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숲 생태탐사 (5) 견달산
고려 공양왕 설화 깃든 작은 산
잣, 밤, 도토리, 곤충, 새 많아
도시화로 생태축 잘려나갔지만
4만 식사동 주민 산책로로 인기
탐사단 “녹지축 중요성 인식
체계적인 보전방안 고민할 때”
[고양신문] 고양시 식사동과 주교동 사이에 자리한 해발 132미터의 견달산은 4만 식사동 주민을 비롯해 고양시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보물 같은 마을숲이다. 고양시의 대부분 마을숲처럼 견달산도 도시화 열풍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여가와 건강을 떠맡고 있다. 고양누리길 10코스인 견달산 탐방로는 산책하는 마을 주민들로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룬다.
견달산은 산의 규모가 작지만 한북정맥 산줄기로 노고산과 고봉산을 잇는 고양의 중요한 녹지축이자 덕양구과 일산동구를 잇는 생태축으로 꼽힌다. 산 들머리에 개울이 흐르고 개활지, 활엽수림, 침엽수림, 농경지 등 다양한 서식지에 따라 생물종이 풍부하게 서식해 생태적 가치 또한 작지 않다.
지역 정체성 깃든 유서깊은 숲
역사 문화적 측면에서도 견달산은 오래된 설화와 지역 정체성을 간직한 유서 깊은 마을숲이다. 중국의 황제가 세숫대야에 비쳐 그 기운이 중국에까지 도달했다 하여 견달산 혹은 현달산으로 불리는 이 산은 하늘과 잘 통해 가뭄 때면 기우제를 지내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설화와 관련이 깊다. 폐위가 된 공양왕 부부가 이성계 일파를 피해 고양 땅에 피신 왔을 때 견달산 아래 절에서 며칠 묵었는데, 절 이름이 지금은 터만 남은 어침사(御寢寺)다. 공양왕이 피신해 있던 다락골은 왕릉골로 불리고, 왕이 이용한 고개와 약수터는 대궐고개, 대궐약수터로 불린다. 식사동이란 마을도 공양왕이 다락골에 피신해 있을 때 절에서 밥을 지어 날랐다 하여 이름지어졌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대궐약수터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191호인 공양왕릉이 있다.
이 밖에 다섯 마리 용과 아홉 마리 학이 살았다는 오룡마을, 구학재마을 등 옛 마을 이름이 남아 있다. 식사동과 주교동의 경계를 이루는 서낭당 고개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중국군 사이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군사 요충지로 여겨져 산 곳곳에 군사시설과 철조망이 삼엄하다.
작은 개울가에 울려퍼진 새소리
가을 햇살이 숲을 부드럽게 감싸던 지난달 27일 오전 8시 30분, 20여 명의 고양신문 마을숲 생태탐사단은 원당중학교 뒤편 견달산 자락에서 생태탐사에 나섰다.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 탓인지 탐사단의 숫자가 지난달의 절반가량으로 줄어 강사와 대원들의 몰입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원당중 뒤편 산 들머리인 단양이씨 재실 부근에서부터 서낭당 고개까지 수백미터 구간은 탐방로 옆으로 맑은 개울물이 흘러내렸다. 개울가 습지에는 다양한 습지식물과 수변곤충, 조류가 발견되는 등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건강하고 균형 잡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잣나무와 밤나무를 비롯해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류도 많아 오랜 기간 주민들이 숲을 이용하면서 가꿔 온 마을숲임을 한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잣과 밤, 도토리를 먹이로 하는 곤충과 조류, 포유류의 흔적 또한 많이 관찰되었다. 양서류의 서식밀도가 높아 산림생태계의 먹이그물이 잘 발달해 있었고, 낙엽부식층에 다양한 버섯류가 출현해 물질순환이 양호한 생태계임을 알 수 있었다.
탐사단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 것은 새들의 청아한 노래였다. 여름 내내 기승을 부렸던 폭염이 물러나고 매미 소리가 잠잠해지면서 새들의 활동이 한층 활발해졌다. 새들은 숲 내부보다는 작은 물골이 발달한 숲 가장자리에서 더 자주 관찰되었다. 텃새는 박새류와 노랑눈썹솔새, 동고비 등 소형 산림성 조류들이 무리를 이루었고 나그네새인 노랑눈썹솔새도 눈에 띄었다. 대궐약수터 주변에서는 껍데기만 남은 장수풍뎅이 사체가 몇 마리 관찰되었는데 맹금류의 소행으로 추정되었다. 지난달 23일 전문가 조사에서 조류는 12과 16속 19종이 확인되었다.
조류 조사원 김동원(삼육대 대학원생) 씨는 “폭염이 사라지고 기온이 낮아지면서 조류의 활동이 활발해져 관찰종 수가 늘어났고, 매미 소리가 한여름보다 줄어들면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늘어났다. 견달산은 시내와 가까운 산이지만 잣, 도토리 등 먹이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식물들이 많고 곳곳에 물이 흐르고 있어 야생동물의 서식에 유리한 환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생태계
견달산의 가을 나무들도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개울가에 갈참나무와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탐스럽게 도토리를 맺고 있었고, 잎에서 누린내가 난다고 해서 이름 붙은 누리장나무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검푸른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탐방객들을 맞고 있었다. 참나무류와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아래로는 벚나무, 물오리나무, 팥배나무가 아교목층을 이루고 노린재나무, 누리장나무, 진달래가 관목층을 이루고 있었다.
초본은 숲 가장자리 물골을 따라 솔방울골, 구절초, 물봉선, 물억새 등이 출현하였고 숲길을 따라 뚝갈, 큰기름새, 산국, 산박하, 쑥부쟁이 등이 나타났다. 한국 고유종은 백운산원추리, 오동나무, 서울제비꽃 등 3종이 관찰되었고, 단풍잎돼지풀, 도깨비가지, 돼지풀, 미국쑥부쟁이, 환삼덩굴 등 생태계교란종 5종도 발견되었다. 견달산에서 관속식물은 71과 152속 193종이 확인되었다.
탐방로에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포식자로 알려진 ‘길앞잡이’가 작은 곤충을 사냥하기 위해 동그랗게 뚫어놓은 땅굴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숲가장자리 초지에는 메뚜기류, 여치류, 사마귀류가 서식하고, 산초나무와 개발나물에서는 산호랑나비와 호랑나비의 애벌레가 관찰되었다. 박재궁 습지 주변에서는 호랑나비, 네발나비, 제비나비, 흰줄표범나비, 줄점팔랑나비 등이 눈에 띄었고, 누리장나무에는 큰쥐박각시 애벌레와 끝검은말매미충이 다수 관찰되었다. 수액이 흐르는 참나무 주변에서는 사슴벌레, 톱사슴벌레, 장수말벌이 선을 보였다. 한국 고유종 곤충은 우리벼메뚜기 1종, 기후변화생물지표종은 넓적배사마귀 1종이었다. 생태계교란종은 꽃매미, 갈색날개매미충 등 2종이었다. 견달산에서 곤충류는 40과 63속 66종이 확인되었다.
양서류는 참개구리, 큰산개구리가 숲가장자리 물골에서 관찰되었고, 대궐약수터 주변에서 두꺼비가 발견되었다. 파충류는 숲으로 이어진 도로에서 유혈목이 어린 개체가 관찰되었고 도로 주변에서 로드킬당한 것으로 보이는 두꺼비 사체가 관찰되었다. 양서·파충류는 3과 4속 4종이 확인되었다.
포유류는 잣나무 숲에서 청설모가 잣 열매를 파먹은 흔적이 광범위하게 관찰되었다. 참나무 숲과 개울가 탐방로 주변에서는 고라니의 배설물과 발자국이 다수 관찰되었다. 포유류는 3과 3속 3종이 확인되었다.
지난달 23일 실시한 전문가 조사 결과 관속식물, 곤충, 양서·파충류, 거미류, 저서생물, 포유류, 조류 등 7개 분류군에서 총 134과 247속 294종이 확인되었다.
야트막한 도시숲 개발압력 여전
역사 문화적으로 유서 깊은 견달산은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의 열섬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아주는 보배 같은 마을숲임에도 체계적인 보전 계획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산의 규모에 비해 탐방객 수가 많은 데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 야생생물의 서식지 교란, 답압, 샛길에 따른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일부 구간은 벌목으로 인해 토양 침식이 진행되어 식생 파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림 아래쪽 개를 집단 사육하는 농장에서는 잔반을 방치한 바람에 탐방로까지 음식물 썩은 악취가 진동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산의 많은 부분이 군부대와 사유지여서 관리 주체가 나뉘어 있고 일부 구간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실태조사는커녕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무엇보다 이미 서울문산고속도로 등 도로 건설과 주택개발에 많은 부분을 희생했지만 산이 야트막하고 도심과 가깝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여전히 개발 압력에 노출되어 있다.
생태조사에 나선 전문가들은 고양시 생태축의 연결고리인 견달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체계적인 보전 대책과 주민 중심의 이용,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은정 (사)에코코리아 사무처장은 △서울문산고속도로로 단절된 견달산 정상부의 생태축을 복원하기 위한 모니터링과 대안 모색 △군부대 철조망으로 인해 이동이 제한된 야생 포유류의 피난처, 은신처, 회피로 등을 반영한 생태이동로 설치 △서낭당 고개~식사동 구간 등 답압에 의한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친환경 임도 관리 △산림 내 주 탐방로 이외의 샛길은 폐쇄하여 야생동물 서식지 분절화를 최소화하고, 답압에 의한 토양생태계가 교란되지 않도록 관리와 탐방객 계도 △개 사육 농장 실태를 점검하여 동물복지를 위한 환경개선, 폐쇄 또는 이전 등의 대책 강구 △밤과 도토리를 채취하지 말고 야생동물의 먹이로 돌려주자는 캠페인을 실시할 것 등을 제안했다. 이 사무처장은 “견달산은 고양시에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면서 개발 압력이 높은 대표적인 핫스팟이다. 정기적인 생태계 모니터링과 관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만 기자 birdingdmz@naver.com
취재도움 (사)에코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