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이 기자의 책읽는 사람들 – 서로돌봄커뮤니티

돌봄 커뮤니티로 출발, 2025년 경기도 독서동아리 선정
동네사람들 ‘돌봄’ 주제 책읽기… 공동체 실험도 고민 중

22일  『쫌앞서가는 가족』의 김수동 저자와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한 서로돌봄 커뮤니티 회원들.
22일  『쫌앞서가는 가족』의 김수동 저자와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한 서로돌봄 커뮤니티 회원들.

[고양신문] “공동체주거를 선택한 건 내 인생의 잘한 일입니다. 다만 한때 스스로 붙였던 ‘전도사’라는 이름은 내려놨죠.” 『쫌앞서가는 가족』의 김수동 저자가 22일 서로돌봄 커뮤니티 책모임에서 공동체주거를 택한 배경과 삶의 변화를 들려줬다. 그의 책은 한국에서 ‘함께 사는 집’이 유난히 어려운 이유를 차분히 짚는다. 법·제도와 금융, 주택 정책 전반이 ‘아파트’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고, 집을 삶의 터전보다 오를 자산으로 여기는 사회적 습관도 깊다. 낯선 이들과 전 재산을 걸고 한 배를 타야 하는 구조에서 신뢰의 두께는 늘 부족하다. 그 탓에 공동체주택은 강한 동기를 지닌 소수의 실험에 머물기 쉽다.


김수동은 이렇게 덧붙였다. “금융지원과 공공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정치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니,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됐습니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사그라지고 주택 인식과 사회체제가 변해야 공동체주택이 보통 시민의 선택지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제목처럼 '서로돌봄 커뮤니티'는 ‘돌봄’에 대한 앞선 고민을 함께 나누는 모임이다. 2023년 '지역에서 돌봄을 어떻게 시작할까'라는 질문으로 강연·토론회, 공모사업, 모범사례 벤치마킹, 새로운 플랫폼 실험 등을 이어 왔다. 2025년에는 ‘경기도 독서동아리 활성화’ 사업에 선정돼 매월 한 차례 정기 독서를 진행하며, 돌봄을 주제로 책을 읽는다. 장진우(장애인단체 활동가), 최김재연(건축전문가) 등 4명으로 출발해 2025년 현재 회원은 10여 명으로 늘었다.


사업 신청서에 적은 모임 소개는 이렇다. “노후 고민을 하는 동네 사람들 모임입니다. 다들 자본에 의한 돌봄이 아니라 서로를 챙기며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하고 즐겁게 살고자 합니다. 이에 돌봄을 공부하고 관련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6월에는 『돌봄의 상상력』(김영옥·류은숙)을 함께 읽었다. 가족 밖의 돌봄, 지역사회 돌봄, 장애인의 돌봄, 소수자들의 돌봄 등 기존과 다른 접근을 통해 다양한 시도와 상상을 나눴다.


22일 책모임은 주제가 ‘공동체주택’인 만큼 넉넉한 자기소개로 문을 열고, 돌봄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눴다. 서화한의원을 운영하는 노태진 한의사는 고양시 재택의료 시범사업 경험을 전하며 “재택임종의 관문은 연속된 방문진료”라고 강조했다. 의료·간호·복지가 손을 맞잡을 때 병원 밖의 돌봄이 현실이 된다는 설명이다.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경희 활동가는 독거노인 가구의 약물 점검과 생활 지원 사례를 들며 “작은 정리가 큰 위험을 막는다. ‘이 약은 버리세요’ 같은 사소함이 돌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동네서점 ‘세리서점’을 운영하는 윤상근 회원은 “낮 시간을 합리적 회비로 동네 모임에 개방하겠다”며 공간의 공공화를 제안했다.


영어교육 등 다양한 사회경험을 가진 박혜숙씨는 “학원 경영, 부동산 등 돈을 모으고 더 많이 모으려 뛰어다녔지만, 그 과정에서 우울을 겪고 병도 얻었다. 이제는 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며 배움의 콘텐츠를 돌봄에 접목하는 협동조합 모델을 실험 중이라고 밝혔다.


저자와 함께한 이날 토론은 자연스레 실천으로 이어졌다. 동네 단위 방문진료 정보 공유를 통한 재택돌봄 연결망 점검, 세리서점 낮 시간 소모임 파일럿, 1~2인 가구 생활지원 목록화, 서로의 돌봄을 촘촘히 살피기 등 책상 밖 과제가 도출됐다. 공동체 설립을 염두에 둔 ‘협동조합 전단계’ 운영 규칙 초안 마련 계획에도 뜻을 모았다. 거창한 선언 대신, 가능한 만큼의 설계를 반복하자는 데 합의했다.


다음 모임은 10월 27일.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지속가능한 나이듦』을 읽고 또 다른 돌봄을 공부한다.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할 노화와 노쇠, 나이듦의 생물학적 메커니즘과 의료 현안을 함께 살피며, 서로돌봄 커뮤니티가 세울 공동체의 벽돌을 한 장 더 올릴 예정이다.


서로돌봄 커뮤니티의 책모임은 서두르지 않는다. 한 권의 책, 한 번의 대화, 매번 작은 실험으로 시간을 함께 쌓아 왔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우리 동네의 돌봄은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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