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I급, 우리 하천에만 사는 고유종
2000년대 초 이후 한강유역에서 사라졌다가
시민과학자 모니터링 통해 창릉천에서 발견
"인간과 자연 공생 모색하는 계기 삼았으면"
[고양신문] 흰 수염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작은 물고기. 흰수마자라는 이름의 뜻이다. 흰 수염이 4쌍이나 되는 새끼손가락만한 물고기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없는 한반도 고유종으로 멸종위기종 I급으로 지정되어 있고, 국제적으로 IUCN 적색목록 최고등급인 위급(CR)에 지정되어 있다. 호랑이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위기(EN), 두루미가 그보다 두 단계 낮은 취약(VU) 등급에 있으니 멸종의 단계를 짐작할 것이다. 이 귀하디귀한 종이 창릉천 하류에서 시민과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작년 이맘때쯤인 2024년 9월의 일이다.
1935년 일본인 동물학자 모리 다메조(森為三)에 의해 신종으로 보고될 당시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에서만 서식한다고 생각하여 흰수마자의 학명에 ‘낙동(nakdong)’이 붙여졌었다. 그러나 이후 임진강과 한강, 금강에도 발견되었고, 한강유역에서는 2000년대 초를 끝으로 더이상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20여 년 만에 한강하류의 지류인 창릉천에서 발견된 것이니 놀라운 일이었다.
창릉천 하류 평여울 구간에서 발견
흰수마자가 발견된 곳은 한강과 창릉천이 합류하는 합수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시민과학자들은 창릉천 중류지역에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모니터링을 했었고, 그 결과 5년 동안 약 660여종이 기록되었다. 여기에는 은어, 중고기, 참중고기, 버들치 등이 포함되었다. 그 와중에 창릉천 하류구간에서 흰수마자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 구간은 유속이 완만하고 수심은 얕았으며, 모래가 평평하게 쌓이는 평여울 구간이었다.
흰수마자가 주로 먹는 먹이는 물속 모래바닥에서 사는 작은 깔따구류나 각다귀류 유충, 실지렁이류다. 때문에 하천바닥을 파내는 하상정비는 가장 큰 위협요인이 된다. 또한 수중보나 낙차공과 같은 물막이 구조로 물이 느려져 펄이 쌓이면 생존하기 어렵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이동로를 차단하는 댐이나 보다. 다 자란 성어는 여름이 되면 하천 본류로 내려가 산란하고 다시 새끼물고기(치어)와 함께 지천으로 돌아오는 회귀 습성이 있다. 그러니 하천에 보나 댐을 막아 버리면 사실상 회유가 불가능하다. 맑은 물에서만 살아가니 수질악화도 중요한 절멸의 요인이다.
구조물 줄이고 천변저류지 만들어야
창릉천에서 흰수마자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중앙언론에 소개됐지만, 정작 지역에서는 이슈가 되지 못했다.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창릉천 통합개발계획에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창릉천 상류, 중류, 하류 전 구간에서 친수공간과 습지조성을 비롯한 하천정비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도심화된 구간들은 지금보다 더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친수공간 계획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 수립 이전에도 이미 창릉천 중·상류 주변은 고양지축지구, 서울은평지구, 고양삼송지구, 고양원흥지구, 창릉신도시가 개발되었다. 이들 구간에는 친수공간과 자전거도로, 산책로 등 콘크리트 구조물이 이미 조성되었다. 이 구간에는 하천습지와 같은 연성 공간이 없고 대부분 경성 재질의 시설물들이다. 이런 시설물들은 극한 호우시 완충력을 잃고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여름 호우가 그런 경우였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은 대부분의 시설물들을 내려 앉혀버렸다. 다시 원상복구를 한다 치더라도 해마다 반복될 극한 기후현상에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자연기반의 해법(NbS, Nature-based Solution)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가장 우선 고려해야할 방법은 ‘천변저류지’ 조성이다. 고수부는 평상시에는 하천과 분리되어 있지만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 습지를 조성하여 습지식물을 식재하면, 평상시에는 수질 정화와 야생동물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고, 홍수시에는 유속을 완충시켜주고 홍수를 완화시켜 줄 수 있다. 실제로 행신2동 주민들이 조성한 천변저류지 연꽃밭은 이번 수해 때 피해도 미미했고 원상 복구 비용도 크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과 인간을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 자연기반해법이다. 또한 제방에서 사람들이 사는 쪽(제내지)에 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이를 ‘홍수터’라고 한다. 하천 범람시 홍수터는 물을 담을 수 있는 물그릇 역할을 하고 평상시에는 습지공원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므로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곰곰이 새겨야 할 흰수마자 귀환의 의미
20여년 만에 창릉천에 국제적 멸종위기종 흰수마자가 귀환했고, 최근 조사에서는 하류에서 중류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흰수마자가 찾아온 창릉천은 과거의 창릉천은 아니며, 특히 중류구간은 도시화되었다. 그리고 올해 자연은 다시 예전의 창릉천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주었다. 인공적으로 설치되었던 구조물들은 대부분 하천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이러한 자연이 주는 메시지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롭게 살자는 화해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그동안 인간이 점유해온 하천변을 흰수마자가 살 수 있는 하천으로 양보하자. 기왕이면 자연이 스스로 치료해 나가는 자연기반해법을 찾으면 좋겠다. 여기에 흰수마자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 기반의 적응 묘수를 찾는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가령 흰수마자가 사는 평여울 모래밭에 조용히 발을 담그고, 금모래 은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우리 아이들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만인 것이다. 창릉천 복구사업이나 통합하천계획을 수행하는 시 당국은 흰수마자 귀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 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