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세무사의 세무칼럼
[고양신문] “세무사님, 평생 키운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까?” 가업 승계에 관한 상담을 하다 보면 기업인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수십 년 동안 회사를 키우고 직원들의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정작 은퇴를 앞두고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니 높은 상속세와 까다로운 요건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가업 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과연 옳을까?
가업상속공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이 다음 세대로 정상적으로 승계될 경우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현행 제도에서는 경영 기간에 따라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은 공제 한도를 최대 1000억원으로 확대하는 대신 경영 기간과 사후관리, 적용 업종 등의 요건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숫자만 보면 혜택이 커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피상속인의 경영 기간은 원칙적으로 현행 1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나고, 상속 후 사후관리 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길어진다. 적용 대상 업종도 심하게 축소된다.
물론 정부가 제도를 강화하려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다. 가업상속공제가 기업의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승계하는 제도가 아니라 부동산 등 자산을 자녀에게 넘겨주는 편법적인 절세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편법 상속을 막는 것과 정상적인 기업승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실제 2025년 가업상속공제 결정 257건 가운데 경영 기간 10년 이상 20년 미만 기업이 91건, 20년 이상 30년 미만 기업이 82건이었다. 전체의 67.3%가 30년 미만 기업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기업의 승계할 가치를 과연 ‘30년’이라는 시간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산업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10년, 20년 만에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도 등장한다. 특히 AI, 바이오, 첨단기술과 같은 신산업에서는 30년이라는 업력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가업 승계로 넘어가는 것은 주식 몇 장만이 아니다. 직원들의 일자리와 오랜 거래처와의 신뢰,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 기업의 신용과 경영자의 경험도 함께 넘어간다.
고양시에도 오랫동안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고용과 세수를 만들어 온 중소기업들이 있다. 이들이 승계의 벽을 넘지 못해 매각되거나 문을 닫는다면 그 영향은 기업주와 상속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직원과 협력업체, 거래처 그리고 지역경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업 승계를 단순히 ‘부자 감세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에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고용을 유지하면서 다음 세대로 이어가려는 기업에는 합리적인 승계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공제 한도를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혜택이라는 간판은 커졌는데 들어갈 문이 지나치게 좁다면 제도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업 승계는 단순한 상속의 문제가 아니다. 한 기업의 존속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자리,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과 거래 관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느냐의 문제다.
편법 승계는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기업승계의 길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기업이 사라지면 세금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와 기술, 거래처와 함께 지역경제의 한 축도 사라질 수 있다.
이봉구 세무법인 석성 경기북부지사 대표
전 국세청 조사국 근무
한국세무사회 연수원 세무조사 과목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