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요즘 농장에 나가면 농장 전체가 횅하다.
느티나무의 잎사귀는 거의 다 떨어져서 하우스 주변엔 낙엽이 도톰하게 깔렸고, 밭에는 배추와 쪽파만 남아서 그 풍경이 퍽 스산하다. 수확을 끝낸 울금밭엔 울금의 줄기며 잎사귀 같은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렸고, 이달 말에 김장을 끝내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 농사도 끝이다.
어제는 양파밭에 왕겨로 보온을 해준 뒤 하우스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는데 지난 일 년의 기억들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아스라이 지나갔다. 새해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참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아쉬움은 왜 그리 많은지 회한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일월부터 나는 여주로 내려가 토종벼를 지켜온 후배와 함께 벼농사와 관련된 일들을 억척스레 해내었고 봄부터는 여주와 자유농장을 오가며 강행군에 강행군을 거듭했다. 그 사이에 후배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걷지를 못했고 나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지면서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해다. 후배가 노동력을 상실한 이후로 나는 후배와 한 몸처럼 일해왔던 선배와 함께 더욱 고된 노동을 감당해야만 했고, 유월 중순 어느 날 후배는 구급차에 실려 서울로 이송이 되었고 암센터에서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났을 때 나는 우울증이 점차 심해지면서 이러다간 나부터 죽겠다는 생각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여주를 떠났다. 여주를 떠날 때 농장에 혼자 남은 선배와 암센터에 있는 후배 생각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미안함이 앞섰지만 나는 어금니를 질끈 사려물고 자유농장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몇 달간 나는 극심한 무기력증과 싸워가며 밭일에 매달렸다. 무기력증이 서서히 가라앉을 무렵 혼자서 여주농장을 지키고 있던 선배가 느닷없이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고,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무슨 내상을 입었는지 무기력증은 다시 심해졌고, 나는 어떻게든 밭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모질음을 써가며 인내의 시간을 견뎌냈다. 그러면서 최대한 잘 먹으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많이 걷기 위해서 차도 없애버렸다.
그 결과 체중이 서서히 늘었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무기력증은 거의 극복이 되었으며 자연스레 밭에서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가족들과 벗들의 응원이었다. 그들이 내미는 따스한 손길의 온기를 느낄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회한에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십일월 마지막 주에 여동생들과 함께 김장을 마치고 나면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갈 테고 농장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 것이다. 그러면 함박눈이 싸륵싸륵 날릴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농사가 없는 겨울에는 뭘 하느냐고 묻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열심히 걷는다고 대답을 한다. 하지만 올해에는 열심히 걸으면서 오랫동안 묵혀둔 소설을 쓸 생각이다.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소설은 정말로 아픈 삶을 살아낸 중년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가 서럽고 가슴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한 장의 손수건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건 내 농사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