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지음, 파라북스 펴냄
『프랑스 혁명을 다시 쓰다』

자유 평등 뒤편 배제된 여성 권리
구조적 성차별에 맞선 투쟁의 기록

[고양신문]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프랑스 혁명’은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로 다가왔다. 하지만 작년 이맘때쯤 계엄이 터져 국민 생명이 위협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라도 우리와 민주주의의 숨결을 공유하고 갈망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혁명은 절대왕정과 특권계급이 지배하던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평등·우애라는 혁명적 이념을 세계에 전파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자유·평등·우애’를 누구보다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외쳤지만, 정작 그 이념의 대상이 되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식량 부족과 기근 상황에서 발생한 빵 폭동, 국왕을 파리로 데려온 베르사유 행진 등 긴 혁명의 과정 속에서 여성 민중들은 역동적으로 혁명을 주도했다. 이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거나 과도하게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생계를 지켜야 했고, 민중주권과 생존권에 근거해 혁명에 나섰다. 여성들의 주도 하에 베르사유의 국왕을 파리로 데려온 것도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를 남성보다 더 민감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빵 폭동에 여성들이 앞장선 이유 역시 자녀 부양에 대한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반응은 무시와 냉대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공화체제는 여성들을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로베스피에르의 측근 쌩 쥐스트는 여성의 역할을 ‘국가적인 행사를 장식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국민의회 대표였던 미라보는 남성의 강한 체력과 대담함은 사회적 활동에 적합하지만, 여성의 섬세하고 연약한 신체는 출산과 가사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혁명을 주도한 남성들은 여성을 스스로 생각할 능력도 없는 존재로 취급하면서도, 동시에 여성이 경쟁자가 될까 두려워했다. 거리와 의회의 방청석에 나타나 정치적 영향력을 펼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그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프랑스 혁명 중 발생한 베르사유 행진. 파리의 여성 7000여 명이 빵 가격 폭등과 식량난에 항의하며 무장한 채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했다.
프랑스 혁명 중 발생한 베르사유 행진. 파리의 여성 7000여 명이 빵 가격 폭등과 식량난에 항의하며 무장한 채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했다.

하지만 격렬한 반감과 배제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합리적이고 담대하게 혁명을 지켜갔다. 혁명전쟁이 시작되자 이들은 국민방위군 편입과 무장권을 요청하며 조국을 지킬 권리를 주장했다. 상인들의 횡포로 생필품 값이 오르자, 여성들은 약탈 대신 생필품을 자신들이 정한 싼 가격에 가져갔다. 폭력이 아닌 정의로 저항한 것이다. 
혁명 내내 ‘여성성’을 강요하는 남성들의 담론 속에서도, 여성들은 혁명의 상징인 삼색휘장을 수호하며 자유와 평등의 진정한 의미를 지켜냈다. 혁명의 가치에서 배제된 이들이 오히려 그 가치의 본질을 가장 명확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들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함께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그 가치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은 절망적으로 보이지만, 여성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주장하며 혁명의 물결을 꿋꿋이 채워갔다.

프랑스 혁명은 아득한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현재에도 민주주의가 사회 구석구석에 정착하고,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이 존중되는 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프랑스 혁명의 여성들은 우리가 안주해서는 안 될 이유를 말해준다. 인종, 젠더, 노동, 환경 등, 사회 곳곳에 스며든 불평등을 삶의 문제로 직시해야 함을 일깨운다. 변화의 여정이 지지부진하더라도, 옳은 가치가 부정당하더라도, 선명한 정의를 더욱 힘 있게 밀고 나가야 함을 여성들은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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