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6주년 기획⑥ 기후위기 대응 지속가능교통 전환이 답이다

①고양시 온실가스 배출 현황과 지속가능 교통정책
②공공교통 필요성과 마을버스 공영제 가능성
③고양시 내부 교통인프라 문제점 
④데이터를 통해 살펴본 고양시 교통불평등  
⑤버스공영제 사례: 화성시, 성동구 

⑥교통소외 지역 FGI 인터뷰
⑦고양시 도심 내 자전거 인프라 현황 및 문제점
⑧기후위기 대응 위한 지속가능 교통정책 연계 방안
⑨지속가능한 교통도시 만들기 고양시민 토론회|

[고양신문] 기후위기 시대, 승용차 이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됐다. 하지만 합리적인 대중교통망 구축 없이 개인의 참여만을 강요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특히 고양시처럼 신도시와 구도심, 도심 외곽지역 간의 교통 인프라 격차가 극심한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양시는 연일 ‘GTX 교통혁명’을 외치며 서울 접근성 개선을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도시의 모세혈관 역할을 해야 할 마을버스 시스템은 곳곳에서 붕괴되고 있다. 민영제로 운영되는 마을버스는 수익성 논리에 갇혀 비수익 노선을 외면하고, 긴 배차간격과 비현실적인 노선으로 인해 시민들의 외면을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버스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교통 소외지역 주민들은 자가용 이용을 강요받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교통 감옥’에 갇혀있다. 

이에 본지는 고양시 교통 소외지역 4곳(고봉4통, 대장동, 가좌동, 고양자유학교 인근)의 어르신, 청소년, 학부모 등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고양시 대중교통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지속가능한 교통 정책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하루 4번 오는 ‘유령버스’, 숨 막히는 ‘지옥버스’
기후위기 시대 승용차 이용 감축 해법이라지만
대중교통 부재가 강요하는 ‘자가용 생존법’ 
GTX 개통되니 마을버스 축소? 교통정책 ‘모순’

 

본 이미지는 AI를 통해 생성했습니다. ​​​​​​​
본 이미지는 AI를 통해 생성했습니다. 


“버스 시간표 맞나?” 고봉4통의 ‘유령버스’
일산동구 고봉동 4통 마을회관 앞, 이차선 도로에 설치된 낡은 버스정류장에 앉은 한 어르신이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하루에 단 네 번, 그것도 언제 올지 모르는 087번 마을버스가 나타날 길모퉁이다. 

이 버스가 처음 생겼을 때, 마을은 잔치가 열린 듯 기뻐했다. 고봉4통 정성기 통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휴, 그 087번 버스…. 처음 생겼을 땐 동네잔치가 열린 것처럼 다들 엄청 좋아했지. ‘이제 우리도 버스 다닌다’고. 개통식도 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지금은 뭐, 있으나마나한 유령버스가 됐다니까."

‘유령버스’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어르신들에 따르면 이곳 정류장의 공식적인 배차 시간은 오전 8시와 10시, 오후 4시와 6시. 개통 당시 배차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버스회사의 재정악화와 운전기사 부족 등을 이유로 운행 횟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정 통장은 “하루에 딱 네 번 오는, 그마저도 제시간에 온다는 보장도 없는 버스를 가지고 어떻게  자기 생활에 맞춰서 이용할 수 있겠나”라며 푸념을 늘어놨다. 

087번 개통 당시 고봉4통 마을회관 앞에서 내리는 어르신들. 하지만 주민들에 따르면 이 버스는 현재 재정악화와 운전기사 부족 등을 이유로, 종점인 설문동에 하루 고작 4번만 운행하고 있다. 
087번 개통 당시 고봉4통 마을회관 앞에서 내리는 어르신들. 하지만 주민들에 따르면 이 버스는 현재 재정악화와 운전기사 부족 등을 이유로, 종점인 설문동에 하루 고작 4번만 운행하고 있다. 
정성기 고봉4통 통장은 "아침에 버스를 타고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일을 보러 나가면 돌아오는 버스가 없어서 저녁돼서야 돌아올 수 있다"며 운행대수를 늘리거나 추가 버스노선 투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정성기 고봉4통 통장은 "아침에 버스를 타고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일을 보러 나가면 돌아오는 버스가 없어서 저녁돼서야 돌아올 수 있다"며 운행대수를 늘리거나 추가 버스노선 투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대중교통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버스는 주민들을 고립시켰다. 신재화 노인회 총무는 “감기몸살이 심해서 약이라도 하나 사 먹으려면, 파주나 벽제까지 나가야 하는데, 버스가 없으니 꼼짝없이 앓아누워야 한다”며 “택시를 부르면 왕복 2만~3만원이 훌쩍 넘어가는데,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 그 돈이 어디 쉬운 돈인가. 그냥 아프고 말지 하는 심정이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주민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마을 앞을 텅 빈 채 지나가는 037번 버스다. “삼송역까지 가서 지하철과 연결되는 황금노선인데, 텅 빈 차로 이 동네를 유유히 지나가면서도 정류장 하나 없이 통과해 버리거든. 그걸 볼 때마다 ‘우리는 투명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신광욱 노인회장은 “엄연히 세금 내고 사는 고양시민인데 신도시 주민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기분”이라며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속상하고 깊은 소외감이 든다”고 말했다. 

오후 5시경 수업을 마친 가좌고 학생들이 하교를 위해 만원이 된 057번 마을버스를 타고 있다.
오후 5시경 수업을 마친 가좌고 학생들이 하교를 위해 만원이 된 057번 마을버스를 타고 있다.


“숨쉬기도 힘들어요” 가좌고 학생들의 ‘지옥버스’
일산서구 가좌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아침 등굣길은 ‘전쟁’이다. 유일한 대안인 057번 마을버스는 학생들 사이에서 ‘지옥버스’로 불린다. 정예나(17세) 학생은 “버스가 꽉 차서 못 탈 때가 많아요. 문이 겨우 닫힐 정도로 빽빽해서 ‘발 디딜 틈도 없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요. 그렇게 두 대 놓치면 금방 40분이 지나가요”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다. 매일 아침 4명을 모아 택시를 타는 ‘택시 팟’을 구하거나, 비싼 돈을 내고 사설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박예서(17세) 학생은 “버스 타는 시간도 길고, 갈아타다 보면 시간도 훅 가요. 그 시간에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거나 잠을 더 잘 수 있잖아요. 사람에 치이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서 학교 도착하면 이미 지쳐 있어요”라고 말했다.

일산동구 고봉동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고양자유학교 학생들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김예준(14세) 학생은 “원래 집에서 학교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있었는데 배차간격이 점점 늦어지더니 이제는 3시간에 한 대씩 온다”고 토로했으며 전율(15세) 학생은 “버스를 타면 1시간 넘게 걸리는데 부모님 차를 타면 15분 걸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등교할 때는 부모님 신세를 진다”고 말했다. 

하굣길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곳을 지나는 버스노선이 워낙 부족한데다가 배차간격마저 길다보니 한두 번 갈아타는 건 기본이다. 그나마 똑버스(경기도 수요응답형 버스)가 생기면서 자주 이용한다고 답했지만, 호출한 뒤 30~4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가좌고 학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가좌고 학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고양자유학교 학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강요된 자가용과 ‘교통 감옥’, 기후위기 시대의 역설
대중교통 시스템 부재는 주민들을 자가용으로 내몰고 있다. 덕양구 대장동 주민 오혜진씨는 이렇게 말한다.

“기후위기 때문에 승용차 이용을 줄여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공감하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하지만 정작 현실은 정반대예요. 대중교통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이 동네는 한 집당 차 2대가 기본이 됐어요. 자가용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죠.”

이곳의 유일한 마을버스인 072번은 단 한 대로 운행되는데, 잦은 고장과 예측 불가능한 운행으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오씨는 “버스 앱에서 실시간 위치를 보고 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눈앞에서 버스가 사라지는 황당한 경험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라며 “대체노선이 없으니 그저 다음 차를 1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효율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대중교통 시스템은 단순한 행정의 실패를 넘어, 특정 지역 주민들의 사회 참여 기회를 박탈하는 장벽이 된다.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이용 불가능한 ‘유령 서비스’를 방치하고 있는 사례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곳곳에서 확인됐다. 특히 차를 운전할 수 없거나 소유할 수 없는 학생, 어르신 등은 말 그대로 ‘교통 감옥’에 갇혀버리는 셈. 대중교통 시스템의 붕괴는 보이지 않는 섬을 만들어 내며, 이들을 삶의 터전에 고립시키고 있다. 

전율 학생은 “마을버스는 시간을 잘 안 지킨다. 배차간격이 너무 긴데 제시간에 오지 않으면 한없이 기다려야 하니까 아예 타지 않는다. 제시간에 오면 맞춰서 나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의 부재가 승객 감소를 낳고, 이는 다시 서비스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장, 내곡, 산황동에 거주하는 대곡초 학부모들을 만나 대중교통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오혜진 대곡초 학부모회장, 김은영 대곡초 운영위원장, 김선민 대곡초 운영위 지역위원장, 정민정 대곡초 운영위원. 


​​​​​​​GTX 뒤에 가려진 목소리… “마을버스 오히려 줄어”
고양시의 교통 정책이 GTX와 같은 광역교통망 확충에만 집중되면서, 정작 시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내부 교통망은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장동 주민 김은영씨는 “시에서 나오는 교통정책 관련 홍보 내용을 보면 대부분 서울 중심이다. 정작 고양시 안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생활하는 대다수 시민들의 삶에 대한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역설적으로 광역교통망 확충이 지역 교통망을 개선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는 사례도 있다. 대곡역 GTX 개통 이후 마을버스 운행대수가 오히려 줄어든 덕양구 대장·내곡·산황동 주민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곳을 지나는 유일한 마을버스인 072번은 GTX 개통 이후 타 지역의 대곡역 이동 수요에 맞추기 위해 기존 노선을 2개로 나눴다. 이로 인해 배차 간격은 2배로 늘어났으며 버스노선 자체도 축소되고 말았다. 

주민 김선민씨는 “동네 어르신들은 예전에 072번 버스 하나만 타면 능곡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병원도 다니고, 이웃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게 일상의 낙이었다. 하지만 이제 노선이 분리되어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에, 기약 없는 배차간격까지 더해지니 아예 바깥출입 자체를 단념하신다”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현장에 답이 있다… 주민들이 제시하는 대안
복잡하게 얽힌 문제의 해법은 이미 현장에 존재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주민들은 행정이 외면하는 교통 문제에 대해 저마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노선의 현실화다. 가령 고봉4통 어르신들은 기존 밤가시마을을 종점으로 하는 087번 노선을 실질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공공시설 위주, 즉 “고봉동 주민센터와 동국대병원을 거쳐, 최종적으로 일산동구청으로 변경”해줄 것을 제안했다. 또한 동네를 스쳐 지나가는 037번 버스의 종점을 마을회관으로 변경해 줄 것을 제안하는 요청도 있었다. 주민들의 편의를 높이는 동시에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어 길가에 대기해야 하는 버스 기사들의 노동환경까지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개별 노선 조정을 넘어,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바로 ‘버스 공영제’ 도입이다. 김선민씨는 “고양시가 이미 마을버스 회사들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매년 수십억원의 막대한 세금을 지원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관리 감독은 전혀 안 되고 있는데 차라리 예산을 좀 더 쓰더라도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이 좋지 않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면적인 개편이 어렵다면 가장 소외된 지역부터 시범 사업으로 공공버스를 투입해 공영제의 효과와 필요성을 검증해보자는 현실적인 제안도 나왔다.  

고봉4통 신재화 어르신은 “주민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를 단순히 ‘수익’의 관점으로만 보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주민이 불편하다면 시가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책임지고 운영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공영제 필요성을 말했다. 가좌고와 고양자유학교 청소년들 또한 “공공이 책임지고 버스를 운영관리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터뷰에 참여한 교통소외지역 주민들은 단순히 ‘편리한 버스’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자가용 없이도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공동체를 원했다. 오혜진씨는 “자가용 없는 주민들에게 마을버스는 단순히 교통수단이 아니라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생명줄”이라며 “이 절실한 목소리가 정책에 꼭 반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선민씨 또한 “모든 정책의 중심에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엑셀 파일 속의 예산이나 효율성 지표가 아니라,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의 초조함, 장 보러 갈 엄두를 못 내는 어르신의 고립감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기후보도 취재팀 남동진 기자·김진이 전문기자·김현정 인턴기자

이 기사는 녹색전환연구소와 리영희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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