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근의 동네서점기행
(4) 오후서재

 

허지수 서재관리자
허지수 서재관리자

[고양신문] 요 며칠 한승석 & 정재일의 ‘돈타령’을 듣고 있다. “사람 나고 니가 났지 너 나고 사람 났느냐 태초에 세상이 너를 낸 뜻은 천지간 둥글둥글 여기 저기 돌고 돌아 세상사 인간살이 두루 편안케 함이거늘 네 무슨 심사로되 못나고 약한 놈 업신여기고 힘세고 잘나고 구리고 있는 놈만 떠받들고 뭇사람을 현혹하야 양심도 팔고 절개도 팔고 염치도 수치도 영혼도 팔아 끝내 나락으로 떨어뜨리니…” 그렇다. 2025년 북반구 자본주의 국가에 살아가는 사람 중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부자도 빈자도 결국 돈의 노예다. 얼마 전 운전 중에 창을 내렸다가 올렸는데 빠직 소리가 나더니 창문에 금이 쩍하고 갔다. 수리를 하고 보니 160만원이라는 큰 돈이 청구 됐다. 세리서점의 임대료는 월 120만원이다. 지난 달 생각보다 책이 많이 팔려 신이 났던 나는 창문 박살 후 지금까지 기분이 좋지 않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는가.

무척 더웠던 여름의 한가운데 오후서재에서 허지수 서재관리자를 만났다. “처음부터 책방이 나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죠. 회사 생활을 해보니, 나는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회사를 다니는 능력도 능력인데, 저는 그 능력이 부족했던 거죠. 그렇다면 선택지는 단순했어요. 내가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일을 만들기.” 그가 선택한 것은 책방이다. “책방 하나 운영한다고 해서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월 200만원 정도, 나 하나 살아가는 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만 벌 수 있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죠. 마침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건강식품 가게 건너편, 다육이를 팔던 작은 점포가 비게 되었고. 그 공간을 보고 생각했어요. ‘여기다.’” 그가 살아온 동네, 골목마다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나는 고양시에 살면서 서울로 이사가려고 고민 하는 사람, 또 고양시가 서울이 됐으면 하는 사람을 수없이 만났다. 그는 돈 흐르는 곳의 반대, 동네로 간 사람이다. 

그와 책의 인연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독립출판을 했고, 출판사에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북토크, 강연 같은 기획들을 하는 책방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나도 책방을 열면 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그가 그린 책방은 책만을 파는 곳이 아닌, 사람이 모이고 생각을 공유하는 공간이 됐다. 그래서 이름도 ‘서재’라 붙였다. 누군가의 방, 누군가의 공간이라는 느낌. 2021년 허지수는 오후서재의 ‘서재관리자’가 됐다. 그가 처음 기획한 건 자신의 경험을 살린 독립출판 강의다. 한 명만 와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남양주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금세 알았다. 멀리서 오는 손님은 단발성일 뿐, 안정적인 돈벌이가 되기는 어렵다는 걸.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네를 붙잡았다. “책방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 골목대장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지속가능성’은 결국 동네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동네를 기반으로 한 소모임을 열었고, 프리랜서들이 모였다. 번역가,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영상작업자들이 하나둘 이 공간을 채웠다. 글쓰기 모임, 웹소설 모임, 마을 산책 프로그램이 이어져왔다. 사람들은 이곳을 민간 문화센터라고 부른다.

허지수 서재관리자
오후서재 풍경

잘난 돈은 자기 흐르는 곳 반대로 간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다.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 시기에 그는 중학교 청소 아르바이트(방역)를 하며 임대료를 메웠다. 지원사업에 응모할 때도, 남는 돈이 없으면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동네라는 시장 자체가 돈이 돌지 않는 곳 같다는 회의감도 느꼈다고. 물론 돈 말고 남는 것은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온전한 나 자신이 남았다. “‘허지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서재관리자 허지수는 돈의 격랑에 오후서재의 키를 잡고 버틸 수 있는 힘을 키웠다. “8살 때부터 살았던 동네에 책방을 열었습니다”는 그와 오후서재는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서점을 열기 4년 전, 오후서재에 찾아갔었다. 사장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여기저기 붙어있는 여러 흥미로운 모임의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모집글에는 참여비용도 써있었다. 그때 그걸 본 것이 어찌보면 지금 서점사장이 된 데 큰 영향을 줬다. 단면만 보고 서점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은 흘러 2025년 세리서점 내부공사가 한창이던 때 ‘고양시 서점,’ ‘일산 서점’을 포탈사이트에서 검색했다. ‘오후서재’가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열려 있구나. 고양시에 살다보니 우연히 그를 마주친 적은 있지만 대화 나눌 기회는 없었다. 서점사장이랍시고 고양문화재단으로부터 청년문화활성화를 위한 원탁회의의 참여를 제안 받았다. 얼마 후 회의에서 마침내 그를 만났다. 듣기 좋은 이야기가 오가던 중 그의 발언 차례가 왔을때 “…돈!…”이라는 그의 단호한 말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맞다. 돈이 빠진 이야기는 얼마나 공허한가. 그래 돈이다. 우리는 고삐 풀린 채 자기멋대로 날뛰는 돈 이야기를 더 해야한다. 그를 비롯한 동네사람들과 돈타령을 부르고 싶다.                                        

오후서재 풍경
오후서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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