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호의 BOOL회귀선
(5) 성화진 75년생(주엽동)
48살 즈음부터 책과 글로 삶 돌아봐
횡적 읽기는 구슬이 꿰어지는 느낌
‘코스모스’ 읽고 과학시선으로 죽음 이해
‘벽돌책’ 고비 넘으면 책읽기 쉬워져
❚ 최근 인상 깊게 보았던 책이 있나요?
역시 최근에는 성해나 작가의 단편소설집 <혼모노>에 실린 작품을 전부 좋아합니다. 이복형제의 재회와 이별을 다룬 전작인 <두고 온 여름>도 익히 좋아했습니다. 소재도 독특했지만 엔딩도 너무 좋았는데 요즘 함께 독서하는 지인들과 <스무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기억도 납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다루는 게 아닌, 깊고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는 작가님 특유의 시선을 좋아합니다.
월요일마다 KBS 문화공감의 ‘허희’ 평론가께서 매주 책을 소개하는데 그 때 추천했던 책이 서미애 작가의 <그녀의 취미생활>였습니다. 이 책이 너무 재밌어서 다른 장편소설도 찾아 읽게 되었는데, 서미애 작가는 이번에 추리소설 데뷔 30주년 기념으로 단편소설집 3권이 나와, 대표적인 단편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만 하면 사람들이 꼭 다 웃는데, 소설 중에서는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최근에 나온 <까마귀 장례식>을 저는 제일 좋아했습니다.
서미애 작가의 단편과 장편은 다 좋습니다. 언젠가 작가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추리소설은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과 심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장르라 말씀했던 게 기억납니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사건의 해결과 과정이 주가 된다면, 한국의 서미애 작가를 포함해서 정유정 작가, 강지영 작가들의 책을 보면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심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게끔 작품들을 짓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미애 작가가 고전적으로 추리소설을 잘 쓰는 작가처럼 느껴집니다.
❚간단한 개인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아줌마입니다. 48살 즈음 책과 글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 이후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 어딘가의 주부 등 사회적으로 명명되는 내가 아니라, 온연한 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시에 거주 중인 아줌마들에게 살림 외에 허락된 일들은 제법 많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지금 22살, 19살이 되었는데 점점 육아에서 멀어지는 이 나이대의 아줌마들은 점점 늘어나는 개인 시간을 어찌 채워야 할지 고민하게 합니다. 알바도 꽤 했습니다. 학교, 관공서에서 물품관리 바코드 알바, 인근서점에서 책에 바코드 붙이는 알바, 가사 도우미 알바, 입주청소 알바와 사회복지관에서 도시락을 포장하는 봉사도 하고. 작년에는 혼자서도 북한산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2년 동안 책을 한 300권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동네서점을 통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이웃들과 함께 다양한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책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나 독특한 독서 방식이 있다면?
나름 저만의 책 읽는 방법을 만들어 봤는데, 제 책 읽기에는 종적 책읽기와 횡적 책읽기가 있습니다. 종적 책읽기는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읽으면 보통 그 작가의 전작을 몰아서 다 읽어 보는 방식으로 ‘아! 이 작가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를 들면 이유리 작가의 <비눗방울 퐁>을 읽고 나서 <웨하스 소년>, <브로콜리 펀치>, <불량 수제자> 등을 읽게 됩니다. 섬머 시못의 <달과 6펜스>를 읽고 나서는 <인간의 굴레에서>, <면도날>을 읽는 등 이렇게 한 작가의 전작을 따라가 읽는 것을 종적 책읽기라 칭하고 횡적 책읽기는 같은 주제를 지닌 다른 작가의 작품을 모아 읽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하와이를 건너 간 사진신부’를 모티브를 한 <당신의 파라다이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찾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진 신부’란 우리나라 하와이 1세대 이민자들이 자신의 사진을 찍어 중간의 매파(중매인)에게 건네주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결혼적령기의 처자들에게 사진만 보여주고 짝을 찾아주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한 서미애 작가의 추리소설 <까마귀 장례식> 역시, 우리나라에 결혼이민한 해외여성들이 폭력과 살인으로 고통받는 이야기를 다루었고 앞서 말한 맥락과 연결됩니다.
라오스계 캐나다 작가인 수반캄 탐마봉사의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how to pronounce Knife>에도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야했던 이민자들의 ‘디아스포라’에 대한 마음이 잘 담겨있습니다. knife의 철자 'k'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발음되지 않는 묵음인 것처럼, 책 속에서는 현실에 분명 존재하는 이민자, 여성, 노인, 어린이 등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다뤄집니다. 언어장벽, 차별의 시선 등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지워진 존재처럼 대해지며 당사자들의 삶의 어려움과 애환을 표현되고 있는데, 이처럼 끊임없이 관련 소재와 주제를 서로 연결시키고 확장시키며 읽는 것을 저는 횡적읽기라 명명합니다.
횡적읽기를 하다보면 수많은 별개의 사건들이 국적을 넘어, 소재를 넘어, 책 속에서 하나의 주제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흩어져 있는 구슬들이 하나의 바늘로 꿰어지는 듯한 이 느낌을 저는 너무 좋아합니다. 일상에서는 무언가를 관통하는 통찰, 통섭을 얻기가 쉽지 않은데, 책 안에서는 이런 삶의 통찰이 커다란 수고와 비용 없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도 비교적 도달이 가능한 형태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추천을 드리자면 벽돌책 읽기, 어려운 책 읽기를 꼭 추천합니다. 막상 읽을 때에는 너무 힘이 드는데 그 책을 읽고 나면 책을 읽는 근육이 붙어, 고비를 넘기고 나면 소설이나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한결 더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됩니다. 나의 독서수준보다 어려운 책을 보다보면 자연스레 관련 공부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몸도 마음도 무언가 익숙하고 편한 쪽으로 기대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책으로 나를 더욱 불편한 쪽으로, 쉽지 않은 방향으로 몰아붙여보는 경험도 굉장히 소중한 기회가 될 겁니다.
❚ 지금 떠오르는 가장 인상적인 문장과 그 이유는?
이 질문은 저에게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책 자체가 한명의 사람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많다보니, 책을 읽다보면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책 속의 어느 뾰족한 문장이나 감동어린 문장이 있어도 밑줄 같은 것을 그으며 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책과 나와의 관계나 접점을 주로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 이 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책과 충분히 교감하고 있는지를 떠올리며 읽는 편입니다.
❚책을 통해 삶의 괴로움이나 고단함을 지나거나 위로받은 적이 있다면?
몇 년 전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 죽음이 아주 구체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에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책은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였습니다.
죽음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스스로 무언가 한계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으로 죽음을 과학이라는 시선을 통해 제법 선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거대한 우주의 티클이자 먼지다’라는 문장은 나라는 존재도, 나의 고민과 두려움, 걱정도 아주 작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후로 과학책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과학을 통해 사회와 예술, 문학부터 철학까지 두루두루 관심과 이해를 갖게 되며, 책읽기의 균형이 조금 더 조화로워 진 것 같습니다. <코스모스>는 제 몸과 마음이 쉽지 않았을 때, 제 삶의 근육을 높여주는, 제 삶을 전환시킨 소중한 책입니다.
❚남은 생애동안 존엄하게 늙어죽을 방법이 있을까요?
이 질문은 꼭 내 묘비명을 쓰는 느낌이 납니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알 수 있다면 존엄하게 늙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도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부디 스스로를 사랑하는 아줌마가 되고 싶습니다.
❚나의 삶을 책으로 만든다면 제목으로 무엇이 좋을까요?
토닥토닥? 제가 만약 책을 쓴다면, 글쓰기 수업을 많이 받아본 사람으로 스스로가 소설보다 에세이 쓰기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느껴집니다. 그 에세이의 이름을 <토닥토닥>으로 짓고 싶습니다. 이 단어에서 느껴지는 다정함과 친절함이 좋습니다.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다정함과 친절함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토닥토닥도 말뿐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있는 행동이라 느껴져 이 단어를 제 책제목으로 골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