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골목나들이
(7)원당 6, 7구역
1961년 고양군청 옮겨오면서 급부상
80년대 중반 주교·성사리 도시개발
주택 낙후 심각, 재건축 요구 높아
“고양시가 합리적 공론장 마련했으면”
[고양신문] 고양시 구도심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골목나들이’를 연재한다고 하면 “고양에도 한옥마을, 또는 목포나 군산 근대거리처럼 고풍스러운 골목이 있나?”라는 질문이 되돌아올 때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을 리가 없다. 고양의 주거지역은, 신도시는 말할 것 없고 과거 6개 읍·면소재지였던 구도심 역시 대부분 80년대 이전의 흔적이 철거되고 새 건물들이 채워지며 조성된 공간들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50년도 안 된 골목길을 답사하고 기록할 가치가 있나?” 타당한 질문이다. 산업화 시기로 일컬어지는 70~80년대는 말 그대로 ‘저가의 효율성’을 추구한 비슷비슷한 건축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주거 형태가 바로 2~3층 규모의 연립주택과 5층 이하 저층 아파트들인데, 특히 고양과 같은 수도권 주변도시에 밀집도 높게 들어섰다.
하지만 고양시 구도심의 풍경들이 건축사적으로, 도시 미학적으로 가치를 부여받기 힘들다는 점이 어쩌면 ‘고양의 골목나들이’를 연재하는 역설적 이유다. 특별한 것들은 주목하는 눈과 기록하는 손이 많게 마련이지만, 평범한 것들은 여건만 마련되면 누구의 배웅도 받지 못하고 손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원당역, 성사초, 원당시장과 인접
일산, 능곡, 원당의 구도심은 2010년 뉴타운사업(도시재정비촉진계획)에 의해 고시된 구역 구분을 기준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지도에 그려진 선에 따라 공간의 운명이 갈리기 때문이다. 오늘 둘러볼 원당6·7구역은 동남쪽의 원당역, 동북쪽 성사초등학교, 서남쪽 원당시장 사이를 차지하고 있는 주거지역이다.
한편으로 6·7구역은 동북쪽 래미안휴레스트, 서북쪽 원당e편한세상, 서남쪽 원당역롯데캐슬스카이엘, 동남쪽 창조혁신캠퍼스 성사 등 4면이 신축 고층아파트와 빌딩에 포위된 지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골목을 걷다 보면 저층 건물 너머로 높은 건물이 우뚝 솟은 풍경을 어디서나 목도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입주한 래미안과 e편한세상은 1980년대 중반 고양시 최초의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건설됐던 원당주공1·2단지를 철거하고 들어섰고, 2024년 하반기 나란히 준공한 롯데캐슬 아파트와 창조혁신캠퍼스 성사는 각각 원당에서 가장 빨리 진도를 뽑은 원당4구역 재개발사업과 문재인 정부 때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의 결과물이다.
보물찾기 재미 안겨준 ‘금석빌라’ 글씨
마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80년대 이전까지 이곳은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논과 밭이 이어진 전형적인 자연촌락이었다고 한다. 옛 마을 이름은 쌀꼬지촌이었는데, 고양시 기록에는 ‘쌀을 보관하던 큰 창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발음이 유사한 ‘살곶이’라는 지명은 서울 성동구, 경기도 화성, 인천 강화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공통점은 모두 강가나 갯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점이다. 원당 ‘쌀꼬지마을’에 대해서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과거의 지형과 연관된 새로운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바로 옆마을 이름도 배다리를 뜻하는 ‘주교리’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쌀꼬지마을 가운데에는 야트막한 언덕숲이 있었다. 고양땅 곳곳에는 장산, 지렁산, 영글이산, 법수산 등 높이가 채 50m도 되지 않는 나지막한 언덕이 당당히 ‘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들이 한둘이 아니다. 쌀꼬지마을 사람들도 마을 언덕을 ‘금석산’이라 불렀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원당 일대(주교리·성사리)에서 고양군 최초의 토지구획사업에 의한 택지개발이 진행되면서 금석산 숲 대부분은 빌라와 저층아파트에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롯데캐슬 담장을 따라 미도아파트로 올라가는 언덕길 우측에 과거 금석산의 일부였던 녹지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잘 찾아보면 과거 금석산이 있었다는 기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또 하나 있다. 한 주민이 알려준 지점을 찾아가 보니 벽돌로 쌓은 3층 연립주택 현관에 ‘금석’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검정 페인트로 투박하게 쓴 두 글자를 만나는 순간, 앞서 능곡 사뫼언덕의 흔적을 ‘사뫼순대국’ 간판에서 발견했을 때처럼 짜릿한 반가움을 느꼈다. 내가 구도심 골목나들이를 발품파는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보물찾기’라고 말하는 이유다.
빌라, 저층아파트 채워진 금석산 언덕
‘으뜸가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원당(元堂)은 고양군 6개 면소재지 중 하나였지만, 경의선 철길이 지나는 일산과 능곡에 비해 발전이 지체되고 있었다. 하지만 1961년 서울 을지로에 있던 고양군청이 일산이 아닌 원당으로 옮겨오면서 일약 고양군의 군청소재지가 됐다.
행정기관이 하나둘 들어서고 인구가 점점 증가하자 원당 일대에 대대적인 택지개발사업이 계획됐고, 1985년을 기점으로 신시가지의 면모가 순차적으로 완성됐다. 박제궁, 주교촌, 쌀꼬지마을과 같은 자연촌락에 토지구획이 진행되며 반듯반듯하게 길이 났고, 분양된 택지마다 연립주택과 저층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섰고, 상업지역으로 개발된 호국로와 고양대로 주변에는 리스쇼핑, 동양쇼핑으로 상징되는 상가와 각종 유흥업소들이 불야성같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989년 1기신도시 일산개발이 발표되고, 1990년대 중반까지 고양시 곳곳에서 대규모 택지개발이 동시다발 진행됐다. 과거 ‘고양군 원당읍 성사리’로 묶여있던 동네도 시 승격을 계기로 고양대로 북쪽은 성사1동, 남쪽은 성사2동으로 나뉘었고, 성사2동에도 ‘신원당마을’이라는 신도시가 들어섰다. ‘80년대형 신도시’ 원당의 전성시대는 불과 10여 년 만에 ‘90년대형 신도시’에 고양시 대표 주거지역이라는 간판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구도심 주택가의 시간이 멈췄을 리 없다. 이후로도 30여 년 동안 원당6·7구역의 저층 주택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담으로 거처를 마련한 서민들에게 편안한 삶의 터전이 되어 주었다. 80년대 중반 리스쇼핑 건너편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원당시장은 어느새 고양에서 가장 번화한 전통시장으로 성장했고, 1990년대 중반 지하철 일산선 개통 당시에는 원당역을 유치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주민들은 동서로 이어진 언덕길을 따라 원당시장에서 찬거리를 마련했고, 남북으로 연결된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원당역을 드나들었다.
6·7구역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우선 고양 구도심 나들이를 반복하며 어느새 눈에 익은 ‘옛날 빌라’ 브랜드들이 “여기서 또 만나네?”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미덕, 대성, 삼남, 덕수, 삼화, 대주, 명림…. 단조로운 두 글자 이름이 친근하고, 벽돌벽에 페인트로 쓴 글씨도 정겹다. 저층이지만 제법 규모가 큰 미도, 개나리, 삼화, 임창, 장미아파트는 소박하지만 놀이터, 마당과 녹지, 경비실 등을 나름대로 갖췄다. 확실히 80년대는 고양시 중소규모 주택건설업체들의 화려한 전성기였다.
집들이 위압적이지 않으니 발길도 느긋하다.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 계단, 현관에 놓인 화분들, 틈새가 비좁아 키만 훌쩍 키운 나무들, 등나무 그늘의 평상, 색이 예쁘게 바랜 벽화, 놀이터에 널어놓은 붉은 고추 등 휴먼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는 풍경들이 나들이꾼의 시야를 편안하게 한다.
한 시대의 흔적 신앙촌, 코사마트
가게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동양쇼핑에서부터 이어지는 호국로 812번길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데, 과거 공동체 기업활동을 병행했던 특정종교의 소매점인 ‘신앙촌상회’ 간판도 보인다. 지물포와 종합인테리어, 세탁소와 컴퓨터크리닝, 미용실과 헤어숍의 간판이 함께 걸려있는 매장들은 트렌드 변화를 이겨낸 깊은 연조를 뽐낸다.
그런가 하면 개나리아파트 앞 2층짜리 상가에는 효동세탁소, 효동탕제원, 효동떡집 간판이 눈에 띈다. 알고보니 상가 이름이 ‘효동상가’다. 또한 지금처럼 몇몇 대기업 브랜드 편의점이 모든 골목상권을 점령하기 전에 눈에 많이 띄었던 코사마트(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공동브랜드)가 6·7구역에서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그러나 나들이꾼이 느끼는 한가함과 달리, 실제 살아가는 주민들은 6·7구역의 운명에 대해 “한계가 왔다”고들 말한다. 지은 지 40여 년이 넘다 보니 주택의 낙후도가 갈수록 심각하다는 것이다. 가장 불편한 것은 수도시설이다. 배관이 녹슬어 녹물을 빼야 하고, 수압이 낮아 4·5층은 따로 모터를 달아야 하고, 여전히 통합계량기를 사용하는 건물에서는 수도요금으로 인한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한 주민의 하소연이다. 가끔은 어느 집 담장이 붕괴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단다. 어떤 형태로든 합리적인 재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에 많은 주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입주를 마친 원당4구역, 공사가 한창인 원당1구역에 비해 지난 15년간 복잡한 우여곡절을 겪은 원당6·7구역의 재개발은 여전히 중지를 모으지 못하고 있다. GH(경기주택도시공사)는 6·7구역 통합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6구역과 7구역 따로 독자적인 민간 재개발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병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현 상황에 대한 완전히 다른 시각의 정보와 주장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한 주민은 “고양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양측의 주장을 듣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공청회를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소박한 이들의 평온한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던 원당6·7구역.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언젠가는 순조로운 합의에 이르기를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