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박인호 개인전 ‘순환 - circulation’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에서 4월 3일까지

박인호 작 '모기향'. 소멸과 순환이라는 전시의 테마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선형의 원이 점점 줄어들며 작은 부스러기들을 남긴다. 뭘까? 정답은 모기향이다. 이번엔 원통형의 막대가 서서히 녹아내린다. 아이스크림이다. 일상의 주변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물들이 작가의 카메라를 만나니 전혀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의 형체를 버리고 변화하거나 소멸해가는 존재들을 위에서 내려다 본 앵글로 여러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낸 것이다.
 
풍동 애니골에 자리한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사진작가 박인호의 개인전 ‘순환 - circulation’에선 일상의 사소한 사물들이 품은 ‘변화’와 ‘소멸’의 속성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낸 인상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무척 흥미롭다. 생활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을 사진의 소재로 채택한 아이디어가 반짝이기 때문이다. 매일 몸집을 줄여가는 비누, 갈수록 피부가 까칠해지는 주방 스펀지는 일상에서 만나는 흔한 것들이다. 그런가 하면 키가 점점 작아지는 스케치용 연필, 통통했던 배가 홀쭉해지는 튜브 물감 등은 작가의 직업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딱 한 번 화끈하게 색깔과 향기를 발산하고 장렬하게 쓰임을 마감하는 티백, 너덜너덜 누더기가 된 코팅 목장갑과 같은 일회용품도 박건호 작가의 예민한 눈에 포착된다.

“일상속에서 소비하는 사물들 속에서 어느 순간 주변의 사람들이, 더 구체적으로 나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겹쳐졌어요. 뭔가를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처음의 설렘이 소진되다가, 나중에는 새로운 관심으로 대체되는 과정 말입니다. 가치가 소멸된 물건의 자리를 새로운 물건이 채우는 순환의 사이클을 전시의 주제로 잡게 된 것이죠.”

일회용 티백도 작가의 눈에 포착되어 용도 소멸의 전과 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채택된 소재들은 평범하지만, 작품 속에 담아 낸 스타일은 특별하다. 각각의 사진들은 극세밀화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무척 미니멀하다. 일체의 배경이나 그림자를 배제한 백색의 바탕 위에 피사체의 외형 그대로를 가감 없이 포착한 것. 감정이 배제된 ‘사물의 증명사진’과도 같은 프레임들이 나열되지만, 사진과 사진 사이의 여백 속에 비로소 의미와 정서가 담긴다. 사물의 핵심을 물리적 차원이 아닌, 변화와 소멸의 차원에서 바라본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차가움 속에 감춰진 따뜻함 때문일까.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사진 속 사물들이 관람자에게 나지막이 말을 걸어온다. 하루하루, 또는 순간순간 말없이 소멸해가는 존재의 쓸쓸함일 수도 있겠고, 소멸한 것들의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사물과 함께 또 다른 시간을 열어가라는 위로일 수도 있겠다.

전시를 여는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은 지난해 개관 이후 주목할만한 작가를 초청해 의미 있는 기획전을 연이어 열고 있다. 일상을 공유하는 좋은 이들과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젊은 예술가의 반짝이는 감각을 감상해보자. 

박인호 개인전 ‘순환 - circulation’

기간 : ~ 4월 3일까지 
장소 : 아트스페이스 애니꼴
(일산동구 애니골길 70)
문의 : 031-901-2200

작가의 욕실에서 직접 사용한 비누도 소모의 과정을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겼다. 작아지고 투명해져 존재 자체가 사라져가는 모습이 생명의 노화를 연상케도 한다.

전시가 열리는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은 전시 문화의 불모지 일산에서 순수 미술 감상의 문화 토양을 가꾸고자 한다.

전시장 한쪽 공간에 걸린,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작품.

젊은 감각과 깊이 있는 시선을 고루 갖춘 박인호 작가.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이 자리한 카페 애니골의 배순교 사장. 갤러리 대표인 남편 김희성 교수와 함께 상업공간과 문화공간의 상생을 향한 도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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