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가파도 편지 21>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래를 찾아보니 셰익스피어의 역사 비극 『헨리 4세 2부』에 나오는 말입니다. 권력이나 명예의 자리는 그만큼 책임과 고통이 따른다는 이야기지요. 이번에 APEC 행사 중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과 옥으로 장식한 신라왕관을 선물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격언이었습니다. 

이어서 꼬리를 물고 떠오른 생각은 시칠리아의 왕 디오니시우스 2세의 일화였습니다. ‘다모클레스의 검(Damocles’ sword)‘이란 용어로 널리 알려진 이 일화는 기원전 시칠리아의 왕 디오니시우스 2세와 그의 신하 다모클레스 사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다모클레스가 왕의 권력을 부러워하자, 디오니시우스는 그에게 왕좌에 앉을 기회를 줍니다. 다모클레스가 왕좌에 앉아 기쁨을 느끼던 순간,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단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날카로운 칼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왕좌 위의 칼날 이야기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그와 동시에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도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통령 지위도 모자라 영구집권을 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No King’ 시위가 미 전역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SNS로 중계되는 이 시위 모습을 보면서 이제 K-시위 문화가 전 세계로 퍼지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트럼프가 왕좌에 오르기에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주시민을 이기는 권력자는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왕이 되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감옥에 가 있는 윤석열 부부입니다. 계엄 이전부터도 그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만, 탄핵 이후에 밝혀지는 그 부부의 행각을 보면 실로 어처구니가 없고, 분노가 치솟습니다. 옛 왕궁을 제집 드나들 듯이 들어간 것도 모자라, 왕좌에 앉아보고, 침실에 들어가고, 왕실의 물건을 빌려(?) 온 것으로 보아 이들도 왕좌를 꿈꿨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 왕좌로 가기 위한 계엄과 내란의 길이 차단되었기에 망정이지 계엄해제와 탄핵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21세기 백주대낮에 잠시나마 왕정을 겪을 뻔했습니다. 지금와서 상상만 해도 등골에 식은땀이 흐릅니다.

왕의 자격을 갖춘 자들도 왕좌의 무게를 생각하고, 권력의 위험을 상상하는 것이거늘, 왕의 자격은커녕, 민주시민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자들이 왕좌를 꿈꾸었다는 것만으로도 기가 찰 노릇입니다. 게다가 지금도 그 헛된 꿈을 잊지 못하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거리에 넘쳐나는 것을 보면 민주주의의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란에 성공했다고 해도 윤석열 부부가 왕좌에 오를 수가 있었을까요? 100%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군사내란을 일으킨 군부가 민간인 권력을 허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떻게 얻은 권력인데, 그 자리를 양보하겠습니까? 아마도 윤석열 부부는 가장 먼저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나마 내란이 실패하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것을 그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민주정부가 들어섰으니, 정당한 법절차를 운운하며 법적 저항이라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떠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지요. 그리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아닐까요.

왕좌에 오르려 했던 헛된 꿈은 곧 무너졌지만, 자신들을 왕처럼 여겼던 그들의 태도가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걸맞은 인사를 보냅니다. "long live the king in p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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