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산이라고? 이건 돈이야
손도끼 들고 나무 죽이러 다니는 사내가 소리쳤다“
- 조정 시, ‘야만 – 2016 검찰 발표. 유력인사 최소 37명 뇌물 받아’ 중에서
지난 18일 오전 마두동 법원 정문 앞에 수십 명의 시민이 모였다. 여러 시민단체와 교회, 성당 등에서 나온, 또는 나처럼 개인적으로 나온 분들이 여럿 모였다. 고양시가 내준 산황산 골프장 허가를 막기 위해 시민들이 준비한 ‘실시허가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고양시의 행정을 규탄했다. 기존에 산황산에 9홀 규모 골프장을 허가해 준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여기에 더하여 나머지 8만여 평의 산지마저 골프장으로 만들겠다니. 게다가 시의 이런 조치에 시민 대의기구인 시의회까지 반대 결의를 내놓은 마당에 몇몇 공무원과 시장이 이런 독단적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사람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강 건너 김포에서 찾아와 모임에 참석했던 곽성규 전 파키스탄 대사는 자신이 외교관으로 세계 곳곳을 다녀봤지만 이런 행정은 처음 본다면서 마치 영주처럼 군림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행태를 규탄하였다.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이런 일들이(150만 고양, 파주 시민들의 식수를 담당하는 정수장이 골프장 경계로부터 290m 이내에 있다) “시민이 주인 된다”는 지방자치시대에 버젓이 감행되는 것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결국 시민은 선거 때만 동원되는 들러리였단 말인가?
골프장 증설이 논의되는 산황산 인근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690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 앞을 지키고 있었다. 골프장이 확장되면 이 느티나무도 고사될 위협을 안고 있다. 마을에서 한 주민을 만났다. 오래 전부터 골프장 반대 운동을 해왔던 분인데 고양시가 결국 골프장 인가를 해줬다는 이야기에 많이 낙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
“돈 앞에 안 되는 게 있겠어요?”
이 말은 두고두고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산황산 인허가 과정을 둘러싸고 유력인사 37명이 뇌물을 받았다는 2016년 검찰 발표도 있었다지만, 정말 돈이 이 모든 일을 만들어 왔단 말인가?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돈이면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는 게 대한민국이라고?
그럴 수는 없다. 한때 그런 시대를 살아왔지만 더 이상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아서는 안된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무엇보다도 돈으로는 생명을 살릴 수 없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저 수많은 ‘죽이는’ 일들을 보라. 푸릇푸릇한 생명이 자라는 곳에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사막을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 돈이 해왔던 일이다. 그러나 그 돈으로 살아있는 단풍나무나 참나무 한 그루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한 마리 만들어낼 수 있는가? 골프장으로 갈아엎어질 8만여 평 숲속에 있는 그 무수한 생명들을 살려낼 수 있는가?
돈이 시민 주권을 우습게 만드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시민만을 바라보고 행정 해야 하는 시장과 공무원들이 혹시 돈 앞에서 시민들을 우습게 보지는 않았는지? 생명을 지키자는 시민들의 목소리보다 “돈이 된다”는 개발업자들의 이야기가 더 달콤했던 것은 아닌지? 이런 점들은 우선 가처분 소송에서 다루어져야 할 일들이다. 주민들의 정당한 동의 절차가 있었는지, 시민들 식수를 책임지는 정수장 근처에 골프장이 건설되는데 ‘환경영향평가’가 정말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등이 가려져야 할 것이다.
산황산이 무너지면 그 다음엔 우리다. 산황산 다람쥐와 딱따구리, 장수하늘소가 사라지면 그 다음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무너진다. 느티나무, 굴참나무들이 사라진 위로, 고양파주 정수장 위를 뿌옇게 부유하는 농약 먼지 속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잿빛이 될 것이다.
다시 시민이다. 무능, 포악한 정권도 결국 시민이 끝장내지 않았는가? 세상에 돈으로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보여줘야 한다. 산황산을 살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