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역사문화탐방
① 세 개의 성곽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전
북한산성, 독자 등재 추진했으나 답보
한양도성도 진도 못 내고 제자리걸음
각자도생에서 공동 파트너로 전략 수정
탕춘대성까지 묶으니 비로소 ‘차별성’
[고양신문] 고양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북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드디어 가시권에 들어왔다. 지난 8월 국가유산청 세계유산분과 심의에서 ‘등재신청대상’으로 최종 확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거쳐야 하는 여러 단계의 국내 절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본선 진출’이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것 같이, 북한산성 단독으로 이름을 올린 게 아니다.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 3개의 성을 하나로 묶어 ‘한양의 수도성곽’이라는 개념으로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자연스레 궁금증이 솟는다. 첫째, 북한산성은 왜 독자 추진을 포기해야 했을까? 둘째, 한양도성은 그렇다 쳐도, 탕춘대성은 왜 끼워 넣은 걸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응원하는 기획연재의 첫 장을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남한산성의 환호, 북한산성의 좌절
고양시가 북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라는 원대한 도전을 시작한 시점은 2011년, 어느덧 14년 전이다. 특히 2013년 대대적으로 펼쳐진 ‘고양600년’ 기념사업의 열기 속에서 고양을 대표하는 역사유산인 북한산성을 세계인이 주목하는 유산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확산됐다. 이후 ‘유네스코 등재 마스터플랜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성벽과 행궁지 발굴조사, 북한산성의 가치 재조명 사업 등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하지만 유네스코의 벽은 높았다. 국내 절차만 따져봐도 ▲잠정목록 등재 ▲우선등재 대상 선정 ▲유네스코 등재 신청서 제출 등의 여러 단계의 허들이 놓여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인류 문명사적 차별성을 갖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라는 기준을 충분히 증명해내야 했다.
국내 타 지역 문화유산들과의 경쟁도 치열했다. 그러는 사이 이미 2002년부터 세계유산 도전을 착실히 준비해 온 ‘남한산성’이 2014년 세계유산 등재라는 결승선에 먼저 도착했다. 국민 모두가 반가워한 경사였지만, 후발주자인 북한산성 입장에서는 앞길에 먹구름이 드리운 셈이 됐다. 남한산성과 차별화되는, 북한산성만의 특색 있는 가치를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답답하기는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온 서울시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고양보다 한발 앞서 2008년부터 준비를 시작했고, 대대적인 사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치며 2012년 잠정목록 등재까지 성공했지만, 이후 오랜 시간 답보상태에 빠져야 했다. 치열했던 경제개발 시기를 지나며 한양도성의 많은 구간이 원형을 상실하다 보니,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4년 전 ‘통합등재 추진’ 의기투합
이처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제각각 2% 부족했던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이 각자도생하지 말고, 거시적 관점에서 공동 파트너로 손을 잡으면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였다. 이를 구체화한 것이 조선 후기 수도방위 체계를 아우르는 ‘한양의 수도성곽’이라는 개념이었다. 결국 2021년 서울시와 경기도, 고양시는 ‘통합등재 추진’이라는 전략에 의기투합했고, 4년이 지난 지금 그 결실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질문, 북한산성은 왜 독자 추진을 포기했나에 대한 대답이다.
물론 고양시민 중에는 ‘북한산성 독자 추진’ 전략을 수정한 결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향후 등재에 성공하더라도 스포트라이트를 한양도성이 독차지할 수 있고, 세계유산 보전·활용의 주도권을 결국 덩치 큰 서울시가 가져가지 않겠냐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역설적으로 북한산성에 대한 고양시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각성시켜 준다. 십수년 전부터 북한산성 관련 시리즈를 여러 차례 연재했던 고양신문이 또다시 새롭게 기획기사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 성 함께 그린 옛지도 ‘도성연융북한합도’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흥미롭다. 탕춘대성(蕩春臺城).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이 손을 잡기 시작할 무렵,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탕춘대성의 존재감이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평시 수도 성곽인 한양도성과 전란 시 왕실과 백성의 보장처(保障處)인 북한산성 사이를 안전하게 이어주는 연결성(連結城)인 탕춘대성이야말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차별성’을 지니는 건축물이 아닌가.
둘 사이에 탕춘대성을 끼워 넣자, 마지막 퍼즐 조각이 채워지듯 그림이 완성됐다. 선조들이 구상했던 삼위일체 도성방어체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제작한 18세기 고지도,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동국여도>에 수록된 ‘도성연융북한합도(都城鍊戎北漢合圖)’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향하는 안내도였다. 이름을 해석하면, 도성((都城)은 말 그대로 한양도성을, 연융(鍊戎)은 탕춘대성을(영조 임금이 탕춘대를 ‘연융대’로 개명함), 북한(北漢)은 북한산성을 뜻하고, 이 셋을 연결해서 그린 지도(合圖)라는 뜻이다.
존재감 급격히 상승한 탕춘대성
탕춘대성은 서울의 서북쪽, 인왕산과 북한산을 잇는 5km에 이르는 성곽임에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존재감이 미미했다. 북한산을 자주 등반하는 마니아들 정도가 ’탕춘대능선‘ ’탕춘대암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들어본 것 같은데, 위치는 잘 모르는”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탕춘대성의 중심 역할을 했던, 홍제천을 가로질러 놓인 홍지문(弘智門)과 오간수문(五間水橋)이 1920년대 초 홍수에 유실된 후 더더욱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갔다.
다행히 1976년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뒤늦게 지정되고, 홍지문과 오간수문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하지만 서울시가 돌봐야 할 문화유산이 워낙 많아서인지 탕춘대성 성곽 자체는 제대로 발굴되거나 관리되지 못한 채 나무와 수풀에 뒤덮여 방치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 삼총사로 언급되며 위상이 급상승했다. 국가유산성은 지난해 4월 탕춘대성을 한양도성, 북한산성과 같은 급인 사적(史蹟)으로 지정하고, 본격적인 보수·정비작업을 시작했다.
조선 성곽 건축의 종결자, 숙종 임금
세 성과 가장 관련이 많은 임금은 조선 19대 왕 숙종(제위 1674~1720)이다. 물론 한양도성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과 함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1396년부터 쌓기 시작한 성이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다가, 숙종 때에 대대적인 수축 공사(1704년부터)가 이뤄졌다.
이후 숙종은 한양도성 수축에서 얻은 경험과 자신감을 토대로 국가의 역량을 결집해 1711년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들을 원형으로 연결하는 ’북한산성 축성‘이라는 대업을 이룬다. 이어 1718년 탕춘대성 축조에 연이어 착수했다. ‘한양의 수도성곽’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다면, 가장 큰 헌사는 숙종 임금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탕춘대성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한양도성에서 북한산성으로 안전하게 이동하는 연결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북한산성이 아무리 든든하다 해도, 갑작스런 전란이 닥쳤을 때 임금과 백성이 한양도성에서 북한산성으로 안전하게 이동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염려가 탕춘대성 축성의 명분이었다.
반면 실효성과 재정 부담, 연이은 노역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초 등을 이유로 탕춘대성 축성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연이은 환국정치(換局政治)를 통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던 임금답게, 탕춘대성 축성 역시 숙종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 속에서 추진됐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탕춘대성을 직접 찾아가 옛 흔적을 살펴보고, 성곽길을 따라 북한산까지 직접 걸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