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근의 동네서점 기행 (6) 백석동 '히스테이블'

작은 책방이 품은 기독교 정신
책읽고 세미나 '새로운 길' 모색

백석동 동네서점 히스테이블. 30여 명이 모여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백석동 동네서점 히스테이블. 30여 명이 모여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고양신문] 어린 시절 가좌동 집 해가 지고 뒷동산에 올라 일산시내를 바라보면, 붉은 십자가들이 나를 감시하듯 솟아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는 단지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그 교회를 드나들곤 했다. 어린 나에게 선물은 기쁨 그 자체였지만, 요즘 나에게 ‘선물’은 오히려 귀찮은 단어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채팅앱은 누가 나를 축하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또 내가 누구를 축하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앱은 편리함을 미끼로 선물의 중개자가 되었고, 누군가의 마음과 손길이 오가던 자리는 스크린 속 커피, 치킨 기프티콘이 대신했다. 그리고 그 중개 비용으로 그들은 부자가 됐다. 매년 생일마다 “이용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재촉하는 알림을 억지로 확인하던 어느 날, 나는 결국 내 생일을 알리는 기능을 꺼버렸다.

그러던 중 독서모임에서 읽은 로빈 월 키머러의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에서 소개한 ‘선물 경제’는 내게 선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줬다(세리서점 강력 추천). 계산과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에 무엇이 아직 돈으로 환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까. 혹은 무엇을 다시 계산하는 사회로부터 떼어낼 수 있을까? 그런 물음이 남던 어느 날, 세리서점 근처에 얼마 전에 문을 연 기독교 책방 ‘히스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교회는 여전히 불편하지만 선물은 좋아하는 나는 신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책들로 가득 찬 공간을 상상했는데 히스테이블은 그렇지 않다. 넓은 여유 공간을 갖추고 있고 공유 주방이 눈에 들어왔다. 서가의 책들을 둘러보니 기독교인이 아닌 내가 보기에도 호기심이 가는 여러 주제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나를 맞아준 히스테이블의 공간지기는 성완기씨다. 그는 세리서점에 자주 찾아왔던 이웃이기도 하다. 오며 가며 인사를 하다가 어느 날 “근처에 서점을 열게 됐다”고 알려줬다. 물론 나는 근처에 서점이라니! 하며 경계했지만 곧 그 마음을 거뒀다. 서점이 많은 거리라니 얼마나 두근두근한 일인가.

히스테이블 공간지기 성완기씨.

성완기씨는 왜 서점을 열게 됐을까. 그는 20대의 대부분을 교회 사회 안에서 보냈다. 중국 유학 시절 처음 신앙을 만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관련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가 몸담았던 교회의 모습은 그의 믿음과 점점 괴리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정치색과 신앙이 뒤섞였고, 신학이 더 깊은 사유의 여지가 있는 학문임에도 ‘옳고 그름’을 감별하는 단순한 과학처럼 다뤄졌다. “신학을 연구하면 할수록 답보다 사유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돼요. 그런데 한국 교회는 흑백논리, 선악 구조가 너무 분명하죠. 자신이 경험한 것 외의 세계는 악하거나 틀린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의 스펙트럼은 점점 넓어졌지만 한국 개신교의 주류 신학은 여전히 근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던 30세 무렵, 그는 주류 신학으로부터 나와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그 시기, 교회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이는 성완기 공간지기에게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개인 차원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직면하게 한 사건이었다. 그는 더 이상 교회의 병리적 구조를 외면하지 않고 신학을 사회적 담론과 연결하는 새로운 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그 길에서 그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선택한 것은 ‘책’과 ‘공간’이었다. 히스테이블이 문을 열었다.

히스테이블 서가 모습.

히스테이블(his table). 보통 예수의 식탁이라는 의미를 품은 이름이다. 성완기씨가 말하는 ‘his’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타자, 곁의 사람, 소수자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교회가 진짜 잃어버린 건 모두를 위한 자리예요. 예수의 식탁은 모든 이가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보는 자리를 상징하죠.” 그는 교회가 오랫동안 톱다운 구조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높은 강단 위 설교자, 낮은 자리의 신자,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교리. 히스테이블은 그 잃어버린 ‘자리’를 회복하려는 실험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책을 주제로 대화하고, 공동체가 만나는 공간이다. 종교적 색채를 최소화할지 고민도 했지만 그는 결국 기독교를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사유의 폭이 너무 좁혀졌기에, 내부로부터 변화의 균열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히스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에는 약 30명. 청소년부터 부모 세대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서로를 ‘성도’가 아닌 형, 오빠, 언니, 누나, 동생으로 부른다. 교회의 계급 구조를 깨기 위한 시도다. 히스테이블에서 신앙과 사회의 핵심 활동 중 하나는 세미나다. ‘한국 교회의 병리’, ‘근본주의 신학 탐구’, ‘민주주의와 교회,’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들이 세미나의 주제가 된다. 그리고 내 마음에 쏙 드는 말도 건넸다. “좋은 이웃으로 있자. 카페에서 커피를 구매하며 썼던 커피 캐리어를 모아 가져다 드리는 일이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일들이든 꾸준히 하며 히스테이블이 좋은 이웃이 되는 것.”

히스테이블 간판.

세리서점과 히스테이블을 오가며 나는 내가 꺼버렸던 ‘생일 알림 기능’을 떠올렸다. 선물이 기프티콘이라는 효율적 형식으로 압축된 시대에, 성완기의 히스테이블은 다시 ‘식탁’이라는 느리고 비효율적인 자리를 회복하려 한다.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누군가가 나에게 선물할 수 있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는 자리.

이제 막 문을 연 히스테이블의 실험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공동체의 시도가 모두가 함께 앉을 수 있는 식탁 하나를 다시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조금 주제 넘지만 지금,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그런 ‘선물 같은 자리’ 하나가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었는데 좋은 이웃 성완기씨가 식빵을 들고 세리서점을 찾아왔다.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어요. 선물에 대해 쓰고 있었는데” 나도 그에게 선물을 하나 줬다. 히스테이블에 가서 알아보시길 바란다.

@histable_ilsan
백석동 1167-2 지하 1층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