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공동의장
[고양신문] 황룡산 가을 숲에는 나뭇잎이 곱게 물들고 알밤이 토실토실 영글어 갑니다. 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계절에도 우리의 가슴은 무겁기만 합니다. 75년 전 6·25 전쟁 때 이 황룡산 가슴팍을 붉은 피로 물들인 학살의 아픔이 아직도 선연하기 때문입니다.
그 피맺힌 언덕과 숲속 금정굴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고한 백성들이 까닭도 모른 채 끌려와 총부리에 쓰러진 일을, 어린 자식이 아버지를, 젊은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식을 한순간에 잃었던 참혹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가고 지금부터 30여년 전인 1995년 전후로 처음 금정굴이 열리고 유골과 유품이 세상 위로 드러났을 때 우리는 다시금 역사의 깊은 상처와 마주하였습니다. 그 뼛조각은 단순한 유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왜 무참하게 죽어야 했는가”라는 질문이었고, “누가 이 진실을 밝힐 것인가”라는 외침이었습니다.
그 뒤 한맺힌 유족과 고양시민회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외롭고 험한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진상규명의 요구는 오랫동안 묵살되었고, 해마다 열린 위령제 자리는 눈물과 통곡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치고 쓰러질 듯한 순간에도 서로 손을 잡고,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그 굳은 믿음은 결국 역사를 움직였습니다. 국가가 민간인 학살의 불법성을 인정하였고, 고양경찰서장이 유족 앞에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금정굴 유족들의 눈물어린 노력과 고양지역 시민단체의 헌신이 거둔 숭고한 결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시밭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8년도에 고양시는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하였음에도 금정굴 유해 86상자, 153구는 이곳저곳을 떠돌다 세종시 ‘추모의 집’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2024년도 이후 금정굴 평화공원 조성 협의가 시작되어 탄현공공주택지구 계획 속에 공원 건립이 반영되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확정되지 못하고 오리무중입니다. 아직까지도 평화공원의 규모와 성격, 위령시설 규모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금정굴 영령을 반드시 현장에 모실 것을 호소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는 평화공원이 진실과 화해, 교육과 평화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금정굴 평화공원은 무엇보다 억울한 영령들을 모시는 추모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역사의 교훈을 깨닫고 이어가는 성역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배우고,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후손들이 다시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금정굴 평화공원을 반드시 세워내야겠습니다.
정부와 고양시는 진실화해위에서 결정하고 권고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유족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시민의 염원을 반영하며 더 이상 지체없이 금정굴 평화공원 조성을 완수해야 합니다. 금정굴 평화공원을 반드시 이 금정굴 현장에 세워 기억과 화해, 평화와 희망의 언덕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