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아버님이 83세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슬픔에 잠겨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선 장례를 어떤식으로 하느냐가 급선무였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하니 화장과 매장이 엇갈렸다. 매장쪽은 조상을 모신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화장쪽도 묘지관리를 위해서 연중 5,6회는 찾아야 하는데 우리세대는 괜찮지만 친손자도 한명밖에 없어 난색을 표명했다.

그래서 묘지를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좁혀졌지만 수도권에 묘지를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수도권에는 납골당이 많다. 차선책으로 그곳에 가족 납골당을 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화장을 하면 아버지의 존재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반발에 매장도 몇 년 후면 뼈만 남으니 화장해서 유골을 모시기로 결정했다. 장례식장에 비치된 추모공원 팜플렛을 몇장 골라 찾아나섰다.

 “맞상제가 빈소를 비우면 어쩌느냐”는 핀잔에 “부모님 천년 유택을 확인도 않고 앉아서 정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이곳저곳 다니니 모두가 화려했다. 벽과 바닥은 대리석이고 조명도 샹들리제로 고급호텔 수준이었다. 가격도 위치에 따라 제 각각이었다.

내년 한식부터 조상유골도 이곳으로 모시기로 하고 4칸을 사니 꽤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지난 2일 화장하는데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 소요됐다. 1300도의 고열을 생각하니 죄책감에 무척 괴로웠다. 유골을 받아 안치단에 모신 뒤 초우제를 지내고 야외식탁에서 음복을 했다.

4일은 삼우제 날이었다. 밖은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비 한방울 맞지 않고 제사를 지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느낀 것은 우리국토를 묘지로부터 보호하려면 화장을 장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골당 가격도 저렴하게 낮추고 무엇보다 혐오시설이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대규모 납골당을 많이 지어 유족이 거주지를 옮길때 그곳 납골당으로 유골도 옮길 수 있게 전출·입이 가능하도록 해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처음 화장을 결정했을때 거부감과 죄책감에 후회도 했으나 막상 마치고 나니 호텔에 모신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 했다.

 (우승/경기도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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