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기자의 공감공간] 콩치노 콩크리트
40년 오디오 인생이 만든 감성 음악감상실
진공관 앰프, 하이엔드 스피커, LP 1만5000장
오로지 ‘소리’에만 집중하는 특별한 체험
[고양신문] 고양시에서 조금 벗어난 파주시 헤이리예술마을 근처에 ‘콩치노 콩크리트(Concino Concrete, 공동대표 오정수·최윤정)’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콩치노는 라틴어로 ‘노래하다, 연주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 단단함의 상징 콘크리트를 더해 ‘음악이 울리는 단단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평생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 4년 전에 오픈한 이곳에서는, 음악이 건축으로 흐르고, 건축이 음악으로 숨을 쉰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스피커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높은 천장과 탁 트인 공간 사이로 소리가 흐른다. 소리는 벽과 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스며든다. 단순한 청각을 넘어서서, 소리 그 자체에 들어가는 경험이다. 진공관 앰프와 초대형 스피커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천천히 걸으며 공간을 체험할 때, 소리는 더욱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건물 구조는 음악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하면, 눈앞에는 여백이 펼쳐진다. 정면 창으로는 빛이 쏟아지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음악 홀이 모습을 드러낸다. 프런트 왼편에는 5개의 계단이 있다. 2.5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공간에 또 다른 산책길이 나타난다. 3층, 4층으로 올라갈수록 음악의 깊이가 더해진다.
건물의 시멘트 벽은 소나무의 송판 무늬를 불로 태워 찍어내 독특한 질감을 갖고 있다. 거친 표면은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음향적으로 소리의 확산을 돕는다. 300평 규모에 감성과 기능, 둘 다 놓치지 않은 설계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건축가의 작품이다.
콩치노 콩크리트를 만든 주인공의 본업은 치과의사이고, 40년 가까운 인생을 음악으로 채운 오정수 대표다.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듣는 게 더 좋았어요. 그래서 결국, 오디오에 빠지게 됐죠.”
10대 시절 전축과 워크맨으로 클래식을 들으며 음악의 세계에 입문한 그는, 이후 수십 년간 전 세계의 오디오 기기를 탐험하며 최고의 소리를 찾아 나섰다. 음악과 오디오는 그의 삶을 지배했다. 그는 지금도 소리의 본질에 몰두하고 있다.
이 건물에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진공관 앰프, 하이엔드 스피커, 희귀 LP 1만5000장이 구비돼 있다. 독일의 ‘유르노 주니어’,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 등 시대를 대표하는 스피커들이 교대로 운용되며,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청음 박물관이다. 이 외에도 19세기 오르간, 에디슨 축음기 등 역사적인 오디오 장비들이 음악 애호가들을 환영한다.
이곳의 가장 큰 원칙은 몰입이다.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 대화는 금지된다. 커피도, 디저트도 없고 오직 생수 한 병만 제공된다. 이 조용한 집중은 처음엔 낯설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고요 속에서 소리 하나하나가 깊게 각인된다. 1930년대 LP에서 흐르는 베토벤 교향곡, 진공관을 타고 전해지는 따스한 현의 떨림은 공연장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소리다. 오 대표는 인간의 감각 중에서 청각이 가장 깊은 감동을 준다고 믿는다.
“공연장보다 더 나은 소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진공관은 인간의 청각에 가장 이상적인 기술이니까요.”
콩치노 콩크리트는 음악을 나누는 문화의 장이기도 하다. 피아노 독주회, 오페라 갈라 등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클래식 포럼도 구상 중이다. 3년 전 처음 개최된 ‘콩치노 콩쿠르’의 수상자 박영호 피아니스트는 현재 독일에서 활약 중인데, 얼마 전 이곳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피아노는 소리가 맑고 울림이 좋은 1940년대 스타인웨이를 갖췄다.
지난 5월과 7월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비올레타 역 소프라노 김희정, 알프레도 역 테너 이동명, 제르몽 역 바리톤 박정민)가 콩치노 콩크리트 콘서트홀 최초로 앵콜 공연까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콩치노 콩크리트는 해마다 오페라 공연을 열 계획이다. 내년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과 <라트라비아타>를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송년음악회, 갈라콘서트, 피아노·재즈 콘서트 등을 기획해 지역에서 콩치노 콩크리트가 할 수 있는 문화적 역할을 감당한다는 구상이다.
음악 선곡은 평일에는 오지혜 실장이, 주말에는 오정수 대표와 클래식·재즈 전문가 김주영씨가 담당한다. 선곡마다 해설을 곁들여 음악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역사적인 연주가들과 지휘자들의 음반, 그리고 현대 연주가들의 곡까지 폭넓게 들려주고, 1시간 간격으로 중앙 벽면에 영상이 상영된다.
콩치노 콩크리트는 한 사람이 만든 장소이지만,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는 집이다. 디지털 음악이 일상이 된 시대, MZ세대도 이 공간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자극 없는 감각, 정돈된 마음, 그리고 소리에 집중하는 법을 알려준다. 누군가는 이곳을 태교 장소로 찾고, 누군가는 인생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방문한다. 임진강 너머로 노을이 내리는 풍경 속에서 듣는 LP 소리는 마음으로 다가온다. 깊은 사색과 차분한 독서에 몰입하기 좋다.
콩치노 콩크리트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 161번길 17
문의 031-946-5800(수·목 휴무, 8세 이상 입장 가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