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 아침 지하철로 출근을 한다. 이때 내가 몸을 싣는 지하철은 늘 서울발 고양행이다. 그리고 반대편 고양 사람들은 늘 아침마다 고양발 서울행 지하철로 출근을 한다.

늦은 밤 퇴근길, 나는 고양발 서울행 지하철에 몸을 의탁하고 꿈길을 찾아간다. 그 순간 서울의 어느 곳에서는 일상에 지친 영혼들이 고양행 만원 지하철을 타고 구파발을 지나 고양의 품으로 강물처럼 스며든다.

고양발 서울행과 서울발 고양행 지하철은 이렇듯 매일 어긋나며 상사화처럼 애잔한 그리움만 키워 나간다. 그것은 철길위의 숙명이다.

원당역에서 내려 직장인 고양문화재단(고양문화재단은 덕양어울림누리를 운영하는 주체이다)으로 가는 길은 보통 두 갈래이다.

먼저, 원당역에서 고양시청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신원당아파트 단지로 접어들면 덕양어울림누리 후문이 나온다. 이 길은 내가 평소 가장 많이 택하는 길이다. 하지만 우리네 삶처럼, 오래 사귄 여인네처럼 이젠 너무 밋밋해 내게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한다. 조만간 버려야할 가여운 길이다.

또 한 갈래는 원당역에서 덕양구청 방향으로 난 큰 길을 따라 100여 미터 걸어가다 보면 국사봉 다리를 지나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그 것이다. 새소리를 듣고 싶을 때, 마음속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를 듣고 싶을 때 나는 그 길을 택한다.

그 산길에서 나는 늘 프루스트의 詩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내게 찾아오지 않았던 또 다른 사랑도 함께. 가뿐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따라 10여 분 남짓 굽이를 돌다보면 눈앞에 웅장한 건물이 다가선다. 바로 지난 해 9월에 개관한 덕양어울림누리이다.

나는 이 공간을 사랑한다. 생각해보라. 마천루 같은 빌딩 숲에 둘러싸여 나침반 없이는 자신의 좌표조차 설정할 수 없는 거리에서 눈먼 자 生의 길 더듬듯 그렇게 살다가, 푸르다 못해 명징한 하늘과 숲으로 둘러싸인 곳을 일터로 놀이터로 갖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벼락같은 축복인가.

그리고 또 나는 이 공간을 사랑한다.

문화와 예술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탄생시킨 ‘어울림누리’라는 명칭처럼, 이 공간은 우리 고양시민들의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와 노년기의 꿈과 추억과 별모래처럼 쏟아지는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기에 내가 덕양어울림누리라는 공간에 대해서 갖는 애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으리라.

덕양어울림누리에서는 거의 매일 공연이 펼쳐진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 그렇듯, 설레임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고 아쉬움의 배웅을 받으며 무대의 조명이 꺼진다. 극장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관객들은 그때부터 자신의 生을 무대 위에 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공연이 끝난 늦은 밤, 나는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삼삼오오 꿈길을 밟고 사라진 관객들을 하나씩 기억하며 텅 빈 객석에 앉는다. 모두가 그리운 얼굴들이다. 진정 고마워하고 아끼고 사랑해야할 정인(情人)들이다. 무대 면막에 그려진 ‘고양의 봄’이 진한 흙빛 내음을 풍기며 내 눈앞에 다가선다.

오늘 이 공연장을 나서 고양발 서울행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천지간에 분분히 흩날리는 눈 사이로 지나가는 生이 기적소리처럼 내게 그리운 인사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수용(고양문화재단 홍보계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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