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슬기로운 고양생활(4)
전문직 은퇴자 '개발자'로 육성
맞춤형 일자리 'OB리그' 해볼만
[고양신문] 필자의 최근 취미는 프로그래밍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 무슨 프로그래밍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 세대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익숙하다. 첫 퍼스널 컴퓨터였던 IBM Personal Computer 5150 모델이 출시된 시점은 1981년, 필자의 대학 시절이다. 운용 체계는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Windows가 아닌 MS-DOS였다. 클릭 몇 번으로 실행되지 않는, 일일이 명령어를 쳐 넣어야 하는 운용 체계다.
당시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 사이에서는 MS-DOS 운용 체계로 간단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유행했다. 대학생이면 누구나 포트란(FORTRAN)이나 코볼(COBOL) 교재 하나쯤은 옆에 끼고 다녔고, 관련 강의 수강도 많이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독학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학습해 인맥관리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세대라면 누구나 MS-DOS 명령어에 익숙하고 C/C+를 활용해 소소한 프로그래밍 정도는 해봤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프로그래밍을 인공지능이 대신해주는 시대가 열렸다. 챗GPT 개발사인 OpenAI를 창업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 2월 xAI 타운홀 미팅에서 이렇게 발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마도 올해 말이면 코딩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수준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프로그래밍 역량이 인간 프로그래머의 능력을 뛰어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몇 년 전부터 최소한의 코딩만을 활용하는 로우코드(Low Code) 또는 아예 코딩이 필요 없는 노코드(No Code) 논의가 활발했다. 그 연장선에서 생성형 AI 인공지능 플랫폼에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필자는 그 역량에 대해 솔직히 의문을 가졌다. 아직은 인간 프로그래머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탓이다. 그래도 궁금해서 몇 달 전부터 필자가 관심을 가진 영역을 대상으로 프로그래밍 곧 업무 자동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생성형 AI에 명령을 내린 뒤에 실행해서 만들어낸 프로그램을 검토한 뒤에 다시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진행해본 결과, 산출물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에 놀랐다. 프로그래머들이 절대 자신들을 대체할 수 없다는 주장하는 근거인 오류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때때로 명령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헤매거나 엉뚱한 결과를 내놓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지속하며 수정 작업을 진행하면, 원하는 수준의 산출물을 얻을 수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해본 느낌은 마치 내 지시만 기다리는 전속 프로그래머 1명을 곁에 두고 일하는 것 같았다. 그 프로그래머가 최상급은 아니지만 중간 이상은 간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미 『생각국가를 꿈꾸다』라는 책에서 은퇴한 기성세대를 이번 방향에서 활용할 필요성을 제기했던 터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낯설지 않은 그들에게 인공지능을 활용한 프로그래밍 방법을 재교육한다면, 소소하지만 생각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프로그램이 많이 산출되지 않을까 한다.
대표적인 베드타운인 고양시에는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 직장인이 많다. 일산신도시가 조성될 당시에 광화문과 여의도 권역에 소재한 금융사와 언론사 관계자 상당수가 분당신도시보다는 이곳을 선택하기도 했다. IT 분야에서 종사했던 이들도 물론 적지 않다. 모두 전문성을 지닌 고급 인력이다. 그들에게 단순 근로 위주로 한시적 일자리를 주는 전통적인 고령자 일자리 창출 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생성형 AI를 활용한 프로그래밍 방법론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한 뒤에, 1년 단위 계약으로 생성형 AI 이용권과 더불어 수당을 지급하고 사회적 또는 경제적으로 필요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하면 어떨까? 필자가 보기에는 고양시 행정 또는 민원 업무와 관련해서도 개발하면 좋은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다. 당연히 이런 프로그래밍 작업을 의뢰해도 해낼 수 있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비록 지금은 은퇴했지만, 그들이 과거 직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취득한 노하우는 절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기업에서는 업무 자동화에 열심이다. 그 과정에서 직장인들의 인공지능 활용도 곧 디지털 리터러시(독해력)도 높아지는 추세다. 상호 간에 프로그램 공유와 코딩 정보 교류도 활발하다. 그들이 현역 곧 YB 리그라면, 은퇴자는 OB 리그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OB 리그를 고양시에서 활성화시켜보면 어떠냐는 뜻이다.
2025년 말 기준 고양시 총인구는 약 106만 명 수준인데, 이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는 18.6% 약 19만7000명에 달한다. 향후 2년 내 약 21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들 가운데 10분의 1이면 2만 명이고, 100분의 1이면 2000명이다. 이들을 실버 개발자로 키워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시범사업으로 100명, 그 다음에는 300명, 이런 식으로 늘려 가면 어떨까 한다.
필자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에서 프로그래밍만큼 재미를 못 느낀다. 둘 다 앉아서 하는 일인데, 영화와 달리 프로그래밍은 성과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보람차다. 성취감이 든다. 앞서 YB 리그에 관해 언급했지만, 직장인이 업무 시간 중에 또는 퇴근 이후에 별도로 시간을 내어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적지 않게 부담스럽다. 반면에 은퇴자는 다르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이 적다. 체력적으로 덜 힘들다는 것도 장점이다. 필자처럼 생성형 AI에 명령을 내린 뒤 산출물이 나올 때까지 자투리 시간에 보던 영화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거양득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프로그래밍이야말로 은퇴자 맞춤형 일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실버 개발자 육성 프로젝트를 고양시가 앞장서서 추진한다면, 의외의 지역 대표 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카페에 모인 동네 아줌마 아저씨는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주식 투자 이야기만이 아닌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 자랑으로 대화의 꽃을 피우는 시대를 꿈꿔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