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황동, 풍동, 애니골로 유명해,
이번호의 향토사 산책에서는 고양시 일산구에 속한 행정동 마을인 풍산동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풍산동내에는 법정동 마을인 풍동과 산황동이 있는데 산황동은 전지역이 전통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풍동은 일산신시가지로 들어가는 관문에 위치하여 대규모의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 풍산동의 지나온 역사와 오늘날의 모습을 알아봅니다.
* 1755년에 45호(戶)가 있던 풍동마을
조선조 영조 년간(1755년)에 만들어진 고양군지(高陽郡誌)를 보면 이곳 풍동은 고양군 중면에 속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중면에는 이곳 풍동 이외에 저전1,2리, 주엽, 산황, 백석, 도중리 7개 법정리 마을, 총 533호(戶)가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이중에서 풍동에는 총 45가구가 보이는데 마을의 자연촌락으로는 식곡촌(植谷村)이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식곡촌은 현재 대규모의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식골 마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45호라는 큰 규모로 보아 지금의 문촌(민마루)도 이곳 식곡촌에 포함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곳 풍동의 유적과 인물로는 문화류씨문중 류사원( 柳思瑗)과 신의경(申義慶)묘가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볼 때 본래 이곳 풍동의 모체를 이루는 마을은 식골마을과 민마루이며 애니골과 서무시, 단풍마을은 후대에 만들어진 새마을 (신촌)을 보인다.
* 산치성, 애니골, 단풍나무, 로 유명한 마을
풍동은 오랜 기간 동안 농촌지역으로 남아 있던 지역으로 타 지역에 알려진 명소나, 유적, 산이 많은 편은 아니다. 먼저 1990년대 일산신시가지 개발로 인해 장소가 바뀌고 크게 성장한 애니골이 타 지역에 널리 알려진 명칭이다. 본래 애니골은 고유의 명칭이 아닌 근래에 만들어진 명칭이며 크게는 식골에 포함되는 지역이나 본래 집이나 마을이 없던 산골짜기 지역이다. 단풍나무는 이 지역의 상징마을이다. 오래전부터 단풍나무가 유명했고 실제로 개발되기 전에도 풍산초교 뒤편의 매봉재 부근에는 단풍나무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성원아파트 단지에서는 공식적으로 마을 이름을 단풍마을로 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식골마을의 산치성 민속 행사이다. 산치성은 마을에 보존된 수령 300여년의 대감나무 아래에서 치루어 지는데 특이한 것은 굿이나 제례가 아닌 봉사 (소경)이 독경을 하는 것이다. 풍동식골의 산치성은 문화재의 심사가 이루어지는 등 그 보존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일산의 농촌, 작은 마을 산황동(山黃洞)
경의선 곡산역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산황동은 일산구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마을이다. 법정동 1개 마을에 아파트나 3층 이상의 건물도 하나 없는 곳이 바로 산황동 이다. 백석동 에서 창문을 열고 고양시청이 있는 원당이나 벽제 방면으로 보면 논과 밭, 숲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 산황동이다. 1755년 고양군지 기록에는 이 마을에 석곶촌(石串村)이 보이는데 총 호(戶)수는 54호로 표기되어 있다. 이 호수는 지금과 비교해도 큰 변화가 없는 수치인데 지금의 덕양구 주교동에 속한 독곶이 마을 까지 포함된 것으로 여겨진다. 산황동은 오래전부터 마을에 붉은 황토 흙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는 고양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그루 있어 보호수로 지정되었고
깻잎 농사로 인근에 유명한 마을이다. 마을의 큰 변화가 없다가 최근 마을 앞으로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고 개발제한 구역의 변화로 인하여 마을의 모습이 달라 질 것으로 보인다.
* 특색있고 살기좋은 풍산동으로 발전하길
앞으로 풍산동은 개발의 압력이 줄곧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풍동은 이미 대규모의 택지개발 사업으로 그 모습이 크게 변하였지만 일부 풍동 및 산황동 일대는 아직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앞으로 이러한 숲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풍산동 만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활용하여 독특한 마을의 문화가 발전하여 다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풍산동이 되길 기원해 본다.
정동일 (고양시청 문화재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