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가파도 편지 20>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긴 연휴입니다. 선사는 이 시기를 대목이라고 생각하고 운항차수를 늘리고,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저라고 쉬는 날이 없겠습니까마는 이런 시기에는 쉬는 것보다 근무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들과 보낼 수도 없는데 괜히 오래 쉬면 잡생각이 들어와 마음이 어수선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밀린 독서와 원고쓰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시원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터미널 통유리 너머도 들어오는 배와 손님들을 바라봅니다.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내립니다. 흥성한 분위기입니다. 가파도에서 지내다가 배를 타고 모슬포만 나가도 마음이 살짝 들뜹니다. 여행객들의 마음을 가늠해봅니다. 제주도에 와서 그것도 다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오는 마음을요. 저 멀리 보이는 제주도와 이곳 작은 섬 가파도를 이어주는 배를 타고 생전 처음으로 가파도에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광경을 먼 하늘에서 본다면 점과 점을 이어주는 선처럼 보일 것입니다. 나는 매표소에 앉아서 새가 되어 멀리 하늘을 날아가는 상상을 합니다. 지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는 점과 선과 면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보다 더 멀리 날 수 있다면 칼 세이건이 말한 대로 지구조차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 우주적 상상을 하다가 다시 고도를 낮춰 다시 이곳 한 점 가파도에 한 점 인간으로 착륙합니다. 이 상상여행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나에게 선물합니다.

일찍이 점과 선과 면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로 표현한 화가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입니다. 칸딘스키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순수한 조형 요소인 점, 선, 면과 색채만으로 감정과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예술 이론을 정리하여 『점·선·면(Point and Line to Plane)』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음악이 소리라는 순수한 요소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듯, 회화 역시 자연의 모습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점, 선, 면, 색채와 같은 고유한 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점은 원소처럼 세상의 시작이자 근원적 요소입니다. 우리는 각각 하나의 점입니다. 고요함과 긴장, 단순과 복잡, 단음과 잡음이 모두 점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선은 점의 흔적이나 연결입니다. 방향과 강도, 곡선과 직선, 수평과 수직과 대각, 얇고 두꺼움을 표현합니다. 인간으로 치면 시간이자 관계입니다. 면은 수직과 수평의 교차, 선들의 춤으로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공동체이자 사회입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소리를 하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렇게 세상을 단순화하고, 그 단순한 모델로 세상을 다시 구성하는 이 철학놀이가 나에게는 꽤나 유효한 소일거리입니다. 아마도 외로워서 그럴 겁니다. 외로움으로 움츠러들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는 상상의 도구를 사용합니다. 오늘은 그 도구가 점과 선과 면이지요.

나는 가파도에 홀로 있지만, 나의 마음은 고양으로 달려갑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점들과 연결되어 선이 됩니다. 이 선(線)이 선(善)을 이루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쌓이면 아름다운 공간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석 연휴를 만드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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