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포나루, 멱절 유적으로 유명한 마을
송포동은 한강 주변의 큰 마을로 법정동인 법곳동과 대화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대화동은 일산신시가지 내의 행정동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본래 법정동 대화동은 이곳 송포동내의 대화동이 중심마을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에 대화초등학교, 대화마을 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선사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송포동
송포동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선사시대의 유물들이다. 일산 신도시 개발에 앞서 이루어진 발굴 조사에서 석기, 토기로 대표되는 유물들이 대량으로 이곳 송포동 일대에서 출토되었다. 특히 토탄층 조사에서는 한강지역의 1만년 전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연환경 유물들도 출토되어 한강의 범람 같은 환경변화 연구에도 큰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선사시대를 거쳐 이곳 송포 일대에서는 가와지 볍씨와 같은 농경유물도 나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지은 고대미(古代米) 재배지역으로도 유명해졌고 이 유물들의 일부가 덕양구 원흥동에 소재한 고양시 농업기술센타에서 보관하고 있다.
* 백제시대의 고대 유적 , 멱절산
한강변의 법곳동 인근에 자리한 멱절마을, 이곳에 멱절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유적지에 올라서면 일산과 송포지역은 물론 우리시와 파주, 김포, 북한산이 조망되어 교통, 전략,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해발 50m가 되지 않는 작은 구릉성 유적이지만 송포동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이 오래전부터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기는 했으나 본격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재, 유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3년도 경기도 박물관의 주도아래 이루어진 발굴 조사 이후의 일이다. 1차 조사에서 수습된 유물로 보아 이곳 멱절유적은 백제초기에 현재의 서울지역인 백제 수도 한성을 지키기 위한 전초기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수로(水路 ) 중심의 고대교통길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무형문화재 호미걸이와 민속놀이의 전수지
고양시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재 고양송포 호미걸이의 본 고향도 이곳 송포 대화동이다.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호미걸이는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민속놀이, 농요(農謠) 등이 포함된 순수한 우리의 전통문화로 알려져 있다. 이곳 마을출신의 동관 김현규(金鉉奎) 선생(2004년 작고)이 각고의 노력 끝에 재발굴한 무형문화는 호미걸이 이외에도 용구재 이무기제, 멩게안 사줄다리기, 고양 십이지신 불한당몰이 놀이, 고양쌍그네 놀이, 싱아대 말짱박는 소리, 호상 김감역 호상 상여소리, 경기12채 가락 등이다 . 이렇게 발굴된 작품들은 경기도 민속예술축제와 대한민국 전통민속예술 축제 등에 참가하여 우수한 민속예술로 평가받았다. 이곳이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 고향임을 알리기 위해 김녕김씨 문중을 중심으로 하여 호미걸이 전수비가 대화마을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 법곳동의 이산포나루, 일산구 최대의 나루
법곳동은 우리시의 대표적인 어촌 마을로 유명하다. 황복과 게 웅어 숭어가 특히 유명한데 옛 기록에 이러한 내용이 상세히 표기되어 있다. 법곳동 마을은 동·서촌을 비롯해 이산포 마을로 나뉘어진다. 특히 이산포 나루는 김포와 연결되는 나루로 서울로 올라가거나 강화도로 내려갈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한강의 큰 나루터이다. 지금도 이 일대에서는 허가를 받은 어부들이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 이곳에는 이산포 대교가 건설되고 있는데 이 다리가 완성되면 마을의 변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뱀개라 불리는 대화동 사포마을
이곳 송포동 관할 구역의 대화동을 인근 마을 사람들을 뱀개라 부르곤 하였다. 뱀개는 이 지역의 옛 이름인 사포(巳浦)에서 온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의 토박이들은 자신의 마을을 소개할 때 뱀개라 부르곤 한다. 오래전부터 이곳 뱀개 마을에는 김녕 김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동족(同族)마을을 형성하여 살아왔다. 지금은 각종 개발로 인하여 그 모습이 크게 변하였지만 마을 사랑의 마음을 뱀개 사람들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마을은 변했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에 고향으로 남아있길
송포동 지역은 자유로의 개통과 일산신도시의 개발을 거치면서 그 모습이 크게 변하였다. 논과 밭을 대신하여 아파트와 상가 그리고 도로가 개통되어 옛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고 남아있는 법곳동도 개발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인근의 대화마을은 고층의 아파트로 바뀌어 이곳에 누대에 걸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제 그 모습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대화동에서 전해오는 무형의 민속문화를 비롯한 모든 역사와 전통이 이곳 송포동에서 전수되고 이어져 길이 보전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