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 신자유주의 등
복잡한 현실문제 해답 찾는데
맹자만한 스승, 예언자 없어
"정의는 각자에 주어진 역할 의무
본성에 내재된 도덕적 지향성이
사회질서의 필요조건 이뤄"
[고양신문] ‘맹자’를 읽었다. 동양사상의 고전이자 사서(四書)의 하나인 『맹자』를 읽은 게 아니고, 『맹자』를 해설한 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책 『최소한의 윤리』를 읽었지만 말이다. 고백하자면, 맹자이든 다른 무엇이든 이 고리타분한 옛 사상을 자청해서 읽은 건 아니다. 책상을 둘러보니 저자가 얼마 전 증정해준 책이 눈에 띄었고 약간의 의무감에 떠밀려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다 읽은 소감은? 읽기를 참 잘했어! 비록 원전은 아니지만, 오래전에 공부했던 동양사상의 재미를 새록새록 되새긴 즐거운 시간이었다.
학생 시절에 서양철학을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독일 근대철학을 전공했지만, 동양철학에 아주 문외한은 아니다. 한국의 동양철학자 중 손꼽히는 학자인 고 배종호 교수님께 한 시절을 배웠고 두어 과목에서는 높은 학점도 받았다고 잠시 뻐겨본다. 그러나 또 한 번 고백컨대, ‘사서’ 가운데 『대학』 『중용』은 좀 읽었지만 『논어』 『맹자』는 여기저기 쥐 파먹듯 읽었을 뿐임을 실토한다. 『최소한의 윤리』를 통해 맹자를 다시 만나면서 내가 그동안 뭔가를 잘못 알아도 크게 잘못 알았구나, 하는 느낌이 불쑥불쑥 솟았다. 이 뛰어난 교양서를 통해 새로 접한 맹자는 여전히 우리 현실의 문제에 하나의 해답을 제공하는 스승 또는 예언자였다.
책은 쓴 저자 이권우는 도서평론가이자 자신의 책을 여러 권 쓴 저술가이기도 하다. 『호모 부커스』나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가 몇 년 전부터 『논어』를 들이파는 듯하더니 또 『맹자』를 파고 있기에 타박을 놓은 적이 있다. 아마도 ‘여는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심한 눈길을 보낸 친구는 혹시 나인가 싶기도 하다. 이미 동양 또는 서양이라는 사상의 ‘출처’를 구분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동서양이 평준화된 이 세계화 시대에, 우리 삶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는 이유야 어쨌든 사상적 보편성을 획득한 서양 이론들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느낀 것은, 맹자의 말들은 여전히 온고지신, 현대에도 유의미하며 우리의 고민들을 선취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바로 이런 맹자의 면모를 살려내기 위해 기후환경 문제, 신자유주의 문제, 우리의 정치적 현실과 맹자의 가르침을 책 곳곳에서 연결시키고 있었다. 또한 진화심리학의 최근 연구에서부터 홉스의 ‘리바이어던’,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 존 롤스의 정의론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상과도 맞닿는 보편성을 캐내고 있었다. 『최소한의 윤리』는 맹자 해설만이 아닌 너무 많은 논의들을 담고 있어서 교양서치고는 밑줄 그을 일이 많은 책이다. 250쪽 책에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싶지만, 독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이런 배경지식 없이도 저자의 맹자 해설은 그 자체로 충분한 설득력과 재미를 갖추고 있으니까.
책의 전체 얼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맹자 성선설이 나온 바탕과 기본 정신을 해설한 ‘본성론’과, 그것을 정치사회적으로 확장한 ‘왕도정치론’, 그리고 역성혁명의 근거를 해설한 ‘혁명론’ 등 맹자 사상의 원론편이 절반을 차지한다. 나머지 절반은 일종의 응용편으로 맹자의 역사관, 중용의 의미, 효에 대한 생각, 그가 가르친 공부법 등 다소 분산된 개별 주제들을 다룬다. 이 내용들을 전체 17개의 짧은 장들로 나누어 하나씩 해설하고 있는데, 위의 큰 얼개는 내가 편의적으로 묶어본 것이다.
『맹자』 원전은 원래 ‘양혜왕’ ‘공손추’ 등 7편으로 나뉘어 있고 각 편은 상하편에 제각기 5장에서 30장이 넘는 체제로 엮여 있다. 해설서 저자가 보통의 교양서 분량에 이것을 모두 다루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저자의 해설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고 인상적인 대목들만 몇몇 소개한다.
우리가 ‘성선설’이라는 상투적 용어로 부르는 맹자 인의론은 그리 간단히 요약되는 주장이 아니다. 제발 바라건대, 교과서가 가르치는 용어들을 시험용으로 잠깐 외우고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의미를 다 아는 듯 생각하지 말자. 맹자는 우물에 빠진 아이를 보고 무조건 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성을 본성적인 것이라 설명하고 측은지심 곧 인(仁)의 출발로 보았다. 저자 이권우는 진화심리학의 설명을 들어 원숭이나 인간 등의 사회적 동물들에게 원초적 공감능력이 있다는 얘기로 맹자 주장의 타당성을 보강한다. 이런 해설은 놀랍게도 묵자 ‘겸애설’과의 비교로도 나아간다. 가까운 친족과 먼 타인을 구별하지 말고 만인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묵자의 주장은 오히려 이익(利)에 기초한 사회이론으로, 결국 투쟁이나 극심한 불평등을 낳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겸애와 비교되는 맹자의 ‘차등애’는 겉보기에는 내 가족만을 우선 챙기는 이기심을 옹호하는 듯하지만, 이런 ‘정서적’ 공감능력이 있어야 타인도 내 가족과 같다는 ‘인지적’ 공감능력으로 확충할 수 있다고 한다. 나를 미루어 타인을 대하라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추기급인은 또 공자의 충서(忠恕)와도 바로 맞닿는데, 지금에 와서 뜻이 곡해된 것과 달리 자신에게 올곧은 마음인 ‘충’과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공감을 가리키는 ‘서’는 둘 모두를 갖출 때 내향과 외향의 도덕적 충분조건을 이룬다는 것이다.
맹자의 의(義)도 이 책 『최소한의 윤리』를 통해 새롭게 의미를 되새긴 개념이다. 영어의 ‘justice’가 ‘딱 맞다’는 뜻의 ‘just’처럼 수학적 공평(equal)이나 공정(fair)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과 달리 맹자의 ‘정의’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 의무의 개념에 가깝다고 한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공자의 말이 그러하다. 왕은 자신보다 백성의 안녕을 돌보는 역할 의무를 지고 있고, 아버지는 노동하여 가솔을 책임지는 역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가부장적 봉건주의로 보는 유교적 질서는 원래 이런 역할 의무를 다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이상적 사회질서였다. 맹자가 왕도(王道) 아닌 패도(覇道)를 좇는 군주를 갈아치울 수 있다고 보는 것도 여기서 출발한다. 역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군주는 끌어내려야 한다. 그 누구처럼.
더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많지만, 맹자의 이런 정치이론은 ‘완성주의적 정의론’과 ‘합의론적 정의론’의 양대 측면을 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로 끝내야겠다. 토머스 홉스와 벤덤 등이 말한 인간의 이기심을 맹자도 부정하지는 않되 상호간의 호혜적 이익을 보장하는 계약론적 사회 질서를 필요조건으로,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인간 본성에 내재된 선과 정의에 대한 도덕적 지향성이야말로 사회 질서의 충분조건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 맹자의 정의론이다.
남는 의문이 한 가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디까지가 맹자이고 어디까지가 저자 이권우인지 헷갈린다는 것. 아마도 저자가 몇 년에 걸쳐 맹자에 이입하면서 무엇이 저자 생각이고 무엇이 맹자 생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맹자의 한계를 짚는 부분이 거의 없어서 그렇게 느껴졌을 텐데, 섣부른 비판보다는 올바른 해석이야말로 또 하나의 창의적 출발점을 이루는 까닭에 꼭 부정적으로만 하는 얘기는 아니다.
저자 이권우의 문장은 유려하다. 젊은 시절, 실패한 문학도여서 그런가? 충청도 출신인 저자의 양반 같은 심성이 맹자를 해설하는 데도 꼭 알맞더라는 평을 전해주고 싶다. 이 책으로 맹자를 알게 된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저자가 크게 의존했다고 하는 배병삼 교수의 『맹자, 마음의 정치학』에 도전해보기 권한다. 엄청난 분량의 책이라는 것은 각오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