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자 조병범의 우리동네 새 이야기
(1) 가을, 공릉천

지영교 부근 다양한 새들 서식
원앙, 황오리 등 화려함 뽐내

공릉천 지영교 부근에서 관찰된 황오리
공릉천 지영교 부근에서 관찰된 황오리

[고양신문] 장항습지 옆을 지나 본 사람은 기러기 떼를 보았을 것이다. 북극권이나 툰드라 지대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기러기는 9월 말부터 보이기 시작해 점차 많아진다. 그렇다 보니 이즈음 장항습지는 기러기가 와글거린다. 장항습지에서 잠을 자고 먹이터로 날아가는 기러기는 해 뜨기 직전에 가장 많이 출근하고 해가 질 무렵에 잠을 자러 돌아온다. 바야흐로 기러기 소리 끼룩끼룩 즐겁게 들리는 가을날이다. 
장항습지는 고양시가 자랑할 만하다. 세계가 중요성을 인정하여 ‘람사르 습지’로 등재했다. 고양시는 새를 보기 좋은 도시일까? 새를 중심에 두고 질문을 다시 해 보자. 고양시는 새가 살아가기 좋은 환경일까? 사람과 새를 중심에 둔 질문들이지만 새를 보기 좋은 곳과 새가 살아가기 좋은 환경은 불가분 관계가 있다. 그리하여 두 질문을 품고 고양시 이곳저곳을 살펴보려고 한다. 하천, 왕릉, 습지, 공원, 산, 마을 등지에서 새와 환경을 살펴볼 예정이다. 
첫 장소는 공릉천이다. 공릉천은 큰 하천이다.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고양시를 거쳐 파주시를 지난 뒤 한강으로 나간다. 지천이 30여 개에 이를 만큼 크다. 전체 45km 중 13.8km만 고양시를 지나지만 선유동, 오금동, 대자동, 관산동, 사리현동, 내유동 등 고양시 북쪽 여러 마을을 지나는 고양시 대표 하천이다. 하천을 따라가다 보면 굽이굽이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강처럼 넓은 구역도 나온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우뚝 솟은 북한산 봉우리가 보인다. 

공릉천에서 서식 중인 원앙 한쌍.
공릉천에서 서식 중인 원앙 한쌍.

공릉천 중류, 지영교를 찾았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이 달마다 모니터링하는 장소이다. 지영교는 고양시와 파주시 경계에 있고, 하류 쪽에 콘크리트 기둥 수백 개가 세워져 있다. 탱크를 막는 대전차 방호 시설인 용치(龍齒, 용 이빨)이다. 흉물이지만 물속에 세우고 방치하여 세월이 흐르다 보니 물새들이 용치 사이로 흐르는 물길에서 기다리며 물고기를 사냥한다. 용치에 막힌 물이 고인 곳에서는 오리들이 빙글빙글 헤엄치고, 용치 위에는 다양한 새들이 올라서 쉬기도 한다. 
용치의 영향으로 생긴 환경 변화도 작지 않다. 물의 흐름이 조절되다 보니 하류에 모래톱이 생겼고 그곳에 민물가마우지 수십 마리와 백로, 오리들이 쉬고 있다(사진 2) 깝작도요와 삑삑도요, 백할미새와 노랑할미새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흰목물떼새 같은 물떼새가 번식할 만한 공간이다. 분단 상황을 상기시키는 인공 시설이지만 세월이 흘러 새가 이용하기 좋은 장소로 바뀐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지영교에서 하류를 살펴보면 왼쪽에 벽제수질복원센터가 있고 오른쪽에 운동장이 있다. 센터에서는 따뜻한 물이 나오고 그곳에 새들이 몰려 있다. 따뜻한 물을 찾아 물고기들이 몰려들고 그들을 잡아먹으려고 물새들이 모였을 것이다. 운동장 쪽에는 둔치에 버드나무와 덤불숲이 있어 작은 새들이 애용한다. 운동장 귀퉁이 하천 옆에 서면 물의 양에 놀란다. 강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넓은 물에 논병아리들이 잠수했다가 얼굴을 내밀고 겨울 철새 쇠오리를 비롯해 백여 마리 오리들이 자맥질한다.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공릉천 용치.

눈높이보다 조금 낮은 물에서 다양한 오리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고요하게 한참 동안 지켜봐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리들 곁에 사뿐히 내려앉는 주황색 날갯짓이 있다. 겨울 철새 황오리이다(사진 3). 황오리는 주황 오리로 화려한 빛깔이 두드러진다. 온통 주황색 빛깔 몸통에 부리와 꼬리는 검으며 머리는 빛깔이 엷고 날 때 날개덮깃이 하얗다. 햇살 받은 황오리 한 쌍이 헤엄치는 하천이 문득 환하다.
이들과 멀찍이 떨어져 물가에서만 움직이는 오리가 있다. 원앙으로 천연기념물이다(사진 4). 똑같은 새라도 어느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를테면 원앙이 창경궁 춘당지에 와글와글 모여 있으면 사람과 가까운 새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옹색한 공간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곳 공릉천 수량 풍부한 곳에서 만난 원앙은 그저 아름답다. 사람들과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공릉천에서 사시사철 자연 그대로 살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병범
새의 눈으로 환경을 보려고 하는 탐조가이자 시민과학자다. 『동네 공원에서 새 관찰하기』, 『생명을 보는 눈』, 『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 등의 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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