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 마관협 ‘청춘백년 활활 프로젝트’

어르신 81명 이야기 채록해 AI로 노래 제작
고령 1인가구 고립감 해소 목적, 5개월간 진행
항공대 학생들 "어르신 삶  이해하는 시간돼"

[고양신문] 그 길 위를 걷노라면 지나간 날이 따라오고 / 먼 나라 간 외아들 / 바람처럼 그리워라 (화전1경로당 이종화 어르신의 ‘그 길 위에’)

화전동 끝자락 호박밭이 내 구역 / 장날이면 시장 가서 웃음도 팔고 정성도 다했지 (덕은동경로당 이청자 어르신의 ‘호박집 여사님’)

어르신 81명의 삶이 노래가 됐다. 마을 협동조합과 인근 대학 학생들이 경로당 어르신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채록하고 AI 기술로 작곡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르신 각자의 ‘인생곡’을 만들어 준 것. 지난 3일 화전 드론앵커센터 1층 카페27b에서는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화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하 화전 마관협)이 주최한 ‘청춘백년 활활 프로젝트’ 성과보고회 현장은 참여 어르신들과 자원봉사자, 협력기관 관계자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진솔한 소감으로 가득 찼다. 성과 보고 중 한 어르신이 본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나오자, 이를 지켜보던 봉사자들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지는 공감의 자리였다.

화전4(벌말)경로당 최계숙 어르신은 “처음엔 농산물이나 주고 얘기 좀 하다 가겠거니 했어요. 근데 내 추억으로 노래를 만들어준다니 관심이 갔죠. 막상 내 노래를 듣고 나니 너무 후회스러웠어요. 내 속마음을 더 진솔하게 다 얘기했다면 더 좋은 노래가 됐을 텐데….” 라고 소회를 밝혔다. 

경기도 사회적경제원 마을기업 지역특화사업으로 지난 5개월간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는 화전동 고령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을 돕기 위해 기획됐다. 핵심은 ‘AI 노래 제작’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경로당 등을 방문해 어르신 81명의 삶의 이야기를 채록했고, 한국항공대학교 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AI 기술로 작곡해 86곡을 만들었다. 완성된 노래는 ‘청춘백년’ 앱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전달됐으며, 매달 농산물 꾸러미도 함께 제공됐다.

보고회 행사장 입구에 어르신 각자의 노랫말을 시로 작성해 전시한 모습
보고회 행사장 입구에 어르신 각자의 노랫말을 시로 작성해 전시한 모습

성과 발표를 맡은 안희정 화전 마관협 이사는 “프로젝트 참여 전 어르신들의 우울증 지수가 10.1점이었는데, 5개월 후 5.3점으로 낮아져 우울감이 47.5% 향상되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안 이사는 “이는 단순히 한 달에 한 번 만난 결과라기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노래를 통해 ‘내 삶이 참 별로였는데, 돌아보니 참 괜찮았네’라고 스스로를 긍정하게 된 힘이 컸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향후 과제로 “어르신들과 합창단을 꾸려 노래를 함께 배워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참석한 어르신들은 사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한목소리로 전했다. 김영수 화전3 경로당 회장은 “이렇게 좋은 행사가 한 번으로 끝나는 건지, 내년에도 계속되는 건지 궁금하다. 꼭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한 어르신 또한 “노래를 통해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농산물 꾸러미 선물도 고마웠다. 무엇보다 이걸 통해서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돼서 감사하다”며 마음을 전했다.

각자 소감을 이야기하는 화전동 어르신들

프로젝트의 성공 뒤에는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과 협력 기관들의 노력이 있었다. 7월부터 남편과 함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는 우종희 자원봉사자는 “과거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번 프로젝트는 ‘나눔’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 사업이 여기서 끝나서는 절대 안 된다. 다른 마을로 퍼져나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며 “이런 좋은 프로젝트가 사회 운동처럼 확산되도록 지원이 절실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구술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AI를 통해 노래로 제작한 항공대 김정한, 김성빈 학생(사진 왼쪽부터)
자원봉사자들이 구술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AI를 통해 노래로 제작한 항공대 김정한, 김성빈 학생(사진 왼쪽부터)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소감을 이야기하는 우종희씨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소감을 이야기하는 우종희씨

노래 제작에 참여한 항공대 김성빈 학생은 “청년 세대가 어르신들과 소통할 기회가 부족했는데, 어르신들의 삶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으며, 김정한 학생은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어르신들과 교류하며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며 세대 간 교류의 의미를 더했다.

한편 안희정 이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발견된 ‘디지털 격차’ 문제를 향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안 이사는 “노래를 앱에 깔아드리려 해도 어르신들 핸드폰에 데이터 요금제가 없거나, 심지어 경로당에 와이파이가 없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경로당 무료 와이파이 설치 등 어르신들의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고민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로당 돌봄허브 구축을 통한 디지털 포용 정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5개월간의 프로젝트 과정을 기록한 '청춘백년' 책자
5개월간의 프로젝트 과정을 기록한 '청춘백년'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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