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역사문화탐방
⑤ 북한산성 물길 거슬러 행궁지로

사방이 산자락에 둘러싸인 별모양 골짜기
백운대 노적봉 동장대 등 한눈에 들어와 
돌덩이 하나하나 제자리 찾게 되기를…

[고양신문] 겨우내 회색빛으로 말라 있던 북한산에 윤기가 돈다. 겨울 동안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음에도, 언 땅이 녹자 촉촉한 물줄기가 투명한 햇살을 반사하며 바위틈을 흐른다. 숲에는 가장 먼저 잎싹을 틔우는 귀룽나무를 시작으로 연둣빛이 돋기 시작했고, 생강나무는 노란색, 진달래는 분홍빛 꽃망울을 터뜨린다. 산속의 봄은 도심보다 명도가 선명하다. 

‘한양의 수도성곽’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염원하며 한 달에 한 번 북한산성을 찾은 마지막 코스는 ‘행궁지 답사’다. 올라가는 길에 수문, 하창지, 중성문, 산영루, 중흥사, 호조창지, 경리청상창지 등 북한천 계곡을 따라 이어진 산성 안 옛 흔적들도 둘러보자. 지난달 12성문 종주가 타원형 달걀의 단단한 껍질이라면, 오늘 답사할 영역은 두말할 것 없이 북한산성의 핵심 공간들이 응축된 노른자다. 

언 땅이 녹으며 북한천 바위틈으로 맑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언 땅이 녹으며 북한천 바위틈으로 맑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성곽과 물길의 교차점 지켰던 수문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면 대서문 방향과 수문 방향, 두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대서문 길은 지난번에 걸었으니 이번엔 계곡길로 가 보자. 산성 안으로 입장하려면 반드시 문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동남쪽 의상봉, 서북쪽 원효봉에서 타고 내려온 성벽이 계곡의 물길과 교차하는 지점이 수문지(水門址)다. 배수 기능과 방어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했기에 북한산성을 축성할 때 특별 기술을 보유한 수구패장(水口牌將)을 별도로 두어 수문 공사를 책임지도록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문의 옛 모습을 상상 속에서 그려볼 뿐이다. 

수문을 지나 언덕을 돌면 서암사지(西巖寺址)다. 과거 서암사에는 수문을 지키던 승병들이 배치됐었다. 계곡 옆에 자리했던 옛 서암사는 20세기 초 홍수에 무너져내렸다. 오늘 방문할 장소들이 대부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북한산성 내 국가유산들을 만날 때는 이름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눈앞에 번듯한 새 건물이 있는데, 국가유산 명칭에는 지(址)자가 뒤에 붙은 경우가 많다. 옛 건물은 사라져 ‘터’만 목록에 올랐고, 최근에 동일한 이름의 새 건물이 세워졌다고 보면 된다. 서암사지, 중흥사지, 산영루지가 다 이런 경우다.            

2000년대 중반까지 계곡 주변에 식당들이 번성했음을 증언해주는 유일한 흔적. 
2000년대 중반까지 계곡 주변에 식당들이 번성했음을 증언해주는 유일한 흔적. 

산길 중턱을 가로막고 선 중성문

전란 대비 목적으로 만들어진 북한산성 내에는 식량을 비롯해 여러 물자를 비축하는 창고가 여럿 있었다. 그중 경리청에서 상창, 중창, 하창 3개 창고를 관할했는데, 맨 아래쪽 하창은 제법 넓은 평지에 자리했었다. 지금 하창지에는 쉼터와 화장실이 마련돼 등반객들이 본격적인 산행을 앞두고 복장과 장비를 정비한다. 공터 한쪽에는 측면과 상단에 각각 10여 개의 구멍을 일렬로 뚫어놓은 커다란 바위가 누워있다. 화강암 바위를 쪼개 운반이 가능한 크기로 잘라냈던 채석의 흔적이다.

사실 2000년대 중반까지 수문 근처부터 계곡을 따라 북한산 중턱까지, 등산로 좌우에 식당들이 즐비했다. 그중 가장 번성했던 곳이 하창지 인근이었다. 하지만 2006년부터 ‘북한산성지구 이주 및 정비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며 대대로 이어오던 북한동 마을의 삶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일하게 산장 한 곳의 기둥 일부를 한 시절의 화석으로 남겼을 뿐이다.  

북한산성 내성의 관문인 중성문. 
북한산성 내성의 관문인 중성문. 

조금 더 올라가면 규모를 갖춰 문루를 얹은 중성문(中城門)이 나온다. 초행길이라면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수문을 지나며 거대한 산성의 폐곡선 안으로 들어왔는데, 왜 또 성문이 나오지? 이유는 간단하다. 중성문은 북한산성 본체에 있는 문이 아니고, 방어에 취약한 지점을 보완하라는 숙종의 명에 따라 나중에 추가로 쌓은 내성(內城)의 관문이다. 난공불락의 산성을 완성하려는 숙종의 의지가 읽힌다. 

중성문 옆 바위 뒤를 돌아가면,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암문(暗門)이 뚫려있다. 산성 안 시신이 이 암문으로 나갔기 때문에 시구문(屍軀門)이라 불렸다고 한다.  

중성문 바위 뒤편의 암문.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중성문 바위 뒤편의 암문.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산그림자·물소리 어우러지는 산영루

운하교를 건너면 거리 표시 이정표가 나온다. 행궁지까지는 1.5㎞가 남았다. 노적사 지나 왼쪽 작은 벼랑길은 아는 사람만 아는 길이다. 좁은 잔도를 따라 잠시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에 ‘백운동문(白雲洞門)’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흰구름이 머무는 골짜기, 신선의 영역에 발을 들인 기분이다. 

비탈 위 벼랑길에서 만나는 '백운동문' 바위 각자. 
비탈 위 벼랑길에서 만나는 '백운동문' 바위 각자. 

벼랑길이 끝나는 지점에선 3개의 유적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하나는 북한산 선정비군(善政碑群)이다. 19세기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총융청 관리들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들이라는데, 26기나 되는 비석들이 조선 후기 선정비, 공덕비의 인플레 현상을 짐작케 한다. 선정비군에 둘러싸여 너른 바위에 누워있는 북한승도절목(北漢僧徒節目)은 북한산성 승병대장인 총섭을 임명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을 명기해 놓은 암각문이다. 이 역시 당대 인사의 기강이 혼란했음을 방증하는 건 아닐까. 

북한천 계곡의 절경 위에 서 있는, 산그림자 비치는 산영루(山映樓)를 만나보자. 작은 폭포 옆 커다란 암반 위에 돌기둥을 세우고,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우아한 처마를 얹었다. 한옥의 단청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갈색의 나무, 붉은 꽃, 초록의 산, 파란 하늘, 화창한 밝음과 묵직한 어둠까지 단청 속에 다 들어있다. 많은 묵객들이 산영루에서 시를 짓고 글씨를 남겼다. 비록 누각은 최근에 복원된 건물이지만, 옛사람이 즐겼을 정취를 넉넉히 상상케 해준다.   

북한천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세워진 산영루.
북한천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세워진 산영루.

기개 높았던 승군 총사령부, 중흥사

중흥사(重興寺)에도 잠시 들른다. 북한산성 축성과 관리의 큰 몫을 담당했던 승군(僧軍)들의 총사령부 중심사찰이다. 이웃한 건물들의 운명처럼 중흥사도 20세기 초 홍수에 무너져내렸지만, 십여 년 전부터 순차적으로 중건되고 있다. 만세루를 지나 절 마당에 오르자, 한 팀의 등산객들이 간식거리를 펼쳐놓고 호사로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용출봉에서 흘러내린 겹겹의 능선이 한가로운 절집 마당의 조망을 채워준다. 

대개의 등산객들은 중흥사 앞에서 왼쪽 길을 선택해 용암문 방향으로 향한다. 노적봉~만경봉~ 백운대로 이어지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궁지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대남문 이정표를 따라가야 한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산은 깊어지고 사방은 고요해진다.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흥사.  북한산성 축성의 한 축을 담당했던 승군의 중심사찰이다.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흥사.  북한산성 축성의 한 축을 담당했던 승군의 중심사찰이다. 

호조창지(戶曹倉址)가 나타나면 행궁에 거의 도착했다는 뜻이다. 호조창은 행궁의 주인인 왕실 사람들을 위한 식량을 보관했던 창고다. 개울 건너편은 경리청상창지(經理廳上倉址)다. 두 곳의 옛 창고터는 최소한의 보호조치와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시급해 보인다. 무너진 석축 사이로 나무뿌리가 파고들고, 경사면에는 기와조각들이 무더기로 뒹굴고 있다.  

행궁 찾은 숙종 임금이 남긴 어제시

호조창지에서 청수동암문 방향으로 길을 한 번 더 꺾은 후 가파른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드디어 행궁지다. 나한봉, 문수봉이 뒤를 감싼, 작은 계곡 옆 아늑한 터다. 깊은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한편으로는 백운대와 만경대, 노적봉 등 삼각산의 정점이 조망되고, 시단봉 위에 우뚝 세운 군 지휘소인 동장대도 한눈에 들어온다. 적의 외침으로부터 안전하면서도 북한산성의 핵심적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다. 행궁을 찾은 숙종 임금이 감동에 젖어 남긴 어제시(御製詩, 임금이 지은 시)에도 행궁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고스란히 담겼다. 

‘험한 10리길 지나 행궁에 이르니/ 높다란 시단봉 동쪽 가까이 있네/ 노적봉 꼭대기 구름 걷히지 않고/ 백운대엔 안개 흐릿하게 덮여있네’   

북한산성 행궁지. 멀리 백운대와 만경봉, 노적봉이 조망된다. 오른쪽 시단봉 위에는 동장대가 서 있다. 
북한산성 행궁지. 멀리 백운대와 만경봉, 노적봉이 조망된다. 오른쪽 시단봉 위에는 동장대가 서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북한산성 행궁은 1711년 8월에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5월에 완공됐다고 전한다. 숙종과 영조 임금이 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할 만큼 북한행궁의 위상은 높았지만, 이후 조정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일제에 국권을 상실한 후에는 영국성공회의 휴양시설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다가 1915년 큰 비와 산사태에 휩쓸린다. 산중 왕국의 견고한 꿈이 200년 버티다 100년 전 무너진 셈이다. 

어느 연구자는 행궁을 둘러싼 지형을 “별 모양의 골짜기”라고 표현했다. 그래픽으로 복원한 행궁도를 보면 정말 별, 또는 나팔꽃 모양의 담장을 두른 터 한가운데에 행궁이 자리하고 있다. 행궁은 크게 임금과 가족이 머무는 내전과 정사를 보는 외전으로 구분돼 있다. 여기에 내외전 좌우로 행각방이 감싸고 있고, 월랑과 누각, 대문과 외대문이 경사진 지형을 따라 단을 이루며 배치돼 있었다.   

디지털로 복원한 북한산성 행궁 모습. 별모양의 터 위에 내전과 외전 등의 건물이 배치됐다. 
디지털로 복원한 북한산성 행궁 모습. 별모양의 터 위에 내전과 외전 등의 건물이 배치됐다. 

느리더라도 꼼꼼히, 기초부터 챙기는 정비사업

행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경기문화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이 발족한 2012년부터 시작됐고, 종합정비계획이 수립돼 본격적인 정비에 착수한 시점은 2015년부터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4~5년이면 정비가 마무리될 걸로 기대했었다. 실제로 내전과 외전의 기초들이 어느정도 제자리를 잡기도 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비사업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구간에 따라 진도가 제각각이라 행궁지의 현재 풍경은 다소 산만하고 어지럽다. 내전과 외전 부분은 비교적 반듯하지만, 아래쪽 부속 시설들 부분은 폐허처럼 황량하다. 

하지만 담당자의 얘기를 들으면 다소 마음이 놓인다. 속도에 쫓겨 졸속으로 복원하기보다는, 느리더라도 꼼꼼하게 기본부터 챙기자는 원칙을 고수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0년 넘는 정비사업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주변부를 둘러싼 배수로 정비였다. 100여년 전 행궁이 무너진 이유가 큰 비와 산사태를 이기지 못했음이니, 지혜로운 선택으로 보인다.

행궁지에 흩어져 있는 기와조각들을 모아놓은 모습.
행궁지에 흩어져 있는 기와조각들을 모아놓은 모습.

그 시절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을 상상하며…

북한산성의 가치를 하찮게 보는 이들은 말한다. 조선왕조는 임진·병자 양란 이후 일찌감치 무너졌어야 했다고. 하지만 이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단견이다. 그 관점을 전제로 조선역사를 보면 17세기 이후의 역사는 모두 쓸데없는 역사가 되고 만다. 

또 다른 주장도 들린다. 북한산성 쌓고 한 번도 제대로 사용 못했으니 무용지물을 만든 것 아니냐고. 그런 논리라면, 한국전쟁 종전 후 70년 넘게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그동안 대한민국이 쏟아부은 국방비는 헛돈을 쓴 셈이란 말인가?

모든 역사의 시간에는 당대의 고유한 주름이 겹겹이 깃들어있게 마련이다. 북한산성과 행궁 역시 그 시절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 상상과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낸 빛나는 매듭 중 하나다. 고요한 행궁터에 앉아 백운대와 동장대를 번갈아 바라본다. 다섯 번의 북한산성 역사문화탐방을 마무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으리라.   

2011년 발굴조사를 시작할 무렵의 행궁지 모습.                            박현욱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책임연구원 
2011년 발굴조사를 시작할 무렵의 행궁지 모습.                            박현욱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책임연구원 
행궁 외전의 전각을 떠받치고 있던 돌기둥들.
행궁 외전의 전각을 떠받치고 있던 돌기둥들.
중성문 문루 천장의 화려한 단청.
중성문 문루 천장의 화려한 단청.
산영루의 아름다운 단청과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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