2025년 현대문학상 수상한 김지연 작가의 『조금 망한 사랑』이라는 소설집도 좋아합니다. 소설에는 삶이 조금씩 어긋나고 무너져도 완전히 절망하기보단 망해도 여전히 살아가는 아홉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여기에 실린 소설 중 '좋아하는 마음 없이'에 보면 속도위반으로 결혼해 아이를 낳은 주인공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매달리거나 분노하지 않고 쿨하게 이혼을 해주고, 아이도 두고 나오는데 이런 내용이 마치 슴슴한 평양냉면처럼 전개가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읽기에 푹 빠져 지내지만 남은 영역에서는 무심한 사람이다 보니 소설 속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선택이 어떤 마음일지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매번 늘 영혼까지 태워버릴 것처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덤덤하고 슴슴한 게 사랑에 더 가깝지 않을까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책을 통해 삶의 괴로움이나 고단함을 지나거나 위로받은 적이 있다면? 
 
삶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끝까지 책을 완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저는 책을 열기까지가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책속으로 들어가면 무념무상에 빠져 걱정과 고민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몬테스키의 수상록에는 ‘1시간의 독서가 쫓아내지 못하는 슬픔과 괴로움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저의 신조로 여기며 지금껏 독서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은 적이 너무 많습니다. 20대와 30대는 마음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며 비로소 ‘나를 위한 독서’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책이 제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덕분에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독서모임 초창기에는 심리 관련 책을 많이 읽고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섭식장애와 중독증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 심리치료 교수인 배르밸 바르데츠키의 2013년작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제게는 은인 같은 책으로 사람들에게 매번 언급하는 책입니다.

‘누가 저를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는 말을 해도 그건 그 발언을 하는 사람의 문제지,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처가 되지 않는다’ 라는 말이 당시에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상대의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저의 선택이자 자유이니, 이 후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를 수용하고 수렴하게 만드는 스승 같은 책이라 소개하고 싶습니다.

남은 생애의 시간동안 존엄하게 늙어죽을 방법이 있을까요?
    
지금의 제가 하는 활동을 죽기 직전까지 하고 싶은 생각이 있고 또한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읽기와 쓰기는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오래도록, 인생의 끝자락까지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눈이 불편하면 오디오북으로 들을 수 있고, 손으로 쓰기 어려워지면 음성을 텍스트로 바꿔주는 기술을 활용해 쓸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최대한 이어갈 수 있는 게 저에게는 ‘존엄’이라는 단어로 이해됩니다. 

나의 삶을 책으로 만든다면 제목으로 무엇이 좋을까요?

질문을 듣자마자 패러디 시리즈처럼 ‘죽고 싶지만 그래도 책은 읽고 싶어’라는 문장을 떠올려 봅니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 역시. 저는 단순합니다. '읽고 쓰는 삶' 그 이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독서의 묘미는 수동과 능동이 절묘하게 잘 섞여있는 데 있습니다. 책이 내게로 와서 읽기도 하고, 내가 찾아서 읽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다가오는 책이 있고, 또 책에서 답을 얻을 때도 있고. 그러나 어느 날은 마치 책에 접신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도 있습니다. 이처럼 책은 우리에게 다채로운 모습과 방향으로 다가옵니다. 이 끝없이 다가오는 책들이 나와 삶을 늘 풍성하게 채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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