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2025년 (사)한국습지학회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20일 막을 올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다양한 습지 보전 방안이 논의됐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시민과학을 기반으로 진행된 장항습지 조류 조사 결과였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한 지역을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국경을 초월한 협력과 생태계 보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조사 대상지인 한강하구 장항습지는 이미 국제적으로 중요한 생태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람사르 습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EAAF) 등록지, 국제조류보호구역(IBA)으로 지정된 이곳은 단순한 습지가 아닌 ‘세계적 보고’다. 연구진은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약 1년간 총 44회에 걸쳐 장기간 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 14목 42과 132종이 기록됐고, 저어새·개리·재두루미·큰고니·매 등 멸종위기종도 다수 포함됐다. 이는 장항습지가 한국을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 보전해야 할 습지임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이번 조사는 시민 참여와 과학적 기법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차량 이동과 보행 관찰뿐 아니라 카메라 트래핑을 병행해 신뢰성을 높였다. 특히 카메라는 야간 활동종이나 사람의 접근에 민감한 조류까지 포착하며 기존 관찰 방식의 한계를 보완했다. 모든 동정 과정은 사진 기록과 전문가 검증을 통해 교차 확인되었고, 생산된 데이터는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에 등록돼 국제 연구자와 시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됐다. 연구가 단순히 발표로 끝나지 않고, 국제 협력과 투명성의 기반이 된 것이다.
황해 연안은 매년 수백만 마리 철새가 이용하는 세계적 중간 기착지다. 그러나 수십 년간 이어진 간척과 매립으로 이미 60% 이상이 사라졌다. 서해안 개발 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남은 습지를 어떻게 보전할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다. 북한 역시 신도·문덕·증산·남포 등지에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유하고 있어 향후 남북, 한중 협력의 가능성은 더욱 크다. 이번 발표에서는 앞으로의 협력 과제가 세 가지로 정리됐다. 첫째, 공동 조사와 데이터 공유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둘째, 습지 복원과 보호구역 확대다. 셋째, NGO·연구기관·정부가 함께하는 국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 문제를 넘어, 국제적 연대와 외교적 신뢰 구축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자연에는 국경이 없다. 황해 연안의 습지를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의 협력 또한 국경을 넘어야 한다. 시민과학과 국제 협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보전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장항습지 조사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