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락경 쿠팡노조 일산지회 활동가 인터뷰

성락경 쿠팡노조 일산지회 활동가
성락경 쿠팡노조 일산지회 활동가

[고양신문] ‘고객 만족’이라는 화려한 구호 뒤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최강자 쿠팡 이야기다. 특히 수도권 서북부 물류의 핵심 거점인 고양시를 중심으로 쿠팡 배송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쿠팡의 자랑인 ‘로켓배송’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는지, 그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성락경 전국택배노동조합 쿠팡 일산지회 활동가를 만나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프라미스’의 배신… “안전보다 속도 경쟁 내몰아”
성락경 활동가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은 것은 단연 ‘프라미스’로 불리는 시간 지정 배송 제도다. 고객에게는 빠른 배송을 약속하지만, 그 이면에는 배송기사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질주가 숨어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신선식품을 저녁 8시까지 배송해야 한다는 경직된 규정은 폭염이 절정에 달하는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도 기사들을 단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현장으로 내몹니다. 여름철 온열 질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과 같죠.” 

물류센터 사정으로 출차가 늦어져도 ‘프라미스’ 시간은 절대적이다. 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선식품만 골라서 먼저 배송하고, 이미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 일반물품을 마저 배송하는 비효율적인 2차, 3차 배송이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고스란히 노동시간 증가와 연료비 부담, 피로 누적으로 이어져 사고 위험을 높이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지난 8월 28일 손솔 진보당 국회의원과 쿠팡 과로사 대책 이행 점검단이 덕양구 오금동에 위치한 쿠팡 일산5캠프를 방문한 모습 
지난 8월 28일 손솔 진보당 국회의원과 쿠팡 과로사 대책 이행 점검단이 덕양구 오금동에 위치한 쿠팡 일산5캠프를 방문한 모습 

국회 청문회 이후, 달라진 것은 ‘더 교묘해진 족쇄’뿐
지난 국회 청문회를 통해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지만, 현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성 활동가는 말했다. 최근 진보당 손솔 국회의원이 고양시 오금동 5캠프를 방문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95%의 기사들은 ‘달라진 게 없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2주 단위의 단기 실적을 평가해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로 압박했다면, 이제는 1년 내내 모든 실적을 누적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단기 압박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작은 실수 하나가 연말 계약 해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줘 1년 내내 노동자를 옥죄는 더욱 교묘한 심리적 압박 장치가 됐습니다.” 

현장 기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통소분’(물건 분류작업)과 ‘프레시백 회수’ 문제 또한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배송 시작 전 2~3시간씩 허리를 숙여 수백 개의 물건을 직접 분류하는 명백한 ‘그림자 노동’에 대한 보상은 전무하다. 본업이 아닌 프레시백 회수 실적이 인사 평가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며 추가 노동을 강제하는 현실도 여전하다. 국회에서의 개선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현장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쿠팡 과로사 대책 이행 점검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국회 청문회 이후에도 현장 노동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쿠팡 과로사 대책 이행 점검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국회 청문회 이후에도 현장 노동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법의 사각지대 ‘모바일 캠프’, 고양시 역할은?
특히 고양시에 위치한 ‘모바일 캠프(쿠팡 물류센터에서 출발한 상품을 고객에게 더 빠르게 배송하기 위해 배송지 근처에 설치된 소규모 물류 거점)’의 실태는 더 심각하다. 성 활동가는 “노동자의 기본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60여 명의 노동자가 비좁고 비위생적인 화장실 단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식 건물이 아닌 비닐하우스 형태의 가건물이라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혹한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있어요. 제대로 된 휴게 공간 하나 없어 쉴 곳도 마땅치 않는 비인간적인 환경입니다.” 

이는 최첨단 IT 기술을 자랑하는 물류 기업의 민낯이자, 노동자를 비용 절감의 도구로 여기는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때문에 성 활동가는 고양시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그는 “모바일 캠프와 같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즉각적이고 철저한 안전 점검과 행정 지도가 시급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 및 건축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위반 사항 발견 시 강력한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선제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지자체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강조했다. 

“노조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해야”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쿠팡과 현장 노동자 사이의 공식적인 ‘소통 창구’가 전무하다는 점에 있다. 수백 개의 대리점(벤더사)을 내세운 복잡한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쿠팡은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피해는 힘없는 기사 개인이 감당하게 되는 구조다. 심지어 노조 홍보물을 전달하는 것조차 ‘무단 침입’으로 간주하는 등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교묘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성 활동가는 이야기했다. 

성락경 활동가는 마지막으로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쿠팡이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노동조합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해 공식적인 교섭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라며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비효율적인 시스템과 안전 문제를 함께 개선해 나가는 상생의 관계를 구축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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